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강남시각

[강남視角] 파행이 관행된 최저임금 심의

파이낸셜뉴스
김영권 중기벤처부장
김영권 중기벤처부장

역시나 큰 이변은 없었다. 법정 시한인 지난달 29일을 넘기고도 아직 결론 나지 않은 2027년도 최저임금 이야기다.

삼성전자발 '대기업 N% 성과급'이 불을 지핀 최저임금 심의는 노동자 측과 사용자 측의 시각차만 확인한 채 여전히 공전하고 있다.

노동자 측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며 처음에 16.3% 인상안을 들고 온 가운데 사용자 측은 노동자보다 더 큰 박탈감을 느끼고 있다며 최저임금 동결을 요구한 상황에서 이미 기한 내 합의는 물 건너간 상황처럼 보였다.

영세자영업자, 소상공인 가운데에는 최저임금만큼도 벌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고 하니 일견 이해가 가는 부분이기도 하다. 역대급 성과급의 이면에서 1600원을 두고 벌어지는 처절한 논쟁은 날로 양극화가 심화되는 우리 경제가 갖고 있는 아이러니다.

이제 내년도 최저임금은 지난 1988년 처음 최저임금 제도 시행 이후 대다수의 과거가 그랬듯, 양측의 입장이 팽팽한 가운데 심의촉진구간이라는 이름의 중재안을 통해 최종적으로 정해지는 흐름이 예상되고 있다.

문제는 과연 중재안이 정말 중재안이냐는 점이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반복되는 중재안이라는 이름의 보이지 않는 관행은 어느새 당연한 것처럼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실제로 1988년 최저임금 제도가 시행된 이후 법정 시한을 지킨 것은 단 9차례뿐이다. 거의 매년 시한을 넘기고 결국 7월 중순께 중재안이 등장하고서야 결론이 났다.

1988년 제도 시행 이후 2026년 적용분까지 39차례의 결정 가운데 노사 합의로 마무리된 것은 단 8차례뿐이고, 나머지 31차례는 모두 표결로 매듭지어졌다. 그리고 그 31차례 표결의 절반이 넘는 16차례가 공익위원이 제시한 안으로 결정됐다.

다수의 사람들은 노동자, 사용자 및 정부가 지정하는 공익위원이 9명씩 들어가는 현재의 최저임금위원회 구성으로는 불가피한 결과라는 말도 한다. 노동자와 사용자위원이 팽팽히 맞서는 상황에서 결국 결국 캐스팅보트는 정부가 임명하는 나머지 9명의 공익위원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중재안이 결국은 최저임금을 결정하게 되는 이유다.

노사는 올해 4차 수정안까지 주고받으며 격차를 1680원에서 1290원까지 좁혔지만 이 속도라면 결국 최종 순간에는 또다시 공익위원의 중재안이 등판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늘 그랬듯 4차례에 걸쳐 줄어든 390원의 격차보다 중재안으로 나올 금액이 주는 격차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심의요청 이후 90일 이내라는 법정 시한이 너무 촉박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무엇보다 노동자와 사용자 간 최저임금 협상이 중재안이라는 메인요리를 내놓기 전 무의미한 애피타이저처럼 인식되는 현재의 상황이 좋지는 않아 보인다. 매년 노동자는 큰 폭의 인상을, 사용자는 동결 혹은 소폭 인상을 내걸고 평행선을 달리다가 법정 시한을 넘기고 결국 공익위원의 중재안으로 결론이 나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애초에 법정 시한 준수를 전제로 제도가 설계되지 않았다는 의구심마저 든다.

물론 노사 각자 자기편 논리만 밀어붙일 뿐 애초에 합의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균형을 갖고 조정을 할 수 있다는 면에서 공익위원의 역할은 필요하다. 다만 최저임금은 전체 기업의 99% 넘는 중소기업들의 경영에 직격탄을 날릴 수 있는 민감하고 중요한 결정이다. 노동자 입장에서도 가족의 생계와 직결되는, 미루거나 양보할 수 없는 절박한 문제다.

최저임금 시한을 넘기는 파행이 어느새 당연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법정 시한을 늘리거나 노동자와 사용자 측의 이견을 조정할 기회를 더 많이 주는 등 근본적인 대안이 필요한 시점이다.

kim091@fnnews.com 김영권 중기벤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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