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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52만 섬나라의 마흔살 골키퍼, 보지냐가 증명한 '축구의 낭만' [2026 월드컵]

김희선 기자
파이낸셜뉴스

'무적함대' 가로막은 카보베르데의 맹렬한 투혼
0-0 무승부 속 빛난 골키퍼 보지냐의 활약과 눈물

(출처=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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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낸셜뉴스] 돈과 명예, 정교한 자본주의 시스템이 지배하는 현대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도 때로는 '공 하나와 열정'만으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 16일(한국시간) 미국 조지아주의 애틀랜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경기가 대표적인 예다. 이날 경기서 '무적함대' 스페인을 멈춰 세운 건 인구 52만명의 아프리카 작은 섬나라 카보베르데, 그리고 그들의 골문을 지킨 마흔 살의 노장 골키퍼 보지냐였다.

마흔살 골키퍼의 월드컵 데뷔전, 스페인을 얼어붙게 만든 '통곡의 벽'

객관적인 전력 차이는 비교조차 불가능했다. 호화 군단 스페인의 무난한 대승이 점쳐졌던 경기였지만, 막상 뚜껑을 열자 스페인 선수들은 카보베르데의 골문 앞을 버티고 있는 거대한 벽을 단 한 번도 뚫지 못했다.

주인공은 불혹의 나이에 생애 첫 월드컵 무대를 밟은 골키퍼 보지냐였다. 그는 스페인이 소나기 같이 슈팅을 쏟아 붓는 가운데, 7개의 유효슈팅을 모두 선방으로 막아내며 팀의 0-0 무승부를 사수했다. 축구 통계 매체 소파스코어에 따르면 보지냐는 무려 1.46골에 달하는 기대 실점(xG)을 맨몸으로 지워냈다.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카보베르데 역사상 첫 월드컵 무대에서 첫 승점을 따낸 이 마흔 살의 골키퍼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FIFA 역시 경기 후 공식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POTM)'로 그를 선정하며 경의를 표했다.

보지냐의 본명은 조시마르 조제 에보라 디아스로, 그의 유니폼에 적힌 이름인 보지냐는 포르투갈어로 '작은 할머니'를 뜻한다. 마르카에 따르면 그는 어린 시절 부모와 떨어져 조부모 손에서 자랐으며 승부욕이 강한 선수였는데, 경기를 하다 화를 내면 동네 형들이 '할머니한테 이를 거냐'며 놀리다가 '보지냐'라는 별명이 붙었다.

(출처=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출처=연합뉴스) /사진=연합뉴스

월드컵의 역사를 수놓은 '축구 변방'들의 위대한 반란

카보베르데가 보여준 이번 이변은 월드컵이 왜 지구상에서 가장 위대한 축구 축제인지를 다시금 상기시킨다. 월드컵 역사에는 자본과 전력의 열세를 뒤엎고 세계를 놀라게 한 '약소국의 반란'이 늘 존재해 왔다.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당시 북한은 세계적 강호 이탈리아를 1-0으로 꺾고 아시아 국가 최초로 8강에 진출하는 전대미문의 이변을 연출했다.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 때는 카메룬이 디에고 마라도나가 이끌던 '디펜딩 챔피언' 아르헨티나를 1-0으로 제압하며 아프리카 축구의 매운 맛을 보여줬고,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사상 처음으로 본선에 오른 세네갈이 우승 후보 프랑스를 1-0으로 꺾는 이변이 벌어지기도 했다.

공 하나와 신발 한 켤레로 써내려 가는 축구의 낭만

프로 스포츠적인 측면에서 축구는 수천억원의 이적료와 천문학적인 자본이 투입되는 철저한 비즈니스다. 메이저 클럽과 강대국들은 최첨단 인프라와 거대 자본을 앞세워 승리를 만들어 나간다.

그러나 동시에 축구는 그 어떤 스포츠보다 공평하고 원초적이다. 화려한 장비나 막대한 자본이 없어도, 오직 신발 한 켤레와 공 하나, 그리고 달릴 수 있는 공간만 있다면 지구 반대편의 이름 모를 소년도, 인구 52만의 작은 섬나라 선수도 기회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자본의 논리로 촘촘히 짜인 예측을 단 90분 만에 무너뜨릴 수 있는 무대. 마흔 살 노장 골키퍼의 눈물과 카보베르데의 투혼이 보여준 0-0의 기적은 우리가 왜 여전히 밤을 새우며 공 구르는 모습에 열광하는지, 그리고 월드컵이 왜 전 지구적 축제인지 다시 한번 증명해 냈다.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경기가 열린 애틀랜타 스타디움 /사진=연합 지면외신화상(AFP)
스페인과 카보베르데의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H조 1차전 경기가 열린 애틀랜타 스타디움 /사진=연합 지면외신화상(AFP)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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