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하의 본초여담] 부친의 노채병(폐결핵)이 경옥고로 안정이 되었다
[파이낸셜뉴스] 본초여담(本草餘談)은 한동하 한의사가 한의서에 기록된 다양한 치험례나 흥미롭고 유익한 기록들을 근거로 이야기 형식으로 재미있게 풀어쓴 글입니다. <편집자주>
옛날 한 의원의 가친(家親)이 젊은 시절부터 기침과 객혈 등의 증상을 보이는 폐병을 앓았다. 가친도 의원이었다. 가친은 그럴 때마다 반드시 사백산과 패모, 산치자, 맥문동 등의 약을 몇 제 복용해야 비로소 나았다.
가친은 그 뒤로도 과로하거나 분노하면 병이 다시 발하였으나, 몇 해씩 발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어느 날 여름, 가친은 더위를 무릅쓰고 일을 하다가 열병이 났다. 그런데 원래 있던 병도 함께 재발하였고 이전보다 더욱 심하였다.
어느 날 밤, 가친은 목 안에서 무엇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껴 담이라 여겨 몇 차례 뱉었는데, 불을 밝혀 보니 모두 피였다. 객혈은 멎지 않았다. 때로는 순전히 피만 나오고, 때로는 가래와 섞여 나왔다. 가친은 정신이 몽롱하여 침상에서 일어나지도 못했다.
아들 의원은 아교, 생지황, 맥문동, 패모, 비파엽 등의 약을 처방해서 복용하게 하니 조금 효과가 있었다. 다행히 음식도 다소 먹을 수 있었다. 얼굴빛은 평소와 같았고, 몸에 열도 없었으며, 도한이나 구갈 등의 증상도 없었다. 맥도 비교적 평온하였다. 그래서 이 처방을 지속적으로 복용했다.
그런데 다음 날 밤, 피가 갑자기 위로 치밀어 올라 연달아 몇 차례 토하더니, 곧 혼미해져 말을 하지 못하고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응급상황이었다.
아들 의원은 급히 당삼 5전, 서양삼 5전을 달여 복용시켰다. 가친은 인삼탕을 마신 지 몇 분 지나서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심장은 몹시 두근거리고 온몸의 살이 떨리며, 말소리는 극히 낮았다. 원기가 탈진하려는 상태였다.
이에 다시 인삼탕에 아교, 숙지황, 산조인, 구기자 등을 넣어 달여 복용시켰다. 그리고 돼지족을 푹 고아 먹게 하였다. 이렇게 십여일 조리하자 증상은 점차 호전되었고, 소화력도 매우 좋아졌다.
가친은 배가 고파 하루에 여닐곱 차례를 먹어야 했으며, 때가 지나면 배가 고팠다. 매 끼니 돼지족, 해삼, 달걀, 죽, 밥 등을 먹었다. 이상하게 보양식들만 받아들였고, 채소나 무, 두유 등은 먹지 못했다. 혹 먹으면 속이 번잡하고 쉽게 배가 고파졌다.
아들 의원은 '이는 피를 많이 잃은 뒤 위액이 고갈되어, 동물성의 기름진 것으로 보충하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생각했다.
이로부터 한 달 뒤, 가친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 다시 진료를 시작했다. 그러나 심혈을 기울일 수가 없었다. 약방문을 쓸 때면 손이 떨리고 눈이 아찔했으며, 길도 반 리밖에 걷지 못했다.
가친은 이래저래 건강상태를 유지했다. 그러다가 몇 해 후, 날씨가 몹시 더울 때 진료로 과로하여 병이 다시 발하였다. 기침과 각혈, 발열과 입마름이 있었다. 청열해독하는 약을 몇 제 복용하니 조금 나았으나 정신은 몹시 피로하였다.
가을에 난리가 나면서 마을 주민들이 피난을 떠났다. 그래서 열 집 중 아홉 집이 비는 형세였다. 가친께서 이런 소식을 날마다 들으며 놀라고 근심하여 병이 다시 크게 발하였다.
