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가만히 있으면 다시 나쁜 길 빠질까 봐"... 무더위 뚫고 함께 달린 마약 회복자들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사단법인 '은구', 세계 마약 퇴치의 날 기념 마라톤 대회 개최
성남 탄천변 보라색 물결… 마약류 단약자 및 시민 50여 명 뜀박질
20년간 13번 감옥 간 60대 "치료시설 덕에 끊을 결심"

사단법인 은구(Never Give Up)이 지난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세무서 인근 탄천변에서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을 맞이해 마약류 중독증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협조 등을 알리기 위해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이에 남경필 대표 등 행사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동규 기자
사단법인 은구(Never Give Up)이 지난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세무서 인근 탄천변에서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을 맞이해 마약류 중독증 문제에 대한 사회 구성원의 협조 등을 알리기 위해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이에 남경필 대표 등 행사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마약 중독증 치료는 결국 혼자 하는 게 아니라 조력자, 동료들과 함께 해나가야 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27일 경기 성남시 분당세무서 인근 황새울공원에서 만난 부산 거주 26세 남성 약물 회복자 A씨는 이날 마라톤 대회에 참가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나뭇잎 사이로도 햇빛이 강렬히 비치고 최고기온이 30도를 넘는 등 가만히 서 있음에도 등골에 땀이 맺히는 무더운 날씨였다. 그럼에도 A씨는 머리에 남색 야구모자를 쓰고 목에는 주황색 반다나를 두르는 등 '무더위 대책'을 갖추고 참석자들과 함께 달리기 위해 준비운동을 하고 있었다. A씨는 "가만히 있으면 갈망이 올라오고 나쁜 생각이 든다"며 "동료들과 함께하면 그래도 나 혼자 나쁜 길에 빠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마약류 단약자들은 마약 중독증 치료가 혼자 하는 것이 아닌, 의사와 재활치료사, 동료 등과 함께하는 것임을 강조했다.

마약류 치유단체 사단법인 은구(Never Give Up)는 이날 오전 경기 성남시 탄천변에서 세계 마약 퇴치의 날을 기념해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마약류 중독증 치료가 중독자 혼자만의 몫이 아닌, 의사와 재활치료사, 지역 사회 등 사회 구성원의 협조에 의해 이뤄진다는 것을 일반 시민에게 알리기 위해서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마약류 회복자들은 자신들의 단약 의지를 행사 참여자들과 공유하며 고취해 나갔다.

기자가 찾은 이날 오전 8시 20분 황새울공원에는 '꿀 같은 휴일 아침'을 반납하고 모인 경기도민 등 40~50명이 은구의 상징색인 보라색 셔츠를 입고 모여 있었다.

앞선 A씨 역시 이들 중 한 명이었다. A씨는 17세 때부터 지난해까지 필로폰을 투약했다고 밝혔다. 공부를 잘하지도 않았고 거창한 꿈도 특별히 없던, 그냥 사회 주변에서 볼 수 있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다고 과거의 자신을 회상했다. 그는 특별한 목적 없이 살았고 부모님도 생업에 바쁘다 보니 마땅히 의지할 곳이 없던 와중에, 무료한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마약에 손을 대게 됐다고 털어놨다.

A씨가 단약을 결심하게 된 계기는 수사를 받게 되면서였다. 그는 "다른 분들과 달리 운이 좋게도 저는 단약이 간절할 시점에 국립부곡병원에 입소할 기회를 얻어 약물 중독증 치료를 제때 받을 수 있었다"며 "다만 한 번 가지고는 안 돼 이후 충남 공주의 국립법무병원에도 입소해 계속해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상경한 부산 NA(익명의 약물중독자들) 모임 소속 회복자 10여 명도 함께했다. 황새울공원에서 만난 60대 남성 회복자 B씨는 지난 20년 동안 13번이나 마약류 투약이라는 죄명으로 교도소 등을 들락날락했다고 말했다. 계속된 감옥의 '회전문 현상'에서 나온 것은 법무부 국립법무병원이란 치료시설에 입소한 덕이었다. 그는 "조성남 전 국립법무병원장(현 대한법정신의학회장)을 만나기 전까지 단약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면서 "조 원장이 계속해서 '잔소리'를 해주며 정신과 치료를 해준 덕에 단약을 결심하게 됐다"고 말했다.

마약류 중독증 치료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들에 의해 이뤄지는 의료 행위다. 의사와 간호사, 재활치료사 등이 하나의 팀을 이뤄 중독자들에게 '치료제' 투여와 정신 상담, 치료 경과 모니터링 등을 병행한다. 은구의 이사 중 한 명인 조 전 원장은 마약류 치료를 "가치관과 행동양식을 바꾸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조 원장은 "일종의 근육을 키우는 일과 똑같다"며 "환자가 '약을 끊어야지'라는 생각을 하면 의사가 PT 선생님이 되어 어떻게 단약을 할 수 있는지 코칭하고, 중간중간 환자의 의지가 약해지지 않게 정신과적 치료를 통해 주지시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은구는 이번 캠페인을 통해 조성된 수익금을 국내 최초 마약중독 치료 전문병원 설립을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이 병원은 분당서울대병원이 위탁 운영할 예정이며, 이르면 오는 2030년 개원이 목표다. 은구를 이끄는 남경필 대표(전 경기도지사) 등 은구 관계자들은 치료와 회복, 예방이 선순환하는 사회적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약류 중독증은 나날이 커져가는 마약 문제의 핵심이다. 대검찰청의 '마약류 범죄 백서'에 따르면 최근 10년 동안(2015~2024년) 마약류 투약 혐의자는 전체 마약류 사범의 50~60%에 육박한다. 이미 마약류 사범이 2만명을 넘어 3만명에 육박한 점, 경찰행정학계가 추정하는 마약류 범죄 암수율이 약 30배에 이르는 점 등을 생각하면, 마약류 중독증은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지경이다.

남 대표는 이와 관련해 "마약 중독증 예방은 두려움만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건강한 삶의 가치를 함께 만들어가는 사회 구성원들의 문화에서 비롯된다"며 "회복자들에게는 희망을, 시민들에게는 마약 예방의 중요성을 자연스럽게 알리기 위해 은구는 앞으로도 활동을 계속할 것"이라고 말했다.

kyu0705@fnnews.com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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