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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視角] 전쟁으로 앞당겨지는 에너지 전환

김영권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4.20 19:10

수정 2026.04.20 19:10

김영권 중기벤처부장
김영권 중기벤처부장
지난 2월 말 시작된 미국·이란 전쟁이 어느덧 2개월 차에 접어들고 있다. 휴전과 전쟁 사이 긴박함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우리나라를 비롯한 글로벌 산업계는 예상치 못한 충격에 물가부터 환율까지 전방위에 걸쳐 어려움이 커지고 있다.

1970년대 오일쇼크로 대표되는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는 언제나 에너지 위기를 친구처럼 달고 왔다. 당시 유가는 단기간에 4배 이상 폭등했고, 주요 선진국들은 심각한 경기침체를 겪었다. 이번에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전쟁 직전 배럴당 60달러대에 머물던 국제유가는 갈등이 최고조에 이르렀던 3월 중순께 110달러까지 오르기도 했다. 중동 지역의 긴장 고조가 글로벌 원유 공급망에 직접적인 충격을 주면서 원유 가격 불안정성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동 지역에 원유 및 가스 등 화석연료가 집중된 영향이다.

특히 이번 전쟁으로 인해 화학산업의 쌀로 불리는 나프타 수급 대란이 일어나면서 산업계에 직격탄을 날리기도 했다. 원유를 정제해 만드는 나프타는 대부분의 플라스틱 제품의 핵심 원료로 사용되는 만큼 나프타 부족이 장기화될 경우 석유화학 산업은 물론 의료, 유통, 제조 등 산업 전반에 실질적인 타격을 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이런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다. 바로 친환경 산업의 약진이다. 전쟁 장기화로 인해 재생에너지 분야는 오히려 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신사업으로 각광받고 있다.

그동안 친환경으로의 전환은 그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단기간에 많은 자본이 투입돼야 하는 데다 투자 대비 실질적인 메리트가 크지 않다는 인식 때문에 기업 경영전략에서 후순위로 밀려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미국·이란 전쟁에서 보듯 에너지 안보 확보 여부가 국가 경쟁력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산업계 전반에서는 탈화석연료로의 방향 전환에 가속도가 붙고 있다.

예컨대 제지업계의 경우 중동전쟁 장기화로 인해 비닐과 플라스틱의 원료인 나프타 수급 불안이 커지면서 종이 포장재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무림과 한솔제지 등 제지업계는 이에 대응, 높은 품질과 기술적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친환경 포장재의 안정적인 공급과 시장 대응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폐비닐과 플라스틱을 고온으로 가열해 얻는 열분해유를 비롯해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도 주목받고 있다. 국내 폐플라스틱을 열분해할 경우 하루 약 7만5000배럴 규모의 대체원유 생산이 가능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도시유전은 폐플라스틱을 연소하지 않고 300도 미만의 저온에서 촉매 분해해 나프타 수준의 고품질 재생원료를 생산하는 기술을 상용화했다. 이를 통해 연간 6500t의 폐플라스틱·폐비닐을 처리해 최대 4550t의 플라스틱 재생원료유를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이미 준공했다.

정부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정부는 화석연료 의존을 줄이고 재생에너지·전기화를 축으로 한 '에너지 대전환' 로드맵을 내놨다. 현재 약 10%에 불과한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오는 2030년 20% 이상까지 끌어올릴 계획이다.

미국·이란 전쟁이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는 판단하기 쉽지 않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는 만큼 상당 기간 불확실성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매번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발생할 때마다 반복되는 에너지 위기는 이제 더 이상 불가항력으로 치부돼서는 안 된다.


전쟁이 촉발한 위기가 역설적으로 에너지 전환의 속도를 앞당기고 있다. 글로벌 주요 선진국들도 이미 화석연료 이후 시대를 대비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친환경을 중심으로 한 에너지 전환을 통해 특정 지역 의존에서 비롯되는 공급망 리스크를 줄이고, 새로운 시장을 선점할 기회로 삼아야 한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중기벤처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