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범 '긴축' 발언에 예산처 진화…내년 예산 '확장 속 속도조절'
(서울=뉴스1) 노민호 기자 =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이 내년도 예산 편성을 앞두고 '긴축' 필요성을 언급하면서 예산안 기조 변화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다만 재정당국은 이를 예산 규모 축소가 아닌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 자제' 차원으로 해석하며, 내년에도 확장 재정의 큰 틀은 유지하되 재정 운용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 무게를 두는 분위기다.
반도체 호황에 따른 세수 증가 기대가 커지고 있지만 중동 정세와 물가, 국가채무 증가 등 불확실성도 여전한 만큼 정부는 재정 확대 과정에서 거시경제 여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으로 보인다.
"재정 부양할 때 아니라는 의미"…긴축 전환에 선그어
박홍근 기획예산처 장관은 2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김 정책실장의 발언과 관련해 "정확히 어떤 취지인지는 모르겠지만 긴축이라는 표현이 왜 나왔는지는 잘 모르겠다"며 "재정으로 경기를 부양할 때가 아니라는 의미로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또 "재정과 관련해서는 이후 소통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며 추가 언급은 아꼈다.
앞서 김 정책실장은 지난 2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토론회에서 재정 기조와 관련해 "총량으로 보면 (이재명 대통령이) 재정을 확장한다고 하셨지만 지금은 재정을 확장으로 갈 국면은 아니다"며 "민간이 호황이라면 거시경제적으로 통화나 재정은 긴축적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발언은 이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을 적극재정 기조로 편성하라고 지시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일각에서는 내년 예산안의 방향이 바뀌는 것 아니냐는 해석이 제기됐다.
그러나 김 정책실장의 발언을 내년도 예산 규모 자체를 줄이겠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무리라는 시각이 우세하다. 그동안 정부 예산은 매년 증가해 왔고, 내년 역시 세입 여건 등을 감안하면 총지출 규모가 올해보다 줄어들 가능성은 사실상 낮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재정지출을 확대해 민간에 돈을 풀고 소비와 투자를 끌어올리는 '재정을 통한 경기부양'에는 선을 그은 것이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현재 한국 경제는 반도체를 중심으로 수출 호황이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반도체 산업은 대표적인 경기 순환 산업으로 현재의 슈퍼사이클(장기 호황)을 바탕으로 정부 지출 규모를 크게 늘릴 경우, 향후 업황이 둔화하면 세수가 감소해 구조적인 재정적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반도체 호황에도 '변수' 여전…재정 확대 속도조절 불가피
중동 정세 역시 변수다.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 합의 이후 국제유가는 전쟁 이전 수준으로 회복했다. 전쟁 당시 배럴당 100달러를 웃돌던 국제유가는 24일(현지시간) 기준 ICE선물거래소의 8월물 브렌트유가 배럴당 73.74달러, 뉴욕상업거래소의 8월물 서부텍사스산원유(WTI)가 70.34달러를 기록했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은 핵사찰과 제재 완화, 호르무즈 해협 통항 조건 등을 놓고 여전히 합의 내용을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 60일 추가 협의 과정에서 최종 합의에 이르기까지 적지 않은 진통이 예상된다는 전망도 나온다.
물가 상승 압력도 여전하다. 한국은행은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처럼 업계 상위 10% 수준의 성과급을 지급하는 기업 비중이 늘어날 경우 5개월 뒤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약 0.05%포인트(p) 높아질 수 있다고 분석한 바 있다.
국가채무 증가 속도 역시 재정당국이 고려해야 할 변수다. 국가채무는 이미 1400조 원을 넘어섰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50%를 웃도는 상황이다.
일부 전문가들은 반도체 호황으로 발생한 초과세수를 신규 지출보다 국채 상환에 우선 활용해 재정 건전성을 회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러한 방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이 대통령은 취임 1주년 기자회견에서 초과세수 활용 방안과 관련해 국채 상환은 사실상 우선순위에서 제외하는 취지의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결국 김 정책실장의 '긴축' 발언은 내년도 예산안을 긴축적으로 편성하겠다는 신호라기보다는 반도체 호황에 편승한 과도한 재정 확대를 경계하고, 거시경제 여건을 고려한 재정 운용의 균형을 강조한 메시지에 가깝다는 해석이 우세하다.
정부가 역대 최대 규모의 예산안을 추진하는 큰 틀은 유지하되, 편성 과정에서는 물가와 세수, 국가채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재정 확대의 속도를 조절하는 데 무게를 둘 것이라는 관측이다.
박 장관은 지난 24일 서울에서 열린 '2045년, 미래 미리보기'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타운홀 미팅에서 내년 세수 증가분이 100조 원 이상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국가채무 상환에만 사용하는 게 아닌 "세수 여력을 잠재성장률 높이는 전략적 투자에 활용해야 한다"라고 말한 바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