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세대 쥐고도 '해줘 축구' 답습… 홍명보 감독의 쓸쓸한 퇴장과 韓 축구의 참담한 민낯 [월드컵 결산]
10년 만의 '월드컵 재수' 조별리그 탈락 참사로 귀결… 결국 자진 사퇴
손흥민·이강인 개인기에 의존한 전술 부재, 최약체 남아공에 철저히 간파
1년간 연마한 스리백 무용지물… 아시안컵 앞두고 시스템 '원점 재건' 시급
[파이낸셜뉴스] 기적을 바랐던 경우의 수는 철저한 숫자의 허상이었다. 12년 만에 '월드컵 재수'에 나섰던 홍명보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의 두 번째 도전이 2026 북중미 월드컵 32강 진출 실패라는 참담한 성적표와 함께 씁쓸한 자진 사퇴로 막을 내렸다.
'황금세대'를 품고도 세계 무대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 근본적 원인은 단순한 불운이나 심판의 판정이 아니었다. 그것은 현대 축구의 치밀한 전략 대신 소수 스타 플레이어의 개인기에만 맹목적으로 의존한 낡은 '해줘 축구'의 처참한 붕괴였다.
홍명보호의 출항은 시작부터 거센 풍랑을 맞았다. 지난 2024년 7월,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이 경질된 후 대한축구협회는 장장 5개월의 장고 끝에 홍 감독을 선임했다. 그러나 외국인 감독 후보들과 달리 정상적인 면접 절차를 생략한 채 이루어진 선임은 거센 불공정 논란을 낳았고, 급기야 국회 국정감사 도마 위에까지 오르는 촌극을 빚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뼈아픈 꼬리표를 떼기 위해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축구 발전을 위해 헌신하겠다"며 비장한 출사표를 던졌지만, 결과적으로 그 약속은 본선 무대의 높은 벽 앞에서 공허한 메아리가 되고 말았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 홍 감독이 꺼내 든 전술적 해법은 '스리백'이었다. '철기둥' 김민재를 중심으로 수비의 안정을 꾀하겠다는 구상 아래 1년 가까이 조직력을 가다듬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공수 양면에서 뚜렷한 한계와 불협화음이 노출됐다.
월드컵 직전 평가전에서 연이어 무너지며 불안감을 키웠고, 미국 사전캠프까지 차려가며 한 달간 매달렸던 고지대 적응 훈련조차 정작 본선 무대에서는 이렇다 할 위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체코와의 1차전에서 힘겹게 역전승을 거두었으나, 멕시코(0-1 패)와 남아프리카공화국(0-1 패)에 연달아 덜미를 잡히며 스리백의 구조적 결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가장 뼈아픈 대목은 전술적 무능이 낳은 '해줘 축구'의 반복이다. 현대 축구가 요구하는 유기적이고 디테일한 움직임 대신, 손흥민(LAFC),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빅리거들의 '한 방'에 기대는 악습이 또다시 재현됐다.
조 최약체로 꼽히던 남아공전은 한국 축구의 부끄러운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 경기였다. 남아공은 한국의 뻔한 전술과 경직된 수비 라인을 완벽하게 분석해 측면을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선제골을 내준 뒤 텐백으로 밀집 수비를 펼치는 상대를 뚫어내기 위해서는 세밀한 전술 변화와 유기적인 스위칭이 필수적이었으나, 홍명보호는 최초에 설정한 경직된 포메이션의 틀에 갇혀 무기력하게 자멸하고 말았다.
해외 축구 통계 매체가 예측했던 94%의 토너먼트 진출 확률은 모래성처럼 허무하게 무너졌다. 48개국 체제로 대회가 확대되며 32강 진출이 그 어느 때보다 수월해졌음에도, 한국 축구는 조 3위 간의 경쟁에서조차 밀려나며 일찌감치 짐을 쌌다. 축구 전문가들이 작금의 사태를 두고 "무능과 저능, 몰상식의 결과물"이라며 날 선 비판을 쏟아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홍 감독은 지난달 29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결과 앞에서 어떤 설명도 앞설 수 없다"며 결국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사령탑 한 명의 쓸쓸한 퇴장으로 덮고 넘어가기엔 한국 축구가 입은 상처와 후유증이 너무나도 깊다.
아시안컵 실패 이후 땜질식 처방으로 일관해 온 대한축구협회의 구시대적인 시스템 역시 피할 수 없는 도마 위에 올랐다. 내년 1월로 다가온 2027 아시안컵을 앞두고, 한국 축구는 뼈를 깎는 쇄신을 통해 시스템을 뿌리부터 다시 설계해야 하는 절체절명의 과제를 떠안게 됐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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