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거지맵·거지방·가짜 배달앱'을 하시나요...고물가 직격탄 맞은 2030, 식비부터 줄였다

김예지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12 14:36

수정 2026.04.12 14:35

월 생활비의 37%가 식비...청년층 "먹는 비용부터 줄인다"
저가 식당 공유 '거지맵'·가짜 배달앱까지 등장
전문가들 "단순한 유행 아닌 고물가 맞춤형 소비구조 재편"
최대 1만원 수준의 식당 목록이 지도 형태로 제공되는 '거지맵' 사이트. 이용자들이 직접 식당 정보를 등록하는 구조다. 사진=포털사이트 캡쳐
최대 1만원 수준의 식당 목록이 지도 형태로 제공되는 '거지맵' 사이트. 이용자들이 직접 식당 정보를 등록하는 구조다. 사진=포털사이트 캡쳐

[파이낸셜뉴스] #.자취 중인 취업준비생 박모씨(29)는 점심과 저녁을 주로 저렴한 식당이나 간단한 도시락으로 해결하고 있다. 배달앱은 아예 삭제했고 저가 식당 정보를 모아둔 '거지맵'을 참고해 1만원 이하 식당을 찾아다니는 것이 일상이 됐다. 그는 "커피나 간식까지 포함해서 하루에 3만원 넘게 쓰는 날도 많았는데 지금은 식비를 하루 1만원 안으로 묶어두고 있다"며 "식사 메뉴를 고민할 때 '얼마까지 쓸 수 있나'부터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중동 전쟁 장기화로 고유가·고환율·고물가 흐름이 지속되는 가운데 청년층의 소비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다. 특히 생활비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식비를 줄이기 위한 '초절약' 흐름이 확산되면서 한 끼 1만원을 넘지 않는 식당 정보를 공유하는 '거지맵'과 실제 주문 없이 배달앱 이용 과정을 그대로 재현한 '가짜 배달앱'까지 등장했다.

불안정한 국제 정세 속 경제심리 위축과 채용시장 둔화가 이어지면서 가성비를 중시하는 식생활 흐름이 하나의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 잡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12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최근 청년층 사이에서는 식비 부담을 줄이기 위한 움직임이 전반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 김모씨(24)는 "하루 식비를 9000원 안으로 맞추는 게 목표"라며 "배달은 거의 끊고 학식이나 편의점으로 끼니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직장인 최모씨(28)도 "월급은 크게 안 올랐는데 밥값만 계속 오르다 보니 먹는 비용부터 줄이게 됐다"고 전했다.

이 같은 흐름은 청년층의 식비 부담이 실제 생활비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구조와 맞물려 있다. 최근 국무조정실이 발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 조사'에 따르면 청년 가구의 월평균 생활비는 213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가운데 식료품비는 80만원으로 전체의 37.6%를 차지해 가장 높은 비중을 기록했다.

식비 절약 기조가 강화되면서 저가 식당 정보를 모아둔 지도 서비스 '거지맵'이 활성화되는 추세다. 포털에서 '거지맵'을 검색해 접속하면 2000원부터 최대 1만원 수준의 식당 목록이 지도 형태로 제공된다. 이용자들이 직접 등록한 식당과 후기 등을 확인하며 상황에 맞는 식사를 선택할 수 있는 구조다. 서울을 넘어 부산·대구·경북·전라·충청권 등 전국 각지로 관련 정보가 공유되면서 앱 형태로도 출시되는 등 이용 범위가 점차 넓어지는 모습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거지방'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해당 공간은 특정 지역이나 유사한 생활조건을 공유하는 이용자들을 찾아 저렴한 식당 정보와 식비 절약 노하우를 공유하는 등 일종의 '짠테크' 커뮤니티로 기능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하루 식비 5000원으로 버티는 사람에게 최고의 공간" "건강하게 절약하자는 분위기가 좋다" 등의 반응을 보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유행하는 '가짜 배달앱'. 직접 가상의 메뉴를 담고 주소와 연락처를 입력해 결제하면 가상 라이더가 배정되지만 실제 지출이나 배달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진=X(구 트위터) 캡쳐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상에서 유행하는 '가짜 배달앱'. 직접 가상의 메뉴를 담고 주소와 연락처를 입력해 결제하면 가상 라이더가 배정되지만 실제 지출이나 배달은 이뤄지지 않는다. 사진=X(구 트위터) 캡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는 '가짜 배달앱' 역시 주목받고 있다. 이는 실제 배달이 이뤄지지 않는 모바일 데모 페이지로 배달앱과 유사한 인터페이스를 구현해 사용자가 가상의 주문 과정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든 서비스다.

사용자는 가상의 식당과 메뉴를 선택해 장바구니에 담고 주소와 연락처를 입력해 결제까지 진행할 수 있다. 이후 가상 라이더가 배정되는 화면까지 구현되지만 실제 비용은 나가지 않고, 음식도 배달되지 않는다. 대신 주문을 하지 않음으로써 돈과 칼로리를 아꼈다는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취업준비생 이모씨(27)는 "야식이 당길 때 메뉴를 담아보면 어느 정도 만족이 된다"며 "배달을 한 번 참을 때마다 돈을 아낀다는 느낌이 들어 자주 이용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흐름을 단기간의 유행이 아닌 고물가 상황 속 '생존 중심 소비구조 재편'으로 분석한다.
이영애 인천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청년층은 가처분소득이 크게 늘지 않는 상황에서 줄일 수 있는 지출 항목이 제한적"이라며 "그 결과 매일 반복적으로 지출이 발생하는 식비를 우선적으로 줄이는 선택이 나타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경기 회복에 대한 기대가 낮고 전쟁 등 경제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는 이 같은 절약형 소비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도 "단기간에 고물가 현상 해결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순히 참고 줄이는 데 그치지 않고, 가짜 배달앱처럼 기존 소비 행동을 유지하면서도 비용 지출 없이 심리적 만족을 얻어 우울감을 완화하려는 경향도 나타난다"며 "앞으로도 (청년층 사이에서) 비용을 줄이거나 소비를 대체하는 다양한 방식이 계속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yesji@fnnews.com 김예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