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수입 4억 가능" 전직 병원장이라더니…내 돈으로 파생상품 투자 [사기꾼들]
베트남 200명 대기 줄 섰다던 '전직 병원장'
알고 보니 경력은 '제로(0)'인 상습 사기꾼
"베트남 노동부가 밀어준다?" 전부 거짓말
"피해자가 먼저 투자 제안" 적반하장 최후
법원 "집행유예 기간 자숙 않고 다시 범행"
[파이낸셜뉴스] "이 사업, 진짜 대박입니다. 눈 딱 감고 같이 한번 해보시죠."
지난 2023년 4월, 서울 송파구의 한 적막한 카페.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60대 남성 A씨(68)의 목소리에는 확신이 가득했다. 그의 화려한 설명이 이어질 때마다, 은퇴한 자산가나 누릴 법한 장밋빛 미래가 피해자의 눈앞에 신기루처럼 그려졌다. '전직 병원장'이라는 신뢰감 주는 타이틀, 그리고 베트남에서 인력을 들여와 수억원의 월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사업 계획. 바로 그때였다. 돌이킬 수 없는 '투자의 늪'이 만들어졌다.
A씨가 피해자 B씨를 향해 치밀하게 깔아놓은 덫은 실체도, 뼈대도 없는 유령 같은 '외국인 간병인 사업'이었다. 지인의 소개로 만나 휴대전화 메시지와 이메일 몇 번으로 교묘하게 쌓아 올린 신뢰는, 평범했던 한 피해자의 소중한 자산을 송두리째 삼켜버렸다. 두 사람의 잔혹한 악연은 어떻게 시작된 걸까. 시간은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 2022년 4월 어느 봄날이었다. A씨는 부동산 업계에 종사하던 B씨에게 접근했다. "병원장을 하다가 그만두고 병원 컨설팅을 하고 있다"며 자신을 완벽한 자산가로 포장한 그는, 좋은 병원이나 약국 자리를 알아봐 달라는 그럴싸한 핑계로 연락을 지속하며 B씨의 경계심을 눈 녹이듯 허물었다. 철저히 기획된 '빌드업'이었다.
시간이 흘러 2023년 4월 초, A씨는 마침내 본색을 드러냈다. 그는 "베트남에서 취업비자로 간병인 200명을 들여와 국내 병원에 취업시키는 회사를 설립하려 한다"며 "한 사람당 200만원만 받아도 한 달이면 4억원 정도의 수입이 생긴다. 2000만원을 투자해 주면 회사 지분과 수익금을 주겠다"고 감언이설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그 화려한 사업 계획이 남긴 대가는 너무나 잔인했다. B씨가 미래를 걸고 건넨 2000만원은 미래를 위한 투자가 아닌, 잔혹한 사기극의 판돈에 불과했다.
사실 A씨는 병원장 경력이 전혀 없었을 뿐만 아니라, 베트남 간병인 사업을 정상적으로 추진할 재력도 능력도 없었다. 그의 머릿속을 채운 것은 오직 하나, B씨의 주머니에서 나올 투자금뿐이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A씨의 배신이었다. 그는 돈을 건네받은 바로 그다음 날, 피해자의 피땀 어린 투자금을 원금 손실 위험이 극도로 높은 주식 파생상품 매수 자금으로 유용해 버렸다. 투자 원금은 약 5개월 만에 자본시장의 차가운 불길 속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했다.
돈은 사라졌지만, A씨의 사기극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베트남 간병인 사업 준비가 정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처럼 B씨에게 지속적으로 연락했다. "여전히 베트남 노동부가 밀어주고 있다", "명동에 사무실을 내려고 준비하고 있다", "베트남에서 200명이 대기 줄을 서 있다"는 문자를 보내며 B씨를 끝까지 속였다. "비자 항목만 통과되면 주식 가치가 최소 10배에서 수십 배는 뛸 것"이라며 사기꾼 특유의 희망 고문으로 B씨의 마음을 흔들기도 했다.
12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3단독(이성균 판사)은 지난 6월 26일 사기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징역 6개월을 선고했다. 그는 피해자 B씨를 속여 지난 2023년 4월 3일 2000만원을 투자금 명목으로 가로챈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스스로를 병원장이라고 소개한 적도 없고, 오히려 피해자가 먼저 투자를 제안했다"며 적반하장의 극치를 달렸지만, 법원은 이러한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피해자의 진술이 일관됐고, 이를 뒷받침하는 문자메시지 등 '빼도 박도 못할' 증거가 차고 넘쳤기 때문이다.
알고 보니 A씨는 이미 전과가 있었다. 그는 지난 2020년 6월 서울고등법원에서 특정범죄가중처벌등에관한법률위반(사기) 죄로 징역 2년 6개월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는 등 범죄 전력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재판부는 "동종 범죄로 인한 집행유예 기간에 자숙하지 않고 또다시 범행을 저질렀다"며 "범행 수법 등을 고려하면 죄질도 좋지 않고 줄곧 책임만 회피할 뿐 피해 회복을 완료하거나 피해자로부터 용서받지 못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jyseo@fnnews.com 서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