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IB DP 평균 35.01점… 제주 공교육 IB 실험도 다시 시험대
국내 DP·CP 성적 취득 603명… 전년보다 5.1% 증가
한국 DP 평균, 세계 30.88점보다 4.13점 높아
제주 표선고, 2021년 공립 첫 IB 월드스쿨 인증
첫 DP 배출 성과 뒤 대입 연계·지역 학생 진학 과제
IB 본부 "한국, 인도와 함께 빠르게 성장하는 교육체제"
세계 평균 웃돈 성적표… 제주 교실 변화는 이제부터 검증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국내 국제 바칼로레아(IB) 디플로마 프로그램(DP) 평균 성적이 세계 평균보다 4점 이상 높게 나타났다. 올해 국내에서 DP와 직업연계 프로그램(CP) 성적을 받은 학생도 603명으로 1년 전보다 5.1% 늘었다.
제주에서는 이 성적표의 의미가 남다르다. 서귀포시 표선면의 공립 일반고인 표선고등학교가 IB DP를 도입한 뒤 제주가 국내 공교육 IB 확산의 시험대 역할을 해왔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의 성적이 세계 평균을 웃돈 지금 제주가 물어야 할 질문은 분명해졌다. IB가 학생의 점수만 높였는지, 아니면 수업과 평가, 대학 진학, 지역학교의 역할까지 실제로 바꾸고 있는지를 검증할 차례다.
7일 국제 바칼로레아에 따르면 2026년 5월 DP·CP 시험 결과 국내 학생 603명이 성적을 취득했다. 전년보다 5.1% 늘어난 규모다.
한국의 DP 평균은 35.01점으로 집계됐다. 세계 DP 평균 30.88점보다 4.13점 높다. 전 세계 DP·CP 성적 취득자는 20만9607명으로 전년보다 3.7% 증가했다. 한국의 증가율은 세계 전체보다 1.4%포인트 높았다.
■ 세계보다 4.13점 높았다… 제주에선 표선고가 공교육 IB 실험
DP는 만 16~19세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2년 과정의 고교 단계 교육 프로그램이다. 학생들은 언어와 사회, 과학, 수학 등 여러 영역을 공부하고 시험과 과제, 탐구활동을 함께 평가받는다.
대학 진학과 이후 학업·진로 준비도 교육과정의 주요 목표다. 교과 지식을 배우는 데 그치지 않는다. 학생은 자료를 분석하고 질문을 만들며 자신의 판단을 글과 말로 설명해야 한다.
최고 점수는 45점이다. 6개 과목에서 각각 최고 7점까지 받을 수 있다. 지식이론과 소논문 등 핵심 영역에서 최대 3점을 추가로 받을 수 있다. 한국 DP 학생 집단의 이번 평균은 세계 평균을 웃돌았다.
다만 참여 학생 규모와 학교 운영 기간, 학생 구성, 교육환경이 다를 수 있어 일반 고교생 전체와 직접 비교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같은 국제 평가체계에서 한국 DP 학생 집단이 세계 평균보다 높은 성적을 냈다는 사실은 국내 IB 확산 과정에서 주목할 결과다.
제주에서는 이 성적표를 표선고의 공교육 실험과 함께 봐야 한다. 표선고는 2021년 제주 공립학교 가운데 처음으로 IB 월드스쿨 인증을 받았다.
서귀포시 읍면지역의 공립 일반고가 국제학교가 아닌 공교육 현장에서 DP를 운영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전국적인 관심을 끌었다. 2022년부터 정식 DP 수업에 들어갔다. 제주에서는 국제학교인 브랭섬홀아시아와 노스런던컬리지잇스쿨 제주에서도 IB 과정이 운영돼 왔다.
표선고의 의미는 다르다. 공립 일반고 학생들이 한국어를 중심으로 국제 공통 교육과정과 평가를 경험한다는 점에서다.
