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부터 주식까지…한국은 언제부터 '경우의 수'에 이렇게 집착했을까
[파이낸셜뉴스] 대한민국 국민은 4년 만에 또다시 불편한 '경우의 수'를 따졌다.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얘기다. 4년마다 찾아오던 수학시간이 어느새 일상이 됐다. 주식 변동성을 주도하는 SK하이닉스를 통해서다.
축구와 주식에 사람들이 '경우의 수'라는 수학적 공식을 들이댄 이유는 무엇일까.
김윤태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15일 파이낸셜뉴스와의 통화에서 "인간에게는 인지심리학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나면 그 원인을 알고 싶어 하는 본능적 욕구가 있다"는 말로 설명했다.
월드컵 조별리그가 한창이던 지난 6월 온라인 커뮤니티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는 때 아닌 빙고 열기에 휩싸였다. 이른바 '32강 경우의 수 빙고판'으로 불린 이 빙고에는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전에서 패한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이 32강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총망라돼 있었다.
9개의 조건 중 3개 이상이 맞아야 빙고가 완성될 수 있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빙고는 단 1개만 적중했고 대표팀은 32강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4년 만에 찾아온 한국의 월드컵이 허망하게 끝나는 순간이었다.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우리 국민은 또 다른 경우의 수로 빙고판을 만들어 한국 없는 월드컵을 즐겼다. 한국의 32강 진출에 발목을 잡거나 도와주지 않은 국가들이 토너먼트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시자 이를 '역빙고판', '빙고의 저주'라 부르며 새로운 밈(Meme)으로 재생산했다.
32강 경우의 수에서 유일하게 한국을 도와줬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스페인이 15일(현지시간) 열린 4강전에서 프랑스를 2대 0으로 완파하며 결승에 오르자 사람들은 절묘한 우연에 환호하기도 했다.
흥미로운 건 '경우의 수 빙고판' 밈이 축구를 넘어 주식시장까지 침투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기술주 조정과 함께 SK하이닉스 주가가 폭락하자, 투자자들 사이에서 32강 빙고판을 그대로 패러디한 '하이닉스 300만 경우의 수' 빙고판이 급속도로 확산했다.
이 빙고판은 '실적 시즌 조합별 300만 재진출 시나리오'라는 부제가 붙었다. 다만 조건은 혹독했다. 월드컵 32강 진출에는 3개만 맞으면 됐지만, 하이닉스 빙고판은 '9가지 중 9개 전부 다 맞으면 하이닉스 300만 재진출'이라는 조건이 달렸다.
그리고 빙고판 안엔 글로벌 반도체 및 빅테크 기업들의 실적 조건이 나열됐다. 16일 TSMC 실적 발표에 '강한 감동 필요', 27일 구글 '투자지출(CAPEX) 증가+실적 개선+좋은 현금 흐름 필요', 29일 SK하이닉스와 씨게이트 동반 어닝 서프라이즈 등이다.
'경우의 수'라는 용어는 원래 수학·확률론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수 있는 가짓수를 세는 말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사람들에겐 4년마다 돌아오는 월드컵을 통해 익숙한 단어가 됐다. 1986년 멕시코 대회 때부터 언론은 대한민국 대표팀의 본선 혹은 16강 진출에 필요한 경우의 수를 따져 보도했고 우리 국민은 이를 익숙한 방식으로 소비했다. 이후 1994년 미국 월드컵, 2002년 한일 월드컵을 거치며 셈법은 더욱 정교해졌다.
애초에 강자에게는 불필요한 개념이었다. 실력으로 확실하게 이길 수 없는 약팀들이 변수를 계산하며 경우의 수를 따졌다. 말 그대로 불확실성 때문에 확산된 개념이었다.
SK하이닉스 주식에 투자한 국민들의 시선도 다르지 않았다. 시장에서 개인투자자들은 외국인과 기관의 움직임에 휘둘리는 상대적 '약팀'이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주식도 스포츠 경기처럼 불확실한 미래를 예측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경우의 수를 활용할 수 있다"면서 "여기에 타인의 반응과 공감을 바라는 사회적 욕구, 하나의 놀이처럼 경우의 수를 즐기는 문화적 욕구가 결합돼 온라인에서 문화적인 현상으로 소비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bng@fnnews.com 김희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