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리더의 새로운 일, 세 가지로 정리한다 [김문경의 리더십테크] (16)
[파이낸셜뉴스] 리더의 책상 위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사라지고 있다. 일정 조율, 정기 보고 취합, 성과 평가 입력, 부서 간 정보 중계 같은 한때 '관리'라는 이름으로 리더의 하루를 채우던 일들이다. 가트너(Gartner)는 2026년까지 전 세계 기업의 20%가 AI를 활용해 조직을 평탄화하고 중간관리자 직위의 절반 이상을 제거할 것으로 전망했고, 구글과 아마존 같은 글로벌 기업은 이미 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그렇다면 AI가 관리 업무를 가져간 자리에서, 리더는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으려면 거꾸로 물어야 한다. AI가 결코 가져갈 수 없는 영역은 어디일까?
12년 전, 구글이 자사 180개 팀을 2년간 분석한 '프로젝트 아리스토텔레스(Project Aristotle)' 연구를 진행했다. 처음 구글은 천재의 조합이나 명확한 위계가 고성과 팀의 비밀일 것이라 예상했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가장 강력한 단일 예측변수는 '심리적 안전감(psychological safety)'이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에이미 에드먼슨(Amy Edmondson)이 1999년 정립한 이 개념은 두려움 없이 의견을 내고, 실수를 보고하며, 권위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환경이 팀의 성과를 가른다는 것이다. 심리적 안전감은 단순한 편안함을 뜻하지 않는다. 따뜻한 분위기가 아니라, 솔직한 이견이 살아남는 환경을 의미한다.
여기서 가리키는 의미는 명확하다. AI가 못 하는 일은 사람의 마음에 신뢰의 공간을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그 공간은 리더가 무언가를 새로 더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손에 쥐고 있던 것을 내려놓을 때 열릴 수 있다. AI 시대 리더의 새로운 일을 3가지 행동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회의의 무게중심을 실적 점검에서 성장 대화시간으로 만들어야 한다. AI가 이미 데이터 취합과 진행 상황 모니터링을 담당하는 시대에 리더가 여전히 회의실에서 "지난 분기 실적이 왜 이런가?"를 묻고 있다면, 그것은 AI가 더 잘하는 일을 사람이 반복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리더의 시간이 가장 값지게 쓰이는 자리는 데이터를 확인하는 자리가 아니라 사람을 마주하는 자리여야 한다.
그 자리에서 가장 자주 던져야 할 질문은 "왜 못했나"가 아니라 "무엇을 배웠나", "무엇이 막혀 있는가"를 묻는 것이어야 한다. 전자는 책임을 묻지만 후자는 성장을 연다. 같은 시간에 같은 사람과 마주 앉아도,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그 대화가 조직의 학습으로 쌓이느냐 두려움으로 쌓이느냐가 갈린다.
둘째와 셋째 행동은 한 뿌리에서 갈라져 나온 같은 원칙이다. 리더가 손에 쥐고 있던 통제를 내려놓는 일이다. 하나는 의사결정 권한을 내려놓는 것, 다른 하나는 실패를 평가의 대상에서 내려놓는 것이다.
먼저 권한이다. 한국기업의 경영진은 이 과제에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있다. CEO스코어 분석에 따르면 2024년 기준 500대 기업 대표이사 평균 연령은 59.6세로, 4년 전보다 1.1세 늘었고 60대 비중이 50대를 추월했다. 이 세대는 '관리가 곧 리더십'이라는 등식을 평생 학습해온 세대다. 이들에게 "팀원을 믿고 권한을 내려놓아라"는 조언은 이해는 되지만, 실천이 어려운 부분이다. 분기 실적이 흔들리는 순간 본능적으로 다시 통제로 돌아간다. 그러나 이 본능을 거스르지 못하면, AI 시대 조직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현장이 즉시 판단하고 실행할 수 있는 영역을 명문화하는 것만으로도 의사결정 속도와 구성원의 책임감은 동시에 올라간다.
다음은 실패다. 권한을 내려놓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권한을 받은 사람이 실수했을 때 그 실수가 평가의 도구가 되어 돌아온다면, 다음부터 그 사람은 결정을 미루고 책임을 회피한다. 그래서 작은 실험을 허용하고, 실패한 시도를 공개적으로 학습 자산으로 전환하는 자리가 정례화되어야 한다. 그 자리에서 리더가 가장 먼저 자신의 실패를 꺼내야 한다. 에드먼슨이 일관되게 강조한 통찰이 있다. 문제가 보고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조직이 건강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침묵하고 있다는 증거다. 실패가 보고되지 않는 조직은 실패가 없는 조직이 아니라 실패를 숨기는 조직이며, 숨겨진 실패는 반드시 더 큰 비용으로 청구된다.
이 3가지 행동은 다른 일처럼 보이지만 결국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리더가 통제의 손을 펴는 순간, 비로소 신뢰의 공간이 열린다는 것이다. AI가 일정과 보고를 처리하고 있는데도 리더가 여전히 통제의 자리에 머물러 있다면, 그 자리는 머지않아 비워진다. 반대로 사람의 가능성을 여는 일에 시간을 쓰는 리더는 어떤 기술이 등장하든 대체되지 않는다. 다음 회의에서 던지는 질문 하나, 다음 결재에서 내려보내는 권한 하나, 다음 회고에서 먼저 꺼내는 자신의 실패 하나. 그 작은 선택들이 모여 진짜 리더가 누구인지 드러난다.
/ 김문경(국민대학교 겸임교수·대한리더십학회 부회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