표선고는 정답을 외우는 수업보다 질문과 탐구, 토론, 글쓰기를 강화하는 방식으로 교실 수업을 바꿔왔다. 학생은 교사가 정리한 내용을 받아 적는 데 머물지 않고 자료를 찾고 근거를 비교하며 자신의 주장을 설명해야 한다.
평가도 달라진다. 학생이 왜 그렇게 판단했는지, 어떤 자료를 사용했는지, 생각을 얼마나 논리적으로 전개했는지를 함께 본다.
전국 IB 성적이 나온 지금 제주에서 더 중요한 질문도 바로 이 변화다. 표선고 학생의 점수뿐 아니라 IB가 실제 제주 교실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
■ 첫 DP 배출까지 왔다… 대입·지역 학생 진학은 새 숙제
표선고는 2024년 첫 DP 이수 학생을 배출했다. 당시 DP 외부평가에 응시한 26명은 전체 디플로마 또는 과목별 이수증을 취득했다.
11명은 전체 디플로마를, 15명은 과목별 이수증을 받았다. 제주 공교육 IB 실험이 첫 결과를 낸 순간이었다.
하지만 성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DP 교육과정과 한국 대학입시를 동시에 준비해야 하는 부담이 제기됐고, 모든 학생이 전체 디플로마 과정 평가에 응시하는 구조도 아니었다.
제주도교육청이 의뢰한 성과 분석 과정에서도 IB 이수와 국내 대학 진학을 어떻게 연결할지가 핵심 정책 과제로 떠올랐다.
IB가 공개한 DP 교육과정 연계 연구도 주목할 대목이다. 한국을 비롯해 싱가포르와 호주, 캐나다, 핀란드, 프랑스, 미국 등 여러 국가의 교육과정과 비교한 결과 DP는 국가·지역 교육기준을 충족하거나 일부 영역에서 이를 웃도는 것으로 분석됐다.
교육과정의 깊이와 폭, 국가별 교육체제에 대한 적응 가능성을 보여주는 결과다. 표선고의 IB 교육이 국내 고교 교육과정과 동떨어진 별도의 국제교육이 아니라 공교육 안에서 결합할 가능성을 따져볼 근거이기도 하다.
그러나 교육과정의 수준이 높다는 사실과 한국 대학입시에서 제대로 인정받는가는 다른 문제다.
제주에서는 바로 이 간극을 줄이는 일이 다음 과제로 남았다. IB 학생이 좋은 성적을 받아도 국내 대학이 교육과정의 특성과 평가방식을 충분히 인정하지 않는다면 학생과 학부모는 별도의 입시 준비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IB식 탐구·논술 수업을 하면서 다시 수능과 내신 중심 입시에 맞춰 추가 준비를 해야 한다면 교육과정 혁신의 효과도 줄어들 수 있다. IB의 교육적 가치와 한국 대학입시의 현실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지가 표선고만의 문제가 아닌 이유다.
■ 학교가 살아났더니 지역 학생이 밀려난다?… 또 다른 시험대
표선고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도 생겼다. 제주시 등 다른 지역 학생의 지원이 늘고, 정작 표선과 인근 지역 학생의 진학 기회가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제주도의회에서도 IB 학교의 성공이 지역 학생을 밀어내는 역설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는 문제가 공식적으로 논의됐다.
IB가 농어촌 학교를 살리는 정책으로 출발했는데 학교가 인기를 얻은 뒤 지역 학생이 들어가기 어려워진다면 정책 목표를 다시 점검해야 한다.
반대의 문제도 있다. 학교 선택권을 지역에만 묶으면 제주 전역의 학생이 IB 교육을 선택할 기회를 제한할 수 있다.
결국 풀어야 할 문제는 IB의 성공 여부만이 아니다. 성공한 학교의 교육 기회를 누구에게, 어떤 기준으로 나눌 것인지가 다음 단계다.
표선고는 학교의 경쟁력을 키우면서 지역 학생의 교육권도 함께 지켜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됐다. 공교육 혁신의 성과가 새로운 교육 격차를 만들지 않는지 따져봐야 한다.
