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겉으로는 열증(熱症)을 보였지만 실제로는 한증(寒症)이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어느 집안의 며느리가 병이 났다. 나이는 스무 살 남짓이었다. 번조와 헛소리를 하면서 열흘 가까이 누워 병을 앓았다. 마을 의원에게 한약을 복용하였으나 번조와 헛소리가 가라앉지 않았다.
집안의 어른은 의원에게 다시 치료를 요청했다. 그런데 마을 의원은 "내가 이미 적당한 처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차도가 없으니 내가 할 도리는 다 한 것 같소이다."라고 하면서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다.
집안 어른은 어쩔 수 없이 옆 마을 명의에게 진료를 청했다.
명의가 왕진을 해서 진료를 해 봤다. 며느리는 조급하고 불안하여 함부로 말하고 욕설을 하며, 찬 것을 먹고자 하였다. 그런데 손은 차고, 맥은 침약(沈弱)하였다. 입은 마른 듯하나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입술은 마른 듯 보이지만 혀는 윤택하였으며, 혀빛도 붉지 않았다. 얼굴빛은 누렇고 담백하며, 몸에는 열이 없었다.
명의는 '열병이면 손이 뜨겁고 맥은 부삭(浮數)할 것이다. 입이 마르고 물을 찾을 것이고, 입술과 혀까지 모두 말랐을 것이다. 당연히 열병이면 혀도 붉고 얼굴이 붉을 것이며, 몸에는 번열이 심할 것이다.'라고 생각에 잠겼다.
명의는 말하기를 "이는 허한병(虛寒病)이니, 아마도 한량하고 발산하는 약을 지나치게 써서 그리된 듯합니다."라고 했다.
집안 어른이 동네 의원이 처방한 약포지를 가지고 왔다. 처방을 살펴보니 과연 황금, 황련, 강활, 과루인, 해석 같은 약들이었다. 이들 약중에 황금과 황련은 열을 치는 약재들이었다.
집안의 어른이 명의에게 "며느리가 한병(寒病)이라면 어찌하여 번조하며 찬 것을 먹고자 하고 헛소리를 하며 잠들지 못하는가?"라고 하였다.
명의는 "한병(寒病)에도 일정한 형상이 있고 변한 형상이 있는 법입니다. 대개 오한이 나고 손이 차며 맑은 설사를 하고, 입안이 편안하여 갈증이 없는 것이 그 상(常)입니다. 그러나 번조하고 불안하며 차가운 땅에 눕고자 하고 찬 것을 먹고자 하는 것은 그 변(變)입니다. 이 경우는 한병(寒病)이면서도 도리어 열의 형상을 보이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집안의 어른은 의학을 약간 공부를 해서 궁금함이 많았다. 그래서 질문을 하기를 "한병(寒病)이면서도 이렇게 열의 형상이 나타나는 까닭은 무엇인가?"하고 물었다.
명의는 대답하기를 "양기가 허한(虛寒)하여 용뢰지화(龍雷之火)가 밖으로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옛사람은 이르기를 '음이 성하여 양을 막는다'라고 하였고, 또 이르기를 '안쪽은 진짜 한이면서도 바깥쪽은 가짜 열이 나는 병'이라 하였습니다. 따라서 치료는 마땅히 찬 약으로 불을 끄는 것이 아니라 떠오른 불을 끌어다가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면 될 뿐입니다. 그렇지 않고 찬 약을 쓰면 약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곧 위급해질 것입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때 갑자기 동네 의원이 언제 왔는지, "지금 며느리에게 열약을 쓰면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요. 내가 약을 더 이상 처방하지 못한 것은 증상을 보면서 잠시 말미를 가졌을 뿐이요."라고 하는 것이다.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다. 두 의원의 판단이 상이하게 달랐고 두 의원 모두 자신의 의견을 따르지 않으면 며느리가 위태로워질 것이라고 하니 당황스러웠다.
집안 어른이 두 의원을 번갈아 가면서 쳐다 보았다. 그런데 명의는 차분한 표정에 호흡도 안정이 되어 있었다. 반면에 동네 의원은 얼굴을 울그락불그락하면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집안의 어른은 명의의 손을 잡더니 "며느리의 생사를 맡길테니 최선을 다해 노력해 주시오."라고 당부했다.
명의는 이에 사역탕(四逆湯)을 쓰되, 건강과 부자 각 2돈에 육계 8푼을 더하고, 당삼, 백출, 숙지황, 조인, 복신 각 3돈을 더하여 달여 식혀서 복용하게 하였다.
사역탕(四逆湯)은 손발이 차가운 사지궐냉(四肢厥冷), 기력이 극도로 쇠약한 상태, 설사와 구토로 인한 탈진, 양기(陽氣)가 크게 부족한 상태에 적용되는 처방이다. 여기에 더해진 약재들도 모두 한증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것들이다.