아들 의원이 처방한 약을 복용한 지 열흘쯤 되자 피는 점차 줄었고, 조금씩 잠도 잘 수 있었다. 이후 인삼과 숙지황으로 만든 경옥고를 고아서 지속적으로 복용했다. 그랬더니 각혈은 완전히 멎고 정신도 크게 회복되었다. 다만 약간의 기침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지금까지 거의 3년이 지났으나 가친의 병은 다시 발하지 않았다. 정신도 맑고 왕성하여 날마다 분주히 다니며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아들이 지금까지 복용한 약을 계산해 보니, 당삼은 한 근 남짓, 서양삼은 몇 냥, 구기자는 한 근 남짓, 숙지황은 두 근, 건지황, 맥문동, 아교도 각각 몇 냥에 이르렀다.
가친의 병은 한의학적으로 노채(勞瘵)일 가능성이 높다. 노채는 장기간 기침, 반복되는 객혈, 허로(虛勞), 병이 오래 지속되며 재발, 점차 기혈과 음액이 소모되는 질환으로 요즘에 폐결핵에 속한다.
가친은 아마도 만성 재발성 결핵을 앓았던 것으로 판단된다. 젊은 시절부터 반복되는 기침과 객혈, 과로나 스트레스 후 재발, 수년간의 호전과 악화를 반복하는 경과는 폐결핵의 임상 양상과 매우 잘 부합한다.
<총생초당의원(叢桂草堂醫案)> 家君自少時即患肺病。咳嗽咯血。必服瀉白散及貝母、山梔、麥冬等藥數劑始愈。嗣後遇勞碌及惱怒時。病即複作。然亦有隔數年不發者。丁未夏月。偶因冒暑發熱。而舊病亦複發。較前益劇。先是某日夜間。覺喉內有物上溢。以為痰耳。遂咯吐數口。及張燈視之。則皆血也。由是咯血不已。或純血。或與痰質混和。精神疲憊。不能起於床。服阿膠、地黃、麥冬、貝母、枇杷葉等藥小效。飲食亦稍能進。面色如常。身不發熱。亦無盜汗口渴等症。脈息亦尚平靜。遂仍以前方進。詎意次日晚間。血忽上湧。連吐數口。遂昏暈不能言。奄奄一息。急以潞黨參五錢。西洋參五錢。煎湯進。及參湯服下數分鐘。始能言語。謂心內慌慌。周身肉顫。語時聲音極低。蓋元氣大虛欲脫也。遂仍以參湯和阿膠、熟地、棗仁、枸杞等藥煎湯進。並以豬蹄煨湯服。如是調養至十數日。始漸入佳境。而胃納亦甚佳。每日須六七餐。過時則飢。每餐皆豬蹄、海參、雞子、粥、飯等物。且惟此等滋補品能受。若菜蔬、萊菔及豆腐漿等類。皆不堪食。偶或食之。則覺嘈煩易飢。蓋亡血之後胃液耗竭。非藉動物之脂膏不能填補也。迨一月後。精神漸複。亦能為人診病。但不能用心思索。每寫藥方。則手顫眼花。行路只能及半里。再遠則不能行矣。此丁未年焯由蘇州返里。侍疾筆記之大略也。其後三年病未大發。精力亦較前康健。辛亥七月。天氣酷熱。偶因診事勞碌。病又複發。咳嗽咯血。發熱口乾。服清養藥數劑。雖小愈。而精神則殊疲弱。至九月間。武昌革命正在進行之時。吾揚居民。紛紛遷避。幾於十室九空。家君日聞此耗。驚憂交並。於是病又大作。接服至十日。血漸少。亦稍稍能睡矣。自是遂以兩儀膏集靈膏二方合並。仍制成膏劑。接服月餘。咯血全止。精神亦大恢複。但微有咳嗽而已。計前後凡服黨參斤許。西洋參數兩。枸杞子斤許。熟地二斤。乾地黃、麥冬、阿膠亦各數兩。距今已將三年。病未複發。且精神矍鑠。日夕奔走。為人治病。嗚呼。藥之功顧不大歟。今編此書。特志崖略於此。以俟高明教正焉。(가친께서는 젊은 시절부터 폐병을 앓으셨다. 기침과 각혈이 있었고, 반드시 사백산과 패모·산치자·맥문동 등의 약을 몇 제 복용해야 비로소 나았다. 그 뒤로도 과로하거나 분노하면 병이 다시 발하였으나, 몇 해씩 발하지 않는 때도 있었다. 정미년 여름, 우연히 더위를 무릅쓰고 발열이 생겼는데, 옛 병도 함께 재발하였고 이전보다 더욱 심하였다. 어느 날 밤, 목 안에서 무엇인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껴 담이라 여겨 몇 차례 뱉었는데, 불을 밝혀 보니 모두 피였다. 