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반도체 급락…월가 "거품론" vs "저가 매수"
【파이낸셜뉴스 뉴욕=이병철 특파원】 AI 열풍을 이끌던 글로벌 반도체주가 7월 들어 급락하면서 월가가 두 갈래로 갈리고 있다. 한쪽에서는 AI 투자의 경제성과 지속 가능성을 시장이 다시 평가하기 시작했다며 추가 조정을 경고하는 반면, 다른 쪽에서는 AI 수요는 여전히 견조하다며 장기 투자자에게는 오히려 '매수 기회'라고 맞서고 있다. AI 인프라 투자에 상대적으로 신중했던 애플이 장중 시가총액 5조달러를 처음 돌파하며 안전자산으로 부상한 것도 시장이 AI 투자 규모보다 현금창출력과 투자 효율성을 중시하기 시작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 나온다.
AI 반도체 랠리를 이끌던 주요 반도체 주가는 28일(현지시간) 뉴욕증시에서도 큰 폭으로 하락했다. 마이크론이 8.9% 급락한 것을 비롯해 AMD(-8.2%), 인텔(-5.9%), 퀄컴(-4.2%), 마벨 테크놀로지(-7.8%)도 낙폭이 컸다. SK하이닉스 ADR도 8.98% 하락하며 3거래일 연속 급락세를 이어갔다. SK하이닉스 ADR는 공모가(149달러) 대비 약 13% 하락한 상태다.
반도체 상장지수펀드(ETF)도 고전했다.
라운드힐 메모리 ETF(DRAM)는 4.66달러(8.89%) 급락한 47.77달러, 아이셰어즈 반도체 ETF(SOXX)는 24.77달러(4.80%) 내린 491.46달러로 마감했다. 미국 상장 30개 주요 반도체 종목으로 구성된 필라델피아 반도체지수(SOX)도 이날 4.5% 급락하며 4거래일 연속 하락했다. SOX는 7월 말 현재 6월 말 고점 대비 24.5% 하락하며 약세장에 진입했다.
이번 조정의 출발점은 알파벳이다. 알파벳이 AI 인프라 투자를 위해 자본지출(CapEx)을 대폭 늘리고 잉여현금흐름(FCF)이 악화된 이후 시장은 AI 성장성보다 투자비용과 자금조달 부담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바클레이스의 미국 주식전략 책임자인 베누 크리슈나는 파이낸셜타임스(FT)에 "자금조달 불확실성과 자본지출 증가, 빅테크 기업의 잉여현금흐름에 대한 우려가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고 말했다.
골드만삭스에 따르면 세계 4대 하이퍼스케일러인 알파벳, 아마존, 메타, 마이크로소프트는 2030년까지 총 5조3000억달러를 AI 인프라 구축과 데이터센터 등에 투자할 것으로 분석했다.
이 때문에 비관적인 시각도 나온다.
자산운용사 GAM의 최고경영자(CEO) 알베르트 사포르타는 FT에 "AI 자본지출 열풍도 결국 과거의 모든 투자 과열과 마찬가지로 붕괴로 끝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며 "미국 빅테크의 AI 투자 계획을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재평가하기 시작했다는 신호"라고 분석했다.
실제 이날 AI 자본지출에 상대적으로 신중했던 애플은 안전자산으로 부각되며 장중 시가총액 5조달러를 처음 돌파했다. 시장에서는 애플의 연간 자본지출이 약 100억~120억달러 수준에 그쳐 알