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K웨이브 넘어 K헤리티지로

김현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09 18:08

수정 2026.04.09 18:27

김현지 생활경제부
김현지 생활경제부
K컬처가 세계의 일상으로 스며들며 바야흐로 외국인 관광객 2000만명 시대를 맞고 있다. 다음 단계는 무조건적인 확장이 아니라 우리의 뿌리를 비추는 일이다. K콘텐츠가 한국의 존재감을 세계에 알리는 역할을 했다면, 이제는 전통문화가 한국의 깊이를 설명할 차례다.

흔히 일본 하면 기모노·다도·사케 등을 연상하고, 중국 하면 중식과 무협 콘텐츠를 떠올린다. 최근에는 MZ세대를 중심으로 중국 고전미녀 분장을 체험하는 '왕홍 메이크업'도 유행하고 있다.

방향은 달라도 모두 오랜 시간 축적된 '유산'이라는 공통점을 지닌다.

반면 '한국'을 떠올릴 때 선명하게 각인되는 전통적 요소는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지금의 한류는 K팝, K뷰티 등 현대적 콘텐츠 중심으로 형성돼 왔다는 점에서 유산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있다. 최근 '케이팝 데몬 헌터스'를 계기로 전통 문양과 복식에 대한 관심이 일부 확산되기도 했지만, 아직 주류 흐름으로 자리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한류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기 위해서는 전통문화에 기반한 'K헤리티지'의 체계적 육성이 필요하다.

정부는 지난 2024년, '2025~2029 전통문화산업 진흥 기본계획'을 통해 전통문화를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키우겠다는 방향을 제시했다. 장인과 기업을 연결하고 연구개발, 유통, 해외진출까지 지원하겠다는 구상이다. 정책의 방향은 명확하지만, 시장 형성 속도는 여전히 더디다.

전통문화 산업화의 핵심은 '상품화'와 '일상화'다. 일본은 다도 및 기모노 체험을 관광상품으로 정착시켰고, 중국은 전통복식을 콘텐츠와 결합했다. 전통을 쉽게 접하고 경험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경쟁력으로 작동하는 구조다.

우리나라에도 이미 성공 사례가 있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문화상품 '뮷즈'는 전통유물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K헤리티지의 시장성을 입증했다. 지난해 매출 400억원을 넘어서며 전년 대비 약 2배 성장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러한 시장이 자생적으로 형성되기 어렵다는 점이다. 기반과 수요가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별 사업자가 전통문화를 산업으로 확장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초기 시장 형성과 수요 창출은 국가의 역할이 될 수밖에 없다.

K컬처가 세계를 향해 열어젖힌 '문'이라면, K헤리티지는 그 문 뒤에 있는 한국의 내면을 보여주는 작업이다.
한류가 장기적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가장 오래된 자산을 가장 현대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작업을 더 이상 늦춰서는 안 된다.

localplace@fnnews.com 김현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