31일 외교부가 30년만에 봉인 해제한 외교문서에서 이같은 정황이 포착됐다. 김일성이 1994년 7월 8일 사망한 뒤 아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3년 이상 최고지도자로서 어떤 직책에도 취임하지 않으며 이른바 '유훈통치'를 이어갔다.
덩샤오핑 차녀 덩난 중국 국가과기위 부주임은 지난 1995년 3월 주중 한국대사와 면담에서 "현재 김정일은 건강이 매우 좋지 않아(자동차 사고와 지병 때문) 아직까지 주석직을 승계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지난 1995년 4월 주중 한국대사관의 공산당 대외연락부 조선처장 대상 탐문 보고문서는 "김정일은 인민들이 아직도 김일성을 애도하고 있는데 아들이 어떻게 취임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이에 응하지 않고 있다고…."고 적었다.
당시 김일성이 갑작스럽게 사망하며 남북정상회담이 무산된 점도 거론됐다. 중국 외교부 아주국 조선처장은 한국대사관 인사와 만나 "국가주석직을 공식 승계하게 될 경우 당장 남북한 정상회담을 해야 하는 부담을 안게 되므로 이를 피하기 위한 측면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전 주한 불가리아 대사대리가 김정일과 김일성대에서 함께 수학하며 친밀하게 어울렸던 회고담, 미국의 세계적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의 팬인 김정일이 토니 남궁 전 UC버클리 한국학 연구소 부소장에게 카퍼필드 방북을 주선해 달라고 요청했다는 기록 등이 외교문서로 공개됐다.
이밖에 1995년 장쩌민 당시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을 앞두고 북한이 대만과의 수교 가능성까지 거론하며 반발했던 정황이 이날 공개된 외교문서에서 확인됐다. 중국이 한국과 수교 이후 3년 만에 첫 국가주석 방한을 추진하자, 북한이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1995년 6월 외무부가 중국의 한반도 전문가들로부터 청취한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에 따르면, 그해 5월 중국 외교부 산하 '국제문제 연구소' 대표단은 북한에서 북한 외무성 산하 '군축 및 평화문제연구소'와 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중국 측은 북한과 대만의 관계를 예의주시하고 있다며, 북·중 특수관계를 고려해 대만과의 관계를 처리해달라고 요구했다.
북한 측은 이에 중국 측 방한 인사 명단을 일일이 언급하며 "중국과 한국이 고위인사 교류를 하는데 북한은 왜 대만과의 관계를 발전시킬 수 없느냐"고 날 선 반응을 보였다. 이어 "만일 보도된 대로 금년 11월 장 주석이 한국을 방문한다면, 대만과의 관계에서 어떠한 조치를 취할 수 밖에 없으며, 대만과의 외교관계 수립까지도 검토하지 않을 수 없다"고 엄포를 놓았다.
rainman@fnnews.com 김경수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