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아시아/호주

"망하기 전에 살린다" 日, 채권자 75%면 기업 채무 탕감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2년 내 도산 우려 기업도 조기 구조조정 허용
리스료 감면·운영자금 지원으로 회생 문턱 낮춰

일본 경제산업성. 출처=연합뉴스
일본 경제산업성. 출처=연합뉴스

【파이낸셜뉴스 도쿄=서혜진 특파원】일본 정부가 기업이 파산하기 전에 구조조정에 나설 수 있도록 제도 문턱을 대폭 낮춘다고 니혼게이자이신문(닛케이)이 26일 보도했다. 앞으로는 향후 2년 이내 도산 가능성이 있는 기업도 채권자의 75% 이상 동의를 얻으면 채무 감면과 상환 조건 변경 등 금융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도산 전 회생' 문 열렸다..채권자 75% 동의시 구조조정
닛케이에 따르면 일본 경제산업성은 오는 12월 11일 시행되는 '조기 사업재생법'에 맞춰 다수결 방식의 기업 채무조정 기준을 담은 Q&A를 이달 30일 공개한다.

새 제도는 채권액 기준 75%(4분의 3) 이상 채권자의 동의만 확보하면 금융부채 감면과 상환 조건 변경 등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핵심이다.

기존 사업재생 ADR(재판 외 분쟁 해결) 등 사적 구조조정은 모든 채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일부 채권자의 반대로 절차가 무산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경산성은 이번 제도를 법원이 주도하는 민사재생과 같은 법정 구조조정도, 기존 사적 구조조정도 아닌 '제3의 기업 구조조정 절차'로 규정하고 있다. 절차 일부에 법원이 관여하지만 기본적으로는 기업의 조기 회생을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춘 것이다.

경산성은 구조조정 개시 기준도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향후 2년 이내 지급불능 상태에 빠질 가능성이 높거나 ▲수익성 악화와 적자가 지속돼 장기적으로 원금 상환이 어려워질 우려가 있는 기업이면 절차를 신청할 수 있다.

구조조정을 신청하는 기업은 제3자 기관에 사업재생 계획을 제출해야 한다. 운영 기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사업재생 ADR을 운영하는 사업재생실무가협회 등이 유력 후보로 거론된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나 임금 삭감이 포함될 경우에는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수 대표에게 재생계획 제출 2주 전까지 사전 통보하도록 의무화했다. 직원들의 협조를 확보하고 핵심 인력과 기술 유출을 막기 위한 조치다.

채무 감면 대상도 확대된다. 경산성은 리스료도 채무조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처음으로 명확히 했다.

리스 총액이 장비를 직접 구매할 경우 가격의 90%를 넘고 중도 해지가 불가능한 계약이라면 채무 감면 대상으로 인정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 건설장비처럼 구매 비용과 리스료가 사실상 비슷한 계약을 염두에 둔 것이다.

기존에도 리스료 감면은 가능했지만 산정 절차가 복잡해 실제 활용 사례는 많지 않았다. 경산성은 적용 범위를 명확히 해 기업의 조기 회생을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감면 대상이 늘어나면 채권자별 부담도 줄어 구조조정안에 대한 동의를 얻기가 쉬워질 것으로 기대된다.

정부는 구조조정에 들어간 기업의 운영자금 조달도 적극 지원하기로 했다.

제3자 기관이 해당 대출이 사업 재생에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이후 법정 구조조정으로 전환되더라도 금융기관이 해당 채권을 우선 회수할 수 있도록 해 대손 위험을 줄여주기로 했다. 금융권의 신규 대출을 유도하기 위한 장치다.

■도산 늘고 한계기업 급증…韓도 한계기업 비중 사상 최대
일본 정부가 기업 회생 제도를 손질하는 것은 최근 늘어나는 기업 도산에 대응하기 위한 조치다.

도쿄상공리서치에 따르면 2025회계연도 일본 기업 도산은 1만505건으로 4년 연속 증가했다. 부채가 과도하다고 답한 기업도 전체의 26%에 달했다. 반면 모든 채권자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 기존 사업재생 ADR은 사실상 유명무실해져 지난해 신청 기업이 한 곳도 없었다.

한국 역시 한계기업 문제가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본의 제도 변화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외부감사 대상 기업 가운데 영업이익으로 이자조차 갚지 못하는 기업 비중은 39.9%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높았다. 특히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수익성과 재무건전성이 악화하면서 기업 간 양극화도 심화하고 있다.
한국은행은 최근 보고서에서 산업 내 한계기업 비중이 1%포인트 증가하면 정상기업의 투자·고용·성장률은 0.14~0.18%포인트 하락하는 '혼잡효과'가 발생한다고 분석했다. 반면 한계기업의 25%를 적기에 정리하면 경제 전체 생산성과 부가가치는 높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다만 구조조정 과정에서 협력업체 등 정상기업으로 부실이 전이될 가능성도 있는 만큼 유동성 지원과 매출채권보험 등 안전장치를 병행해야 한다고 한은은 제언했다.

sjmary@fnnews.com 서혜진 기자


기자 정보

#일본 정부 #구조조정 #채권자 #채무 탕감 #사업재생법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