그랬더니 과연 번조가 점차 가라앉았고, 이어 한 첩을 더 복용하니 편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이후로 정신이 안정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이상 욕설하지 않았다. 다시 귀작육군자탕(歸芍六君子湯)으로 며칠간 조리하여 완전히 나았다.
귀작육군자탕(歸芍六君子湯)은 육군자탕에 당귀와 백작약을 가미한 처방으로 비위허약(脾胃虛弱), 식욕부진, 소화불량, 빈혈 경향, 병후 쇠약, 안색이 창백하고 기혈이 부족한 경우에 적합한 처방이다.
추후 명의가 그 집안의 어른을 찾아 물었다. "그때 왜 저의 처방을 선택하신 겁니까?"
그러나 집안의 어르신은 "매사에 급하게 서두르면 일을 그르치는 법이네. 자네는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위급한 환자 앞에서도 제대로 된 판단을 할 것이라고 여겼을 뿐이네."라고 하는 것이다.
실제로 진료를 하다 보면 위급한 환자 앞에서는 급하게 서둘러 겉으로 나타나는 증상에만 집착할 때가 많다. 그럴수록 냉정하게 판단해서 겉으로 드러난 증상뿐만 아니라 몸속에 숨어 있는 원인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총계초당의언(叢桂草堂醫案)> 方兆珍君令媳。年二十餘。臥病經旬。服藥多劑。而煩躁譫語。卒不能平。延予治之。見躁擾不安。妄言罵詈。欲食冷物。手冷。脈息沉弱。口雖渴而不能飲。唇雖焦而舌則潤澤。且舌色不紅。面色黃淡。身不發熱。予謂此虛寒病也。殆寒涼發散太過乎。檢閱前方。果皆芩、連、羌活、栝蔞、海石之類。病家問既系寒病。何以煩躁欲食冷物。而譫語不能寐也。予應之曰。寒病有常有變。凡惡寒手冷。下利清穀。口中和而不渴者。此其常也。若躁擾不安。欲臥冷地。欲食冷物。則其變也。何謂之變。以其寒病而反現熱象也。其所以現此熱象者。因陽氣虛寒。龍雷之火浮越於外。古人所謂陰盛格陽。又曰內真寒而外假熱之病也。治宜引火歸元。否則涼藥入口則立斃矣。乃與四逆湯。乾姜、附子各二錢。加肉桂八分。黨參、白術、熟地、棗仁、茯神各三錢。煎成冷服。果躁擾漸寧。接服一劑。能安睡矣。自是神安能食。不複罵詈。複以歸芍六君子湯。調補數日而痊。(방조진 군의 며느리로, 나이 스무 살 남짓이었다. 열흘 가까이 누워 병을 앓으며 여러 첩의 약을 복용하였으나 번조와 헛소리가 가라앉지 않아 나를 청해 치료하게 하였다. 가서 보니 조급하고 불안하여 함부로 말하고 욕설을 하며, 찬 것을 먹고자 하였다. 손은 차고, 맥은 침약하였다. 입은 마른 듯하나 물을 마시지 못하고, 입술은 마른 듯 보이지만 혀는 윤택하였으며, 혀빛도 붉지 않았다. 얼굴빛은 누렇고 담백하며, 몸에는 열이 없었다. 나는 말하였다. 이는 허한병이니, 아마도 한량하고 발산하는 약을 지나치게 써서 그리된 듯하다. 이전 처방을 살펴보니 과연 황금·황련·강활·과루·해석 같은 약들이었다. 집안에서 묻기를, 이미 한병이라면 어찌하여 번조하며 찬 것을 먹고자 하고 헛소리를 하며 잠들지 못하는가 하였다. 나는 대답하였다. 한병에도 일정한 형상이 있고 변한 형상이 있다. 대개 오한이 나고 손이 차며 맑은 설사를 하고, 입안이 편안하여 갈증이 없는 것이 그 상이다. 그러나 번조하고 불안하며 차가운 땅에 눕고자 하고 찬 것을 먹고자 하는 것은 그 변이다. 무엇을 변이라 하는가 하면, 한병이면서도 도리어 열의 형상을 보이는 것이다. 이렇게 열의 형상이 나타나는 까닭은 양기가 허하고 한하여, 용뢰지화가 밖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음이 성하여 양을 막는다 하였고, 또 내진한 외가열의 병이라 하였다. 치료는 마땅히 불을 끌어 근원으로 돌아가게 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 찬 약을 쓰면 약이 입에 들어가자마자 곧 위급해질 것이다. 이에 사역탕을 쓰되, 건강과 부자 각 2돈에 육계 8푼을 더하고, 당삼·백출·숙지황·조인·복신 각 3돈을 더하여 달여 식혀서 복용하게 하였다. 과연 번조가 점차 가라앉았고, 이어 한 첩을 더 복용하니 편히 잠들 수 있게 되었다. 이후로 정신이 안정되고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이상 욕설하지 않았다. 다시 귀작육군자탕으로 며칠간 조리하여 완전히 나았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