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일반경제

"다 새 냉장고예요"…1년만에 망하는 자영업자들, 황학동 거리 '불황'이 쌓여간다 [낮은 곳의 기록자]

한승곤 기자
파이낸셜뉴스

[식당 폐업 물량 쌓이는 황학동 주방거리]
음식업 폐업률 15%... 소상공인 평균 8531만원 빚 안고 폐업
물건 보러 오는 사람은 줄어..."장사가 살아야 이 거리도 삽니다"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한 매장 앞에 폐업 식장에서 나온 의자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한 매장 앞에 폐업 식장에서 나온 의자들이 새로운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황학동 주방거리에는 문을 닫은 식당의 냉장고와 화구, 테이블이 쌓이고 있습니다. 들어오는 물건은 늘었지만 사가는 사람은 줄었습니다. 자영업 불황이 중고 주방거리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 살펴봤습니다.<편집자주>

[파이낸셜뉴스] "요즘 들어오는 물건은 낡아서 나온 게 아니라, 장사가 안 돼서 나온 게 많아요."

9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에서 만난 한 중고 주방기기 상인은 가게 앞 업소용 냉장고를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다. 골목에는 스테인리스 작업대와 싱크대, 식탁, 의자가 나와 있었다. 일부 테이블 냉장고에는 아직 비닐이 붙어 있었고, 사용 흔적이 적은 제품도 보였다.

주방거리는 식당 창업과 폐업의 물건이 동시에 모이는 곳이다. 새로 가게를 여는 사람은 냉장고와 화구, 작업대, 그릇을 보러 오고, 문을 닫는 사람은 쓰던 집기를 처분하러 온다. 최근 이 거리에서 상인들이 먼저 꺼낸 말은 "창업 문의가 줄었다"는 것이었다.

물건 들어오는데, 새 주인은 줄어

상인들은 물건이 끊기지 않는다고 했다. 카페에서 쓰던 의자, 분식집 조리대, 고깃집 불판, 배달전문점 냉장고가 섞여 들어온다. 오래 써서 수명이 다한 제품만 있는 것도 아니다. 1-2년 쓰고 나온 물건, 매장 이전이나 폐업 과정에서 한꺼번에 정리된 물건도 적지 않다.

한 상인은 "예전에는 폐업 물건이 들어오면 창업하려는 사람이 바로 보러 왔다"며 "지금은 들어오는 속도에 비해 나가는 속도가 느리다"고 말했다. 그는 "냉장고 하나도 그냥 받아오는 게 아니다. 가져오고, 고치고, 닦고, 보관해야 한다"며 "안 팔리면 그게 전부 비용"이라고 했다.

중고 주방기기는 폐업한 가게에서 사들인 뒤 다시 창업자에게 넘겨야 돈이 돈다. 하지만 창업 상담이 줄면 재고는 창고와 가게 앞에 남는다. 폐업한 업주는 가격을 더 받고 싶어 하고, 사려는 사람은 초기 비용을 줄이려 한다. 중간에서 매입가와 판매가를 맞추는 상인들도 부담을 안는다.

이런 가운데 여전히 창업 준비를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날 만난 한 40대 예비 창업자는 냉장고 크기에 관심을 보였다. 그는 "새 제품은 부담돼서 중고부터 보고 있다"며 "(창업) 시작하는데 냉장고 등 장비값을 크게 쓰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예전처럼 여러 품목을 한꺼번에 계약하는 손님은 줄었다고 말했다.

사업 부진·수익성 악화…"폐업합니다"

9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한 중고 주방기기 매장에 업소용 냉장고와 조리기구가 빼곡히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9일 서울 중구 황학동 주방거리의 한 중고 주방기기 매장에 업소용 냉장고와 조리기구가 빼곡히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황학동의 체감은 최근 폐업 통계와도 맞물린다. 중소벤처기업부가 지난 6월 발표한 '폐업자 통계분석 및 폐업 소상공인 실태조사'에 따르면 2025년 폐업 사업자는 97만6000개였다. 전년 100만8000개보다 3만2000개 줄었고, 폐업률은 8.64%로 집계됐다.

전체 폐업 사업자 수는 줄었지만 소상공인이 많이 몰린 업종의 부담은 컸다. 제조업, 도매업, 소매업, 음식업, 숙박업, 서비스업 등 소상공인 주요 6대 업종의 폐업 사업자는 75만1000개였다. 폐업률은 11.08%로 전체 평균을 웃돌았다.

업종별로 보면 음식업 폐업률은 15.14%였다. 소매업 15.40%에 이어 높은 수준이다. 식당 냉장고와 작업대, 불판, 싱크대, 그릇이 황학동으로 계속 들어오는 배경이다.

폐업 이유도 매출 부진에 집중됐다. 같은 조사에서 2025년 전체 폐업 사유 중 '사업부진' 비중은 50.4%였다. 소상공인 주요 6대 업종에서는 사업부진 비중이 55.7%까지 올라갔다. 최근 1년 안에 폐업한 소상공인 1500명을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는 70.9%가 폐업을 결심한 이유로 '수익성 악화·매출 부진'을 꼽았다.

폐업해도 끝나지 않는 빚

한 매장 앞에 업소용 조리대와 화구가 줄지어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한 매장 앞에 업소용 조리대와 화구가 줄지어 놓여 있다. 사진=한승곤 기자

폐업은 가게 문을 닫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철거와 원상복구, 남은 임대료, 대출 상환, 재고 처분이 뒤따른다. 중기부 조사에서 폐업 소상공인 68.5%는 폐업을 결심할 당시 부채가 있었다. 평균 부채 금액은 8531만원이었다. 평균 폐업 비용은 1286만원으로 집계됐다.

주방거리의 재고는 자영업 경기를 먼저 보여준다. 중고 물건이 많아지면 겉으로는 물건이 풍성해 보이지만, 그만큼 문을 닫은 가게가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들어오는 물건과 나가는 물건의 균형이 맞아야 거리도 버틴다.

결국 황학동으로 넘어오는 집기에는 이런 사정이 있다. 폐업한 업주는 냉장고와 화구, 테이블을 팔아 철거비나 밀린 비용을 일부라도 메우려 한다. 중고상은 다시 팔 수 있을 물건인지 따져본다. 상태가 좋아도 수요가 약하면 매입이 쉽지 않다.

50대 상인은 "폐업하는 사장님들도 급하니까 한 번에 다 빼달라고 한다"며 "그런데 우리도 팔릴 만한 것만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좋은 물건이라고 다 팔리는 건 아니다. 창업하려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장사가 다시 살아야 여기도 산다"며 "물건이 많이 들어오는 게 꼭 좋은 일은 아니다"고 말했다.

진진한 삶의 이야기를 활자로 기록합니다. 투박하더라도 현장에서 주워 담은 말들을 그대로 담아냅니다. 골목과 시장, 누군가의 일터에서, 우리가 지나쳐온 평범한 하루의 기록이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낮은 곳의 기록자]를 편하게 받아보시려면, 기자페이지를 구독해주세요

hsg@fnnews.com 한승곤 기자


#황학동 #주방 #폐업 #자영업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기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