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에너지쇼크에 흔들린 동남아… 탈석유·전력망 확대 가속
10년간 에너지수요 40% 급증
중동 의존도 높아 리스크에 취약
IEA "역내 전력망 연결 등 필요"
각국 화석연료 벗어나 구조 재편
베트남·필리핀 등은 원전 구체화
업계 "韓기업에도 새 시장 될 것"
【파이낸셜뉴스 하노이(베트남)=김준석 특파원】 "동남아는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인 에너지 시장이지만, 동시에 에너지 안보와 지속가능성이라는 중대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
파티 비롤 국제에너지기구(IEA) 사무총장이 지난 16일 발간한 '동남아시아 에너지 전망 2026' 보고서 서문에서 이같이 밝히며 중동발 에너지 위기가 동남아 에너지 시스템의 구조 전환을 앞당기고 있다고 진단했다.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해 성장해 온 동남아가 이제는 재생에너지와 전기화, 전력망 확충, 원전 도입까지 검토하는 새로운 에너지 체제로 이동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동남아는 2015년 이후 세계 에너지 수요 증가분의 약 10%를 차지했으며, 2035년까지는 그 비중이 20%로 확대될 전망이다. 2035년까지 전체 에너지 수요는 약 35%, 전력 수요는 약 70%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현재 각국의 에너지 정책이 유지되는 시나리오내에서다. 전력 수요는 2015년 이후 연평균 6%씩 늘어 세계 평균의 두 배 수준을 기록했다.
■급증하는 전력 수요
문제는 늘어나는 에너지 수요를 여전히 화석연료가 떠받치고 있다는 점이다. 2024년 전체 에너지 수요는 2015년보다 40% 증가했고, 증가분의 70% 이상을 화석연료가 담당했다.
중동 의존도가 높은 에너지 구조도 취약 요인으로 지목됐다. 위기 이전 기준 동남아 원유 수입의 약 60%, 천연가스 수입의 3분의 1이 중동에 의존했으며, 정유시설 상당수도 중동산 원유 처리에 맞춰 설계돼 공급처를 쉽게 바꾸기 어렵다. 국제유가 급등으로 연료 가격과 전기요금이 동시에 오르자 각국 정부는 유류세 인하와 보조금 지급 등 긴급 대책을 내놨지만, IEA는 이러한 단기 대응만으로는 에너지 안보를 확보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가별 대응은 자원과 산업 구조에 따라 엇갈린다. 인도네시아는 니켈과 석탄을 기반으로 배터리 산업과 바이오연료를 육성하고 있으며, 베트남은 제조업 성장에 맞춰 태양광·풍력과 전기차 보급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필리핀과 태국은 재생에너지 시장 확대에 나섰고, 라오스는 수력발전 수출 전략을 유지하고 있다.
■전기화·전력망 확대 필요
IEA는 동남아 에너지 안보 해법의 핵심으로 재생에너지 확대와 전기화, 역내 전력망 연결을 제시했다. 동남아 에너지 투자는 2025년 기준 1000억달러를 넘어설 것으로 예상되지만 송배전망 투자는 여전히 부족하다. 보고서는 국가 간 전력망을 연결하는 'ASEAN 전력망(APG)'이 구축되면 재생에너지 활용도를 높이고 전력 공급 안정성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전망했다.
원전도 새로운 에너지 안보 수단으로 부상하고 있다. 아직 동남아에는 상업용 원전이 없지만 베트남과 인도네시아, 필리핀이 구체적인 건설 계획을 실행중이고, 말레이시아·싱가포르·태국 등도 정책 옵션으로 검토하고 있는 단계다. 베트남은 2030~2035년 4.6GW, 2050년 최대 14GW 규모의 원전 도입을 추진하고 있으며, 인도네시아는 2032년부터 소형모듈원전(SMR)을 중심으로 원전 개발에 나설 계획이다. 필리핀도 바탄 원전 재가동과 SMR 도입을 검토 중이다. IEA는 각국 계획이 이행될 경우 원전이 2050년 동남아 전력 수요 증가분의 최대 8%를 담당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태양광 약 130GW 또는 풍력 70GW에 맞먹는 안정적인 전력 공급 효과를 낼 수 있는 규모다. 동시에 석탄 3500만tce 이상과 천연가스 약 200억㎥를 대체해 화석연료 수입 의존도를 크게 낮출 것으로 분석했다.
보고서는 한국·미국·일본·중국·러시아를 동남아 원전 협력 파트너로 언급하며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에너지 업계 관계자는 "이번 중동발 에너지 충격이 동남아 에너지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전환점이 되고 있다"면서 "화석연료 중심 성장 모델에서 벗어나 재생에너지와 전기화, 전력망, 원전 중심으로 에너지 시스템이 재편되면서 발전설비와 송배전망, 에너지저장장치(ESS), 원전 기술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에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rejune1112@fnnews.com 김준석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