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

"아이돌이 집 사서 화난 게 아니에요"…대출 막히고 부동산이 만든 '新계층 사다리'

서윤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22억원대 '로또 청약'도 계약금·잔금 낼 현금 있어야
'현금만 통하는 부동산'에 청년층 분노 넘어 박탈감
내 집 마련 좌우하는 건 소득·상환능력보다 보유 자산
전문가들 "실수요자 장기대출에 공급 확대 병행 해야"

지난 12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지역의 모습. /사진=뉴시스
지난 12일 서울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밀집지역의 모습. /사진=뉴시스

[파이낸셜뉴스] 그룹 아이브 멤버 안유진이 서울 서초구 방배동 '디에이치 방배' 일반분양에 당첨된 사실이 알려진 뒤 온라인에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청년층의 자조섞인 반응이 올라왔다.

상당수 청년이 문제 삼은 건 비슷한 또래의 인기 연예인이 고가 아파트를 마련했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청약 기회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지만, 대출 문턱이 높아진 상황에서 결국 계약금과 잔금을 현금으로 동원할 수 있는 사람만 당첨의 과실을 누릴 수 있다는 구조에 분노의 초점이 맞춰졌다.

부동산과 직장인 커뮤니티에는 "안유진이 아니라 청약제도가 문제"라거나 "현금 없는 청년은 당첨돼도 계약할 수 없다", "분양가상한제가 현금 부자에게 시세차익을 몰아주는 제도로 변했다"는 등 부정적 반응이 이어졌다.

14일 부동산 전문가들은 대통령 주재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를 앞두고 청년 세대를 위한 별도의 부동산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한 목소리를 냈다.

당첨돼도 수억원 계약금…'현금 로또'된 청약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형성한 인포그래픽. /사진=챗GPT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해 AI로 형성한 인포그래픽. /사진=챗GPT

디에이치 방배는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방배5구역 재건축 단지다. 2024년 분양 당시 전용면적 84㎡ 최고 분양가는 22억4300만원이었다. 같은 면적이 지난 4월 36억9295만원에 거래돼 분양가와 실거래가격 사이에 14억원이 넘는 격차가 생겼고, 시장 호가는 40억원 안팎까지 형성된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청약 당첨이 '로또 당첨'을 의미하는 건 아니라는 의견이 나왔다. 분양가의 20%를 계약금으로 낸다고 가정하면 전용 84㎡는 계약 단계에서만 약 4억5000만원이 필요하다. 이후 중도금 이자와 잔금까지 감당하려면 상당한 자금 동원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대출 한도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자산이 부족한 무주택 청년은 청약에 당첨된다고 해도 계약을 포기할 가능성이 커지는데 반해 충분한 현금을 보유한 당첨자는 계약금부터 잔금까지 모두 감당하면서 분양가는 물론 시세 차익까지 고스란히 자산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청년층의 박탈감이 안유진 개인보다 제도를 향하는 이유다. 추첨제는 청약 가점이 낮은 청년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확대됐지만, 고가 분양시장에서는 추첨으로 당첨자를 가려도 최종적으로는 현금 보유 여부가 입주자를 다시 선별하는 셈이다.

"며칠만 늦었으면 집 못 살 뻔했다"

현금이 내 집 마련의 성패를 가르는 현상은 강남권 '로또 청약'에만 머물지 않았다.

최근 서울 노원구의 구축 아파트를 매입한 직장인 A씨는 매매를 마친 뒤 가슴을 쓸어내렸다. 대출을 최대한 활용해 잔금을 마련하고 며칠 뒤 은행들이 주택구입자금 대출 한도를 대폭 낮춘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서울 도봉구에서 전세로 살던 B씨는 집주인이 주택을 매도하기로 하면서 아파트 구입을 고민했지만, 최근 은행권 대출 문턱이 높아지면서 포기했다. 그리고 오른 전셋값을 감당하며 임차주택을 찾아야 했다.

KB국민은행은 지난 10일부터 별도 안내 시까지 주택구입자금 대출 최대한도를 3억원으로 제한했다. 수도권과 규제지역에서 15억원 이하 주택에 적용되던 최대 6억원 한도를 절반으로 줄였고, 별도의 상한이 없었던 비규제지역에도 3억원 한도를 적용했다.

가령 수도권 규제지역에서 12억원짜리 주택을 사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에 따라 국민은행에서 4억8000만원을 빌릴 수 있었던 매수자는 10일 이후엔 최대 3억원만 받을 수 있게 됐다.

하나은행도 같은 날부터 9월 실행 예정인 주택담보대출·전세자금대출에 대해 대출모집인을 통한 접수를 중단했고 신한은행은 8일 대출모집인 접수 채널을 닫았다.

현금이 만든 '부동산 계층 사다리' 제거할 방법은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이재명 대통령이 14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자산은 적지만 안정적인 근로소득과 상환 능력을 가진 무주택 실수요자에게 일률적인 대출 한도 축소를 적용하는 건 무리가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김학렬 스마트튜브 부동산조사연구소장은 "지금은 청년 뿐 아니라 집이 있는 사람도, 없는 사람도 모두 화가 나 있는 상황"이라며 "예전에는 삼성전자나 SK하이닉스 같은 대기업에 다니면서 일정 수준의 종잣돈이 있으면 서울에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소득이 충분해도 제한된 대출 때문에 진입 자체가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집이 없는 청년들은 전월세 시장에서도 물량 부족을 겪고, 대출 규제로 내 집 마련도 어려워졌다"며 "내 집도 못 사고 임차도 어려운 구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청년층을 위한 해법으로 생애 최초 주택 구입 지원은 유지하면서 장기 모기지를 확대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 소장은 "청년들에게는 대출을 줄이는 것이 아니라 상환 기간을 길게 가져가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미국처럼 40~50년 장기 모기지를 활성화하면 월 상환 부담이 크게 줄어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도 넓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손재영 건국대 부동산학과 명예교수는 대출 규제와 분양가상한제가 상반된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손 교수는 "정부는 집값을 잡기 위해 대출을 억제하면서도 분양가상한제를 통해 일부 당첨자에게 로또와 같은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며 "현금을 가진 사람에게만 막대한 차익이 돌아가는 구조가 어떤 공익적 효과를 갖는지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대출을 무조건 풀거나 막는 양자택일 대신 상환 능력과 실수요 여부에 따라 부동산 정책을 정교하게 적용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김 소장은 "청년층의 대출 한도를 일률적으로 줄이기보다 40∼50년 장기 모기지를 활용해 월 원리금 부담을 낮추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생애 최초 구입자와 무주택 실수요자에게는 갚을 기회를 주는 금융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근본적인 해법으로 주택 공급 확대를 꼽았다. 재건축·재개발에 신속하게 이뤄지도록 절차를 단축하고 1970년대 지정된 그린벨트 지역을 활용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동시에 서울 도심과 수도권 외곽이 빠르게 연결될 수 있도록 광역교통망을 확충해야 한다고도 했다.

정부는 부동산 종합대책 발표를 앞두고 공급·금융·세제 분야에 대한 온라인 의견 수렴에 들어갔다. 오는 23일에는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하는 부동산 국민 대토론회를 열고 사전 토론회와 온라인에서 접수한 의견을 정책 검토에 반영할 예정이다.

y27k@fnnews.com 서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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