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생한 지 1개월이 넘은 전쟁으로 이란은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를 비롯해 정부와 이란혁명수비대의 고위 관리 다수를 잃었다.
지금의 이란을 보면 과거에 매우 유사했던 나라가 떠오른다.
북아프리카의 리비아로, 한국의 건설회사가 총길이 4000㎞인 대수로를 공사하면서 영토의 대부분이 사막으로 인한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해 준 낯이 익은 나라다.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가 이끌었던 리비아도 반이스라엘 성향에 테러를 적극 지원하고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 개발 의혹으로 제재를 받고 미국 등 서방 국가와 마찰을 일으켰다.
미국과 군사충돌도 발생해 1981년 8월 리비아 앞 지중해 시드라만에서 미 해군 F-14 전투기 2대와 공중전을 벌인 리비아의 소련제 수호이-22 전투기 2대가 격추됐다.
이 공중전은 후에 배우 톰 크루즈가 주연한 영화 '탑건'의 영감이 됐다.
1986년 4월 옛 서독 서베를린의 한 미군 출입업소에서 폭탄테러가 발생하자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은 리비아를 공습하는 '엘도라도 캐년 작전'을 지시, 수도 트리폴리와 벵가지의 군과 테러 훈련시설들을 폭격했다.
카다피는 테러를 노골적으로 지원하면서 당시 시사주간지의 단골 표지 모델이 되기도 했다. 리비아 하면 테러를 연상시켜 영화 '빽 투 더 퓨쳐'에서는 타임머신을 개발한 괴짜 과학자가 리비아 테러범의 총격을 받는 장면이 나온다.
1980년대 중반 한국 운동권 학생들은 카다피가 미국에 대항한다며 그를 영웅으로 삼기도 했다. 리비아의 테러가 절정을 보인 것은 1988년 성탄절을 나흘 앞두고 스코틀랜드 상공에서 팬암 소속 보잉 747 점보기가 공중에서 폭발한 사건이다.
1년 전 발생한 대한항공 858기 폭발사건처럼 휴대용 라디오 속에 숨겨진 폭탄이 터지면서 탑승자 259명과 인근 로커비 주민 11명이 사망했다.
리비아는 테러 용의자들의 신병 인도를 거부하다가 유엔의 제재와 해상 봉쇄로 원유 수출이 막히자 달라지기 시작했다.
1999년에 제재 일부 해제를 조건으로 팬암기 폭파 관련 리비아 공작원 2명의 신병을 스코틀랜드에 인도했다. 2001년 네덜란드에 특별 설치된 스코틀랜드 법정에서 1명은 종신형을, 다른 1명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세계의 골칫거리였던 카다피는 지난 2003년 리비아를 국제사회의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고 경제를 되살리기 위해 핵무기 개발과 테러 지원을 중단하는 결정을 내렸다.
이란은 이라크와 8년간 전쟁 중이던 1980년대에도 페르시아만을 지나는 유조선을 공격하고 기뢰를 부설하며 위협했다.
이번 전쟁에서는 걸프만 주변국들의 에너지 인프라와 호텔 등 민간시설까지 미사일과 드론으로 공격하면서 불신감을 키워주고 있다.
세계 원유의 20%가 통과하는 호르무즈해협을 지나는 선박에 통행료를 받겠다고 우기고 있다. 이란이 지원하는 후티반군은 수에즈운하로 연결되는 또 다른 주요 항로인 홍해를 위협하고 있다.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전 이란 대통령은 과거 이스라엘을 지도에서 지워버리겠다고 위협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의해 약 600만명이 학살당한 유대인들에게는 이란 핵무기 보유 저지는 생존이 달린 문제다.
앞으로 관심사는 현재 부상설과 모스크바 치료설이 나돌고 있는 알리 하메네이의 아들인 새 최고지도자 모즈타바 하메네이와 온건개혁 성향으로 알려진 마수드 페제시키안 대통령 등 이란 지도부가 어떠한 길을 선택할지다.
알리 하메네이가 카다피 같은 선택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적어도 목숨은 부지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jjyoon@fnnews.com 윤재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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