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국민연금 고갈늦췄지만…노후빈곤 막으려면 퇴직연금 의무화해야

연합뉴스

국민연금 개혁으로 기금 소진 2065년으로 연기됐으나 사각지대 여전 유럽식 다층 연금체계 도입해 공적 연금과 퇴직연금의 협력 필요

국민연금 고갈늦췄지만…노후빈곤 막으려면 퇴직연금 의무화해야
국민연금 개혁으로 기금 소진 2065년으로 연기됐으나 사각지대 여전
유럽식 다층 연금체계 도입해 공적 연금과 퇴직연금의 협력 필요

퇴직연금 (PG) (출처=연합뉴스)
퇴직연금 (PG) (출처=연합뉴스)

(서울=연합뉴스) 서한기 기자 =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고 받는 돈의 비율을 조정하는 연금 개혁을 통해 기금 고갈 시점이 늦춰졌지만, 세계 최고 수준인 노인 빈곤과 노후 소득 불평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진단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이라는 단일 제도에만 의존할 것이 아니라 국가와 회사, 개인이 겹겹이 자금을 쌓는 다층 노후 소득 보장체계를 내실화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은퇴 후 받는 돈의 비율인 소득대체율을 실질적으로 높이기 위해서는 명목상의 제도에 머무는 퇴직연금을 강제하고 종신연금 형태로 바꾸는 근본적인 개혁이 시급하다고 분석한다.

◇ 낮은 연금액과 짧은 가입 기간이 초래한 노후 불평등
26일 국민연금연구원 유호선·이예인 연구원의 '우리나라 다층노후소득보장제도의 위기와 대응'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단행된 연금 개혁으로 국민연금 기금의 재정수지 적자 전환 시점은 2048년으로 7년 늦춰졌고 기금 소진 시점은 2065년으로 8년 연기됐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 결과, 이번 개정으로 오는 2095년 기준 누적 적자액은 1천763조원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은 한숨 돌렸으나 국민들이 실제로 체감하는 노후 소득 보장 수준은 여전히 취약하다. 2025년 6월 기준 노령연금 수급자들의 평균 연금액은 월 67만9천331원으로 1인 가구 기준 중위소득의 28% 수준에 불과하다. 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에 지급하는 기초연금 역시 최대 월 34만2천510원으로 노인 빈곤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이처럼 연금 수령액이 낮은 이유는 청년 실업과 취업 준비 등으로 직장에 들어가는 나이가 늦어지고 50대 초중반에 주된 일자리에서 물러나면서 국민연금 가입 기간 자체가 짧기 때문이다. 실제로 유럽연합(EU) 국가들의 공적연금 평균 가입 기간은 36.3년에 달하지만, 한국은 신규 수급자 평균 가입 기간이 20년 안팎에 머물러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와 성별 격차도 노후 빈곤을 심화시키는 주된 원인이다. 여성의 경우 결혼과 육아로 인해 30대에 직장을 그만뒀다가 40대에 다시 일자리를 구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 남성보다 국민연금 가입 기간이 짧고 노후 수령액도 적다. 이에 따라 젊은 노인층에 비해 76세 이상 고령 노인층의 빈곤율이 매우 높고 노인 인구 내부의 소득 불평등을 나타내는 수치도 높게 치솟고 있다.

◇ 유럽 선진국에서 찾는 해법…공적연금과 퇴직연금의 조화
보고서는 한국보다 앞서 인구 고령화와 경제 침체를 경험한 유럽 주요 선진국들의 사례에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적정 수준의 최저소득보장제도와 소득비례 공적연금, 그리고 의무적으로 가입하는 퇴직연금이 결합한 다층 체계를 갖춘 나라들이 노후 소득의 적정성과 재정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노르웨이, 덴마크, 프랑스, 네덜란드 등은 회사와 노동자가 중심이 돼 퇴직연금 가입을 강제하거나 준의무화해 운영하고 있다. 이들 국가는 퇴직연금을 통해 공적연금의 재정 부담을 줄이면서도 은퇴 후 노인들이 받는 전체 소득대체율을 높게 유지한다. 유럽 노인들은 가처분 소득의 약 52%를 공적연금에 의존하고 나머지 48%는 퇴직연금과 개인연금, 근로소득 등 다양한 소득원을 통해 충당하고 있다.

한국도 명목상으로는 다층 연금 체계를 갖추고 있으나 퇴직연금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가입 대상 근로자의 53.3%만 가입돼 있을 뿐만 아니라 이직이나 퇴직 시 개인형 퇴직연금(IRP) 계좌로 옮겨진 자금의 65%가량을 중도 해지해 사용한다. 결국 수급 개시 계좌 중 실제로 연금 형태로 받는 비중은 13%에 불과하고 나머지 87%는 일시금으로 찾아 써버려 사실상 노후 보장 기능이 상실된 저축 상품처럼 운용되는 실정이다.

◇ 출산크레딧 강화와 퇴직연금의 종신형 전환 시급
국내 노후 소득 보장 체계를 혁신하기 위해 국민연금의 실질 가입 기간을 늘리는 내실화 정책이 요구된다. 연구진은 평균 가입 기간 목표를 최소 30년으로 설정하고 돌봄과 양육으로 인해 경력이 단절되는 이들을 위한 출산크레딧 제도를 획기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기존의 사후 지원 방식을 출산 및 자녀 양육 시 즉시 인정하는 사전 지원으로 바꾸고 자녀당 5년의 기간을 인정해 인정 소득을 유연하게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저소득 지역가입자를 위한 보험료 지원 제도의 소득 기준을 월 103만원으로 상향해 취약계층의 가입 유인을 높여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국민연금 보험료율 상한을 다른 사회보험 부담을 고려해 15% 수준까지 점진적으로 인상하고 남은 수명과 연금 수급 나이를 연계하는 자동조정장치 도입과 공적연금에 대한 국고 보조 확대를 논의해야 한다.

퇴직연금의 구조를 단순 저축에서 평생 연금을 받는 형태로 완전히 재편하는 일도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자본시장 상황과 노후 보장이라는 목적을 고려할 때 연기금 운용 경험이 풍부한 비영리기관이 중심이 돼 가입자들의 자금을 모아 공동으로 중장기 투자하고 종신연금으로 지급하는 집합적 확정기여형 퇴직연금 제도의 도입을 타당한 선택지로 연구진은 제시했다. 보험료율은 현행대로 유지하되 연금 수령을 기본으로 하고 일부 금액만 일시금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유연성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빈곤 노인층을 위한 최저소득보장제도 역시 효율적으로 재편해 76세 이상 무주택 고령 노인을 대상으로 자산 조사를 거쳐 기준 중위소득의 30%를 지급하는 주거급여 제도를 새롭게 도입하는 방안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고 연구진은 제안했다. 공적연금 단일 체계만으로는 초고령 사회의 위기에 대응할 수 없으므로 각 제도의 역할을 분담하고 내실을 다지는 종합적인 다층 연금 개혁이 단행돼야 할 시점이라고 연구진은 말했다
sh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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