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소중한 0표"…'광고천재' 이제석이 말한 공익 캠페인
[투표용지 부족 논란…기록으로 남기다]
중앙선관위 앞 퍼포먼스 진행
"진영 감정 아닌 참정권 문제로 봐야"
[파이낸셜뉴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진단하고, 대책을 마련하고, 처벌받을 일이 있으면 처벌받으면 됩니다. 그런데 이 문제가 진영 감정으로 흘러가는 건 우려됩니다."
공익광고인 이제석 씨는 6·3 지방선거 투표용지 부족 논란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 문제를 특정 진영의 유불리로 볼 일이 아니라 "참정권이 훼손된 문제"로 봐야 한다고 했다.
이 씨는 지난달 29일 진행한 인터뷰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했다는 것은 유권자가 투표할 권리를 제때 행사하지 못할 수 있었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정치권의 구호가 아니라 시민이 선거 관리 문화를 다시 점검하는 문제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투표용지 부족 논란은 지난 6월 3일 지방선거 본투표 과정에서 일부 투표소에 용지가 부족해지면서 제기됐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전국 91곳 투표소에서 투표용지 7194장이 부족했던 것으로 집계됐다.
이 씨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처음 접했을 때 "참정권이 훼손된 문제라고 봤다"고 했다. 그는 선거 관리 문제를 "감시받지 않는 권력의 문제"라고 표현하면서도, 이를 부정선거론이나 특정 정치세력의 구호로 묶는 데는 거리를 뒀다.
그는 "각자의 문제의식은 이해한다"면서도 "관이나 정치 주도가 아니라 민간과 전문가들이 문제를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실관계 확인, 책임 소재, 재발 방지책을 차례로 따져야 한다는 설명이다.
이 씨가 현장 퍼포먼스에 나선 것도 같은 문제의식에서였다. 그는 지난달 11일 경기 과천 중앙선관위 앞에서 투표용지 부족 사태를 풍자하는 퍼포먼스를 공개했다. 당시 현장에는 "당신의 소중한 0표", "민주주의의 꽃은 매진입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포스터와 현수막이 등장했다. 선관위 관계자는 현장에서 퍼포먼스를 제지하고 현수막을 철거했다.
이 씨는 자신을 따라다니는 '광고천재'라는 표현에 대해서는 선을 그었다. 그는 자신을 천재라기보다 실행이 빠른 쪽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아이디어 자체보다 중요한 것은 문제를 발견한 뒤 실제 현장으로 옮기는 속도라는 것이다.
그는 "오전에 기획해서 오후에 현장에 나갈 수 있는 조직이 많지 않다"고 말했다. 큰 조직일수록 검토와 결재, 조율 과정이 길어지지만, 공익 캠페인은 때를 놓치면 의미가 줄어든다고 했다. 사회적 논란이 한창일 때 시민들이 보고 느낄 수 있어야 메시지도 전달된다는 설명이다.
공익 캠페인에서 중요하게 보는 것도 실행의 속도다. 이 씨는 "사회 캠페인은 타이밍이 있다"며 "충동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전까지는 오래 고민하고 신호가 오면 바로 뛰어든다"고 말했다. 현장에 나가기 전까지는 의제의 성격과 표현 수위, 예상되는 반응을 따져보지만, 실행 시점이 왔다고 판단하면 곧바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그는 2009년 이제석광고연구소를 세운 뒤 공익광고와 공공 캠페인을 주로 해왔다. 독도, 역사 왜곡, 북한 인권, 후쿠시마 오염수, 전쟁, 억류 국민 문제 등 여러 의제를 다뤘다. 의제가 넓은 만큼 정치적 해석도 따라붙었다. 이 씨는 공익 캠페인이 특정 진영으로만 읽히는 것이 가장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는 어떤 작업은 보수 쪽에서 공격을 받고, 어떤 작업은 진보 쪽에서 비판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이 보는 기준은 진영이 아니라 공익성이라고 설명했다. 사회적으로 놓치기 쉬운 문제를 시각적으로 드러내고, 시민들이 다시 이야기하게 만드는 것이 공익 캠페인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이번 캠페인에서 이 씨가 주목한 것은 20·30 세대의 참여 방식이다. 긴 성명서나 회의 자료보다 짧은 영상, 현장 사진, 온라인 공유가 더 빠르게 움직인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즉시 찍고, 짧게 편집해 올리고, 다시 여러 사람이 퍼 나르는 방식이 공익 캠페인의 전달 경로가 됐다고 봤다.
이 씨는 지금은 누구나 휴대전화로 촬영하고 바로 편집할 수 있는 시대라며, 현장에서 본 것을 남기는 일이 중요해졌다고 했다. 과거에는 캠페인 현장을 사진 몇 장과 자료로 정리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현장의 대화, 주변 반응, 설치 과정, 제지 장면, 철거 장면까지 모두 기록의 일부가 된다.
그는 "현수막 사진 한 장과 현장에서 사람들이 항의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영상은 천지 차이"라며 "그 상황 자체가 시대의 사진"이라고 말했다. 완성된 결과물보다 그 결과물이 놓인 현장, 그 앞에서 나온 반응, 이를 둘러싼 대화가 더 큰 의미를 갖는다는 설명이다.
이 씨는 20·30 세대가 이런 방식에 더 익숙하다고 봤다. 사회 문제를 긴 글로 정리하기보다 짧은 영상과 이미지로 공유하고, 현장에서 본 장면을 다시 온라인에서 확산하는 방식이다. 그는 젊은 세대가 반드시 거대한 조직을 만들지 않아도, 휴대전화와 편집 앱만으로 현장의 문제를 기록하고 알릴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흐름이 공익 캠페인의 문턱을 낮췄다고도 했다. 과거에는 광고 제작 장비와 매체 집행 비용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현장성과 속도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이다.
이 씨는 "전문가만 캠페인을 만드는 시대는 지났다"며 "시민이 직접 보고 찍고 남기는 것도 공익 캠페인의 한 방식이 됐다"고 분석했다.
이 씨는 영상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단순 홍보 수단으로만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조회수보다 중요한 것은 기록"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벌어진 일을 남겨야 나중에 다시 확인하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도 뒤늦게 영상 기록과 SNS의 필요성을 느꼈다고 했다. 예전에는 온라인 문화에 거리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사람의 얼굴과 음성, 현장 에피소드가 남는 방식에 주목하고 있다고 했다.
이 씨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와 관련한 후속 작업도 고민하고 있다. 다만 사안이 커지면서 정치적 오해를 받을 수 있다는 부담도 있다고 했다. 투표지를 풍자하는 포스터 공모 같은 방식도 생각했지만, 지금은 상황을 보며 거부감이 덜한 방향을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투표용지 부족 논란은 국회와 선관위 차원의 조사로 넘어갔다. 이 씨는 그 과정과 별개로 시민이 직접 보고 들은 장면을 기록하는 방식의 공익 캠페인을 이어가겠다고 했다.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