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피눈물 '뚝뚝' 흘린 11세 소년"...극심한 스트레스가 부른 초희귀질환 [헬스톡]
[파이낸셜뉴스] 인도의 한 11세 소년이 눈과 코, 귀에서 갑자기 피를 흘리는 기이한 증상으로 병원을 찾았다가 '학업 스트레스'가 원인이라는 진단을 받은 사례가 국제 학술지 '세이지 저널(Sage Journals)'에 보고됐다.
4일 일간 더 선의 보도에 따르면 이 소년은 약 한 달 동안 눈과 코, 귀에서 원인 모를 출혈이 반복되자 부모와 함께 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기이하게도 소년은 출혈이 일어날 때마다 어떠한 통증도 느끼지 않았으며, 피는 보통 몇 분 안에 자연스럽게 멈췄다.
의료진이 소년을 정밀 검사했지만, 외상이나 출혈을 일으킬 만한 '구조적 원인'은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혈액 검사 결과 수치나 혈액 응고에 관여하는 모든 건강 지표가 정상이었다. 국소적인 상처나 자해, 출혈 질환의 흔적도 없었다. 다만, 소년의 눈과 귀에서 흘러나온 분비물에 실제 혈액이 섞여 있다는 사실만은 확인됐다.
광범위한 검사 끝에 의료진은 소년의 증상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해 땀샘 등에서 피가 스며 나오는 희귀 질환인 '스트레스성 혈한증(Haematohidrosis)'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일명 '피땀(bloody sweat)'이라고도 불리는 혈한증은 상처가 없는 온전한 피부나 땀샘, 입, 코, 귀, 눈물샘 등을 통해 자발적으로 피가 섞인 액체가 배출되는 현상이다. 전 세계적으로 의학계에 보고된 사례가 50건이 채 되지 않을 정도로 극히 드물며, 주로 아시아권의 아동 및 청소년에게서 발생하는 경향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극도의 감정적 스트레스, 공포, 심리적 트라우마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발병 메커니즘은 아직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다.
결정적인 단서는 부모의 진술에서 나왔다. 부모는 출혈 증상이 주로 "학업 스트레스나 또래 집단의 압박감, 또는 성적에 대한 부모의 기대치가 높아지는 시기"에 발생했다고 털어놨다.
이에 의료진은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를 통해 소년과 부모에 대한 심리 평가를 진행했다. 이후 소년은 4주 동안 매주 인지행동치료(CBT) 형태의 심리 상담을 받았으며, 불안 증상 완화에 쓰이는 베타차단제인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을 처방받았다.
심리 치료와 약물 치료를 병행하자 불과 2주 만에 눈에 띄는 호전이 나타났다. 소년의 출혈 빈도는 크게 줄어들었고, 4주 차에는 가벼운 출혈만 간헐적으로 발생했다. 치료 시작 3개월 후, 소년은 일상생활을 하는 동안 아무런 증상 없이 완전히 회복된 것으로 전해졌다.
사람이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의 방어 기제인 교감신경계가 과도하게 활성화된다. 이때 땀샘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수많은 모세혈관이 극도로 수축했다가 갑작스럽게 이완되면서 혈관벽이 파열되는 현상이 일어난다. 파열된 혈관에서 새어 나온 혈액이 주변의 땀샘이나 눈물샘으로 흘러 들어가고, 결국 분비물이 배출될 때 혈액이 섞여 밖으로 나오게 되는 원리다.
혈한증 환자들은 출혈 시 통증을 거의 느끼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출혈은 예고 없이 얼굴, 손바닥 등 땀샘이 밀집한 곳이나 눈, 귀, 코 등 점막 부위에서 갑자기 발생하며 보통 수분 내에 자연적으로 멈춘다.
문제는 증상이 유발하는 '심리적 악순환'이다. 환자는 자신의 기이한 출혈 증상을 보고 큰 충격과 수치심을 느껴 사회적으로 고립되거나 공황 발작을 겪기 쉽다. 이러한 불안감은 또 다른 스트레스로 작용해 교감신경을 자극, 증상을 다시 악화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진단은 피부 조직이나 혈액 자체의 결함을 찾는 것이 아니라, 출혈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질환이 없음을 증명하는 '배제 진단'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혈액 응고 장애나 혈소판 감소증 등 내과적 질환이 없는지 정상 수치를 확인하고, 자해 등 물리적 상처 여부를 꼼꼼히 살핀다.
다행스러운 점은 혈한증이 생명에 지장을 주는 불치병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체 구조적 결함이 아니기 때문에 근본 원인인 '스트레스성 신경 과활성화'를 억제하는 데 치료의 초점을 맞춘다.
전문의들은 교감신경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불안 증상을 완화하는 약물을 처방하는 동시에, 인지행동치료(CBT) 등 심리 상담을 필수적으로 병행할 것을 권고한다.
의료 전문가들은 "혈한증은 신체가 감당할 수 없는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는 일종의 비상경보"라며 "희귀 질환에 대한 공포로 위축된 환자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주는 가족과 주변의 굳건한 지지가 치료의 핵심"이라고 조언한다.
moon@fnnews.com 문영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