이로부터 각혈이 멎지 않았다. 때로는 순전히 피만 나오고, 때로는 담과 섞여 나왔다. 정신은 피곤하여 침상에서 일어나지 못하였다. 아교·지황·맥문동·패모·비파엽 등의 약을 복용하니 조금 효과가 있었고, 음식도 다소 먹을 수 있었다. 얼굴빛은 평소와 같았고, 몸에 열도 없었으며, 도한이나 구갈 등의 증상도 없었다. 맥도 비교적 평온하였다. 이에 여전히 앞의 처방을 이어 썼다. 그런데 다음 날 밤, 피가 갑자기 위로 치밀어 올라 연달아 몇 차례 토하더니, 곧 혼미해져 말을 하지 못하고 숨이 끊어질 듯하였다. 급히 노당삼 5전, 서양삼 5전을 달여 복용하게 하였다. 인삼탕을 마신 지 몇 분 지나서야 비로소 말을 할 수 있었다. 가슴이 몹시 두근거리고 온몸의 살이 떨리며, 말소리는 극히 낮았다. 이는 원기가 크게 허해 탈하려는 형세였다. 이에 다시 인삼탕에 아교·숙지·조인·구기자 등을 넣어 달여 복용하게 하고, 돼지족을 푹 고아 먹게 하였다. 이렇게 십여 일 조양하자 점차 호전되었고, 위의 소화력도 매우 좋아졌다. 하루에 여섯·일곱 차례를 먹어야 했으며, 때가 지나면 배가 고팠다. 매 끼니 돼지족·해삼·달걀·죽·밥 등을 먹었고, 오직 이런 자보하는 음식만 받아들였다. 채소·무·두유 등은 먹지 못했고, 혹 먹으면 속이 번잡하고 쉽게 배가 고팠다. 이는 피를 많이 잃은 뒤 위액이 고갈되어, 동물성의 기름진 것으로 보충하지 않으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 달 뒤에는 정신이 점차 회복되어 사람을 진료할 수 있었으나, 마음을 깊이 써서 생각하지는 못하였다. 약방을 쓸 때면 손이 떨리고 눈이 아찔했으며, 길도 반 리밖에 걷지 못했다. 이것은 정미년에 내가 소주에서 고향으로 돌아와 병간호하며 기록한 대략이다. 그 후 3년 동안 병은 크게 발하지 않았고, 정력도 이전보다 나아졌다. 신해년 7월, 날씨가 몹시 더울 때 진료로 과로하여 병이 다시 발하였다. 기침과 각혈, 발열과 구건이 있었다. 청양하는 약을 몇 제 복용하니 조금 나았으나 정신은 몹시 피로하였다. 9월 무렵, 무창 혁명이 진행되면서 우리 양주 주민들이 피난하여 열 집 중 아홉 집이 비는 형세였다. 가친께서 이런 소식을 날마다 들으며 놀라고 근심하여 병이 다시 크게 발하였다. 약을 이어 복용한 지 열흘쯤 되자 피는 점차 줄었고, 조금씩 잠도 잘 수 있었다. 이후 양의고와 집령고 두 처방을 합하여 고제로 만들어 한 달 남짓 복용하니, 각혈은 완전히 멎고 정신도 크게 회복되었다. 다만 약간의 기침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앞뒤로 복용한 약을 계산해 보니, 당삼은 한 근 남짓, 서양삼은 몇 냥, 구기자는 한 근 남짓, 숙지는 두 근, 건지황·맥문동·아교도 각각 몇 냥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거의 3년이 지났으나 병은 다시 발하지 않았고, 정신도 맑고 왕성하여 날마다 분주히 다니며 사람을 치료하고 있다. 아, 약의 공효가 어찌 크지 않겠는가. 이제 이 책을 엮으며 그 대략을 여기에 기록하여, 고명한 분들의 교정을 기다린다.)
/ 한동하 한동하한의원 원장
pompom@fnnews.com 정명진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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