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봉탈'의 미래
'봉탈'이라는 말을 얼마 전 처음 들었다. 패션업계를 통틀어 부르는 '봉제 업계'와 '탈출'을 합친 말이다. 전직을 희망하는 업계 사람들이 쓰는 표현이라고 한다. 처우 대비 업무강도가 높다는 게 업계 탈출을 꿈꾸는 가장 큰 이유다. 온라인에 검색해보니 '봉탈' 관련 게시물을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업무 대비 처우가 낮은 이유는 낮은 수익성이 배경으로 꼽힌다. 올 들어 소비심리 회복으로 실적이 개선됐음에도 삼성물산 패션부문, 한섬 등 주요 패션기업의 영업이익률은 대부분 한자릿수대에 머물러 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에 옷을 납품하는 패션 벤더회사도 비슷하다. 한세실업, 세아상역은 지난해 영업이익률이 4%대에 머물렀다. 원사부터 수직계열화를 갖춘 영원무역이 13%로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달성했다.
패션기업은 수익률이 낮을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게 업계 안팎의 평가다. 매출의 대부분을 의존하는 백화점 등 유통사 수수료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한섬은 지난 1·4분기 매출의 절반에 해당하는 2000억원을 판매관리비로 썼다. 또 판관비의 절반이 넘는 1324억원이 백화점 등에 들어가는 지급수수료로 나갔다. 패션 벤더 역시 브랜드에 납품하는 사업 특성상 낮은 원가를 유지해야만 한다.
처우가 회사의 수익률만으로 결정되지는 않는다. 패션업계는 소위 '패션에 진심'인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서 볼 수 있는 화려한 생활을 그리며 업계 입문을 꿈꾸는 청년이 줄을 선다는 것이다. 보상보다는 특정 브랜드에서 일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회사는 이들의 열정을 이용할 유인이 충분하고, 그렇게 아낀 비용을 수수료와 마케팅에 사용한다. 패션 벤더도 비슷하다. 업무량을 줄이기 위해 채용을 늘리는 데 인색하다.
최근에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높은 성과급이 직장인들의 박탈감을 가중시켰다. 대기업 가운데 상대적으로 임금이 낮은 유통, 식품업계에서도 움직임이 나타났다. 신세계, 오리온이 성과급을 요구하고 나섰다. 패션업계는 아직 움직임이 없다. 하지만 직원들은 작년 바닥을 찍고 올해 반등한 수익을 얼마나 나눌지 지켜보고 있다.
패션업계는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 인공지능(AI)에 주목하고 있다. 백화점 등 유통사 의존을 줄이는 방안으로 오랫동안 공을 들여 온 자사몰이 관심의 중심이 됐다. 자사몰은 유통사에 밀려 성장에 한계가 있었지만 챗GPT 등 생성형 AI의 등장이 장밋빛 미래를 꿈꾸게 만들었다. 유통사 의존을 줄이고 생산성을 높여 수익성을 개선한다면 업계 탈출 희망자도 줄어들지 궁금하다.
unsaid@fnnews.com 강명연 생활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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