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존심이란 건 있을 수 없다"…문자 한 통에 17명이 일터 잃은 경비원들 [낮은 곳의 기록자]
[1평짜리 경비초소에 남은 노년의 노동]
경비원 '집단 해고' 논란에…"마음 상처, 많이 힘들다"
"그래도 이 아파트에서 먹고 살았으니 고맙게 생각해"
[파이낸셜뉴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죠. 말하면 못 견디고 나가야 합니다."
최근 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 경비초소에서 만난 경비원 A씨는 집단해고 논란에 대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경비원들은 아파트 측과 직접 고용 관계가 아닌 용역 계약 구조 안에서 일한다. A씨 역시 계약 관계상 철저히 '을' 위치에 놓일 수밖에 없다. 집단 해고 논란이 있는 만큼, 인터뷰는 어렵게 이뤄졌고, A씨가 특정되지 않도록 그의 발언과 주변 정황을 필요한 범위에서 정리했다.
그는 해고 논란에 대해 말을 아꼈다. A 씨는 이 단지에서 오래 일해왔지만, 계약 변경과 해고 과정에 대해서는 "업체와 동대표 등 사이의 일"이라며 "경비들은 모른다"고 강조했다. 그는 "잘못 얘기했다가 또 문제가 될까 봐요"라며, 자신들의 처지를 '그림자'라고 표현했다. A 씨는 "그냥 나오라면 나오고, 우리는 그림자입니다"라고 털어놨다.
민주노총 민주일반연맹 전국민주일반노동조합은 지난달 이 아파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기존 경비원 17명이 문자로 미채용 통보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후 해고자 명단이 일부 조정되면서 최종 해고 인원은 14명이 됐다.
해당 아파트는 지난 5월 말 새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이 선출된 뒤 새 경비업체와 계약했다. 업체는 기존 경비원들을 면담한 뒤 일부에게 미채용이 결정됐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노조는 용역업체가 바뀔 때마다 기존 경비원들의 고용이 보장되지 않는 구조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와 해고 당사자들은 기자회견 뒤 경비원 고용승계를 요구하는 입주민 300여 명의 서명을 입주자대표회의 회의실에 전달했다.
A씨는 해고된 경비원 상당수가 70대와 80대라고 했다. 이 아파트에서 오래 근무한 이들도 있다고 했다.
그는 다른 일자리를 구하는 일도 쉽지 않다고 했다. 같은 지역 아파트와 용역업체 사이에서 평판이 중요하기 때문에 목소리를 크게 내는 것 자체가 부담이 된다는 설명이었다.
아파트 경비원 상당수는 용역업체 소속으로 일한다. 입주자대표회의가 업체를 바꾸면 기존 경비원 고용이 자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도 있다. 새 업체가 면접을 다시 보거나 일부 인원을 채용하지 않으면, 오래 일한 경비원도 일터를 잃을 수 있다.
단지에서 만난 주민들은 사태가 길어지는 데 부담을 느끼면서도 경비원들의 처지를 걱정했다. 아파트 인근에서 만난 40대 주민 B씨는 "오래 계신 경비원분들은 주민 얼굴도 알고 단지 사정도 잘 안다"며 "갑자기 바뀌는 것보다 서로 납득할 수 있는 방식으로 정리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50대 주민 C씨도 "관리 문제는 입주민들도 알아야 하지만, 일하던 분들이 하루아침에 불안해지는 건 마음이 좋지 않다"며 "대화로 잘 풀렸으면 한다"고 했다.
A씨는 경비 업무가 순찰에 그치지 않는다고 털어놨다. 아파트 단지 안을 도는 일뿐 아니라 청소, 음식물 처리, 분리수거, 낙엽 청소, 제설까지 맡는다. 그는 "경비하고 청소하고 음식물 처리하고 순찰 도는 일이 기본"이라며 "주민들이 버린 물건 뒤처리까지 해야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분리수거장 정리도 부담이다. 음식물통을 씻고, 주민들이 내놓은 대형 폐기물을 치우는 일도 경비원의 몫이 되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겨울에는 제설이 가장 힘들다고 했다. 눈이 오면 단지 안 도로와 주차장을 치워야 한다. 밤에 눈이 내리면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고 했다. 그는 "밤 12시나 1시에 눈이 오면 잠도 못 자고 쓸어요. 아침에 또 눈이 오면 쓸어놓은 흔적도 없어집니다"라고 푸념했다.
경비원 A씨에게 이 일은 단순한 소일거리가 아니었다. 가족들은 그만두라고 말하지만, 그는 쉽게 일을 놓지 못한다고 했다. 연금만으로 생활하기에는 부담이 있고, 일을 해야 손주들에게 용돈도 줄 수 있다고 했다.
A씨는 "그만두라고 하죠. 그런데 그만두기도 그렇고요"라며 "그래도 (돈을) 벌면 손자들 오면 20~30만원씩 용돈 주는 재미로 사는 거죠"라고 말했다.
그는 경비원마다 사정이 다르다고 했다. 여유가 있어 그만둘 수 있는 사람도 있지만, 생활비 때문에 계속 일해야 하는 이들도 있다는 것이다.
A씨는 "여유가 있는 사람은 나가지만, 여기 목숨 건 사람이나 집이 어려운 사람은 못 나간다"고 했다. A씨도 퇴직 뒤 경비 일을 시작했다. 처음부터 익숙했던 일은 아니었다. 몸도 힘들었지만, 마음이 상하는 일이 더 버거웠다고 했다.
그는 "처음 들어와서 3개월, 1년 동안은 정말 자존심 상해서 몇 번 그만두려고 했다"며 "그런데 뭐 하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경비 일은 정말 힘든 일"이라며 "자존심이라는 건 있을 수가 없다"고 했다.
해고된 동료들 중에는 이 아파트에서 14년, 15년씩 근무한 이들도 있다고 했다. A씨는 이들이 불만을 크게 드러내지 않은 채 일터를 떠났다고 말했다.
그는 "욕하고 나간 사람은 없다"며 "이 아파트에서 먹고살았으니 고맙게 생각하고 나갔다"고 했다.
A씨는 자신의 말이 동료 경비원들에게 문제가 될까 걱정했다. 마지막 인사도 사과였다.
"도움도 안 되는데 죄송합니다. "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기자 정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