■ 좋은 교육과정만으로는 부족하다… 교사가 떠나도 시스템은 남아야
교원 전문성도 중요한 문제다. IB 수업은 교사가 정해진 내용을 전달하는 방식만으로 운영하기 어렵다. 학생의 질문을 끌어내고 탐구활동을 설계하며 긴 글과 논증을 평가할 전문성이 필요하다.
교사 한두명의 열정에 기대 유지할 수 있는 교육과정도 아니다. 교원 이동이 잦아도 수업이 흔들리지 않도록 전문교사를 양성하고 연수를 지속해야 한다.
학교 단위의 수업·평가 체계와 교육 인프라도 함께 갖춰져야 한다. 표선고는 올해도 새 교육체제 준비 과정에서 지역 학생의 안정적인 진학 기회와 IB 이수 학생의 대학입시 연계, 교원 전문성 강화, 교육 인프라 지원 등을 과제로 제시했다.
좋은 교사가 떠날 때마다 프로그램의 질이 흔들린다면 공교육 모델로 확산하기 어렵다. IB를 특정 교사나 특정 학교의 성공 사례가 아닌 지속 가능한 공교육 시스템으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다.
■ 한국은 '급성장'… 이제 제주가 먼저 답할 차례
한국의 IB 성적 취득 학생 증가율은 세계 전체보다 높았다. IB 본부도 한국을 인도와 함께 빠르게 성장하는 교육 시스템으로 평가했다.
조 램 IB 아시아태평양 지역 총괄이사는 "올해 성적 분포는 호주와 일본처럼 이미 자리 잡은 프로그램부터 한국과 인도처럼 급성장하는 교육 시스템까지 IB 공동체의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학생들은 질문하고 창조하며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책임감을 갖도록 하는 학습 경험을 공유한다"며 "졸업생들은 지역사회와 경제가 필요로 하는 사고방식을 갖추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는 현재 35개 IB 월드스쿨이 DP를 운영하고 1개교가 CP를 운영한다. CP는 만 16~19세 학생을 대상으로 학업과 직업 역량 개발을 결합한 프로그램이다.
전 세계 DP·CP 프로그램은 159개국에서 운영된다. 이번 졸업생들은 290만명 규모의 IB 학습자 공동체에 합류했다. IB는 더 이상 일부 국제학교만의 교육과정에 머물지 않고 있다.
제주는 그 변화의 앞부분에 서 있다. 표선고는 읍면지역 공립 일반고가 IB를 도입하면 어떤 변화가 생기는지를 먼저 보여준 학교다.
학생 선택이 늘고 학교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는 점은 성과다. 동시에 지역 학생의 진학 문제와 대학입시 연계, 교원 전문성, 교육 인프라는 해결해야 할 숙제로 남았다.
세계 평균을 웃돈 이번 성적은 의미 있는 결과다. 하지만 제주에서 더 중요한 숫자는 앞으로 따로 쌓여야 한다.
IB를 시작한 학생 가운데 몇 명이 끝까지 교육과정을 이수하는지, 대학 진학 과정에서 어떤 선택을 하는지, 졸업 뒤 어떤 학습 역량을 보이는지 살펴봐야 한다.
지역 학생의 교육 기회가 실제로 넓어졌는지도 확인해야 한다. 표선고의 수업 변화가 다른 제주 학교로 확산되는지, IB를 선택하지 않은 학생의 교실까지 질문과 탐구 중심으로 바뀌는지도 따져봐야 한다.
공교육 혁신은 국제 평균보다 높은 성적표 한 번으로 증명되지 않는다. 한국 IB 학생들은 세계 평균을 웃도는 결과를 받아들었다.
이제 제주가 답할 차례다. 전국보다 먼저 공립 일반고 IB 실험에 뛰어든 제주가 좋은 성적을 학생의 진학 기회와 지역학교의 변화, 교실 수업의 혁신으로 연결할 수 있느냐가 다음 시험대다.
jyb@fnnews.com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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