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스피싱 배상·출연금 확대… 잇단 규제입법에 금융권 긴장
보이스피싱 무과실 배상제 두고
일각 "자기책임 원칙 훼손" 지적
서민금융법 개정안 논의 재개에
"출연료 상시화 부담" 우려 커져
금융업 관련 법안에 대한 논의가 하반기 국회에서 다시 속도를 낼 전망이다. 보이스피싱 피해 구제를 위한 '무과실 배상책임제'와 금융사 출연금 확대를 골자로 한 서민금융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재가동되고,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편작업도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이들 법안은 금융회사의 책임과 비용 부담을 크게 늘릴 수 있다는 점에서 업권의 우려가 적지 않다.
23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반기 국회 원 구성이 마무리되면 정무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 관련 법안 심사가 재개될 전망이다.
■보이스피싱 배상책임 확대 전망
가장 민감한 법안으로는 무과실 배상책임제를 담은 통신사기피해환급법 개정안이 꼽힌다. 해당 법안은 보이스피싱 피해가 발생했을 때 금융회사의 고의·과실 여부와 관계없이 피해자에게 일정 금액을 보상하도록 하고 있다.
지난 10일 이억원 금융위원장이 5대 금융지주 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추진에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를 밝힌 만큼 하반기 국회에서 우선 논의될 가능성이 높다. 금융당국은 개인이 스미싱과 악성 앱 등 관련 수법에 모두 대응하기 어려운 만큼 금융회사에 피해 보상 책임을 일부 부여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현재 국회에는 강준현·조인철 더불어민주당 의원안이 각각 계류 중이다. 법률상 보상한도는 최대 5000만원까지 설정할 수 있도록 하고, 구체적인 금액은 시행령에서 정하도록 했다.
은행권은 피해자 보호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금융권에 책임이 과도하게 집중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보이스피싱은 금융회사뿐만 아니라 통신사, 플랫폼 사업자, 수사기관 등이 함께 대응해야 하는 범죄인 만큼 특정 업권에 비용 부담을 안기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주장이다.
A은행 관계자는 "여당이 추진하는 만큼 큰 방향은 유지되겠지만 보상한도와 예외규정 등 세부내용은 업계와 조율을 거칠 것으로 보인다"며 "시행이 가능한 수준으로 범위를 좁혀가는 논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전했다. B은행 관계자도 "선의의 피해자도 있지만 제도를 악용하려는 사례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은행은 수사기관이 아니어서 허위 신고 여부까지 판단하기 쉽지 않다"고 짚었다.
국회 정무위도 지난 3월 검토보고서를 통해 '자기책임원칙'의 훼손 가능성과 도덕적 해이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금융권은 자기부담금 도입, 반복 수령 제한, 신고기한 설정 등의 보완장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출연금 확대·지배구조 개편도 대기
서민금융법 개정안도 금융권 부담을 키울 수 있다. 개정안은 서민금융진흥원 내 서민금융안정기금을 설치하고, 금융회사 출연금의 일몰 규정을 없애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일몰은 오는 10월 8일이지만 8월 말까지 법이 개정돼야 내년 1월 기금 설치가 가능하다.
'서민금융 지원 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겠다'는 취지지만 금융권에서는 사실상 상시적 추가 부담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지난 4월부터 금융회사 출연요율은 0.06%에서 0.1%로 인상됐다. 이에 올해 출연금은 약 3818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345억원이 늘어 민간의 부담이 크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지배구조 관련 제도 정비도 추가 입법 논의 대상에 오를 전망이다. 금융위원회가 금융지주 회장 선임 절차 및 연임 제한 여부, 이사회 독립성, 성과보수 체계 등 개편 결론을 내면 이를 뒷받침하는 입법안이 마련돼야 한다. 당국은 KB금융 회장 숏리스트 선정 절차가 시작되는 7월 3일 전에 지배구조 개선안을 발표할 방침이다.
지난해 급물살을 탔지만 여당 내 이견과 지방선거 일정으로 논의가 멈췄던 디지털자산기본법은 하반기에도 속도 조절 가능성이 거론된다.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에 초점을 맞춘 1단계 법안이 통과된 이후 시장 전반의 제도를 담은 2단계 입법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 규제, 가상자산 발행·상장 기준, 시장 감독체계 등을 둘러싼 쟁점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상황이다. 여야 간에 이견이 큰 것도 문제지만 여당 내에서도 의견 조율이 되지 않아 논의가 장기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하반기 국회 정무위 구성에도 이목이 쏠리고 있다. 정무위원장과 여야 간사, 위원 구성이 전면 개편될 예정인 만큼 법안 심사 우선순위와 논의 방향에 적지 않은 변화가 점쳐진다. 특히 정무위원장이 기존 국민의힘에서 여당인 민주당 의원으로 바뀔 경우 지연됐던 금융 입법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 국민의힘은 정무위를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금융 입법 완성을 위해 정무위를 비롯한 경제 상임위를 사수하겠다는 방침이어서 샅바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stand@fnnews.com 서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