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만 80만원인데, 뭘 따로 살아요"...설거지 좀 하고 40만원 용돈 받는 전업자녀들 [은퇴자 X의 설계]
[캥거루족 가고, 전업자녀들이 왔다]
[파이낸셜뉴스] 서울 노원구에 사는 최희영 씨(58·가명)는 매달 1일이면 스마트폰 계좌이체 앱을 켠다. 수취인은 함께 사는 서른한 살 아들이다. 금액은 40만원. 아들은 현재 직장이 없다. 대신 집안일을 맡고 있다. 청소와 빨래, 장보기는 물론 부모의 병원 예약까지 챙긴다. 가끔이기는 하지만 식사도 책임진다.
최 씨는 "그냥 노는 건 아니다. 나름 역할은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할지는 모르겠다"고 했다.
부모와 함께 사는 성인 자녀. 한때는 '캥거루족'이라고 불렀다. 부모 집에 얹혀사는 자녀를 부모 주머니에 들어앉아 나오지 않는 새끼 캥거루에 빗댄 말이다.
최근에는 또 다른 신조어가 나왔다. '전업자녀(全職兒女)'다. 2023년 청년실업률이 21.3%까지 치솟은 중국에서 만들어진 말이다. 직장이 없는 자녀가 집안일을 전담하고 부모에게 일정한 대가를 받는 형태다.
캥거루족과 전업자녀는 차이가 있다. 캥거루족이 부모에게 일방적으로 의존하는 존재였다면 전업자녀는 가족 공동체 안에서 그나마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부모 병원 동행, 장보기, 집안일, 디지털 업무 처리, 간단한 돌봄까지 맡는다.
그러나 형태가 달라졌을 뿐 자녀들이 노동시장 밖에 머물러 있다는 점에서는 본질적인 변화는 없다.
이 현상은 전업자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직장이 있어도 독립하지 못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결혼 이후에도 부모와 함께 사는 사례가 나타나고 있다.
자녀와의 동거는 이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국무조정실이 만 19~34세 청년 가구원이 있는 약 1만5000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2024년 청년의 삶 실태조사'에 따르면 독립생활을 하는 청년은 45.6%였다. 절반이 넘는 청년은 부모와 함께 살거나 독립하지 않은 상태에 놓여 있는 셈이다.
청년들이 부모 집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결국 '돈'이다.
같은 조사에서 청년 가구의 월평균 생활비는 213만원이었다. 수도권은 220만원, 비수도권은 206만원이었다. 청년 개인의 연평균 소득은 2625만원, 월평균으로 환산하면 218만원 수준이다. 취업자 기준 월소득은 266만원이었다.
물론 개인 소득과 가구 생활비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독립에 필요한 비용 구조가 만만치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월세, 식비, 교통비, 통신비, 취업 준비 비용을 감안하면 부모 집에 머무는 선택은 자녀 입장에서 비합리적이라고만 말하기 어렵다.
함께 사는 것이 반드시 나쁜 선택은 아니다. 자녀는 주거비 부담을 줄인다. 부모는 정서적 안정과 일상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다. 1인 가구로 흩어져 각자 비용을 쓰는 것보다 가족 전체 비용이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자녀가 독립하지 않으면서 사라진 비용은 없다. 누군가의 지출로 옮겨갔을 뿐이다.
부모들은 흔히 "숟가락 하나 더 놓는 게 무슨 부담이냐"라고 말한다.
맞는 말처럼 들린다. 실제로 한집에 살면 월세 한 채, 관리비 한 채, 냉장고 하나를 같이 쓴다. 자녀가 따로 살 때보다 사회 전체로 보면 비용이 줄어드는 측면도 있다.
그런데 부모의 가계부 안에서는 다른 계산이 나온다.
성인 자녀 한 명이 집에 머물면 식비와 생필품비가 늘어난다. 전기·가스·수도요금도 오른다. 통신비를 대신 내주거나 교통비, 구직 준비 비용, 병원비, 보험료를 보태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 용돈까지 얹히면 금액은 조용히 커진다.
문제는 금액 자체보다 이 지출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월 60만원은 견딜 만해 보인다. 그러나 3년이면 2160만원이다. 5년이면 3600만원이다. 월 100만원이면 5년 동안 6000만원이다.
이 돈은 대부분 부모의 생활비 속에 섞여 빠져나간다. 장보기 비용에 섞이고, 카드값에 섞이고, 통신비와 관리비에 섞인다. 그래서 부모도 처음에는 부담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나중에 통장을 들여다보고 나서야 "생각보다 많이 썼다"고 말한다.
자녀 지원이 어려운 이유는 돈 때문만은 아니다. 부모 입장에서 자녀 지원은 계산보다 감정에 가깝다.
힘들다는데 외면하기 어렵다. 취업이 안 된다는데 집에서 나가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나중에 자리 잡으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시작한다. 처음부터 장기 지원을 계획하는 부모는 많지 않다.
그러나 부모 세대의 시간표도 예전과 다르다.
KB금융지주 경영연구소의 '2025 KB골든라이프보고서'에 따르면 현역 가구가 생각하는 희망 은퇴 나이와 실제 은퇴 나이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바라는 은퇴보다 실제 은퇴가 빠른 것이다. 자녀는 아직 독립하지 못했는데 부모의 근로소득은 먼저 줄어드는 상황이 생긴다.
국민연금만으로 노후 생활을 감당하기도 쉽지 않다. 2026년 1월 기준 일반 노령연금 평균 수령액은 월 70만427원으로 집계됐다. 월 60만원씩 5년간 자녀를 지원하면 3600만원이다. 평균 노령연금으로 환산하면 약 51개월치다.
이 계산이 자녀 지원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다. 다만 부모가 "조금 도와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돈이 시간이 지나면 노후 소득 몇 년 치와 맞먹을 수 있다는 뜻이다.
가족 간 금전 지원에 대한 인식도 이를 보여준다. 2025 KB골든라이프보고서에 따르면 50대의 40.7%, 60대의 36.9%, 70대의 28.1%가 가족에게 금전을 지원하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 반면 지원받을 것으로 예상한 비율은 50대 22.2%, 60대 21.3%, 70대 21.9%에 그쳤다.
나이가 들어도 받을 기대보다 줄 부담을 더 크게 보는 것이다. 이것이 한국 부모 세대의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이 현상을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고 설명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일정한 생활비를 주고, 자녀가 가사와 돌봄을 분담하는 방식은 초고령사회에서 가족 안의 새로운 역할 분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전영수 한양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전업자녀를 무조건 부정적으로 볼 필요는 없다"면서도 "중요한 건 그 동거가 일시적인 완충장치인지, 아니면 장기적인 의존 구조로 굳어지는지를 구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자녀와 함께 사는 선택은 양쪽 모두에게 이익이 될 수도 있다. 자녀는 주거비 부담을 줄이고, 부모는 정서적 안정과 일상적인 도움을 얻는다.
다만 변수는 하나다. 시간이다.
이 동거가 잠시 숨을 고르는 기간인지, 아니면 길어지는 일상인지에 따라 의미는 완전히 달라진다. 지금의 지원이 '버틸 시간'을 만드는 것인지, '머무는 시간'을 늘리는 것인지는 결국 시간이 지나야 드러난다.
동거는 선택일 수 있다. 다만 그 선택이 언제까지 이어질지, 그 비용을 누가 얼마나 감당하고 있는지는 시간이 지나서야 드러난다.
kkskim@fnnews.com 김기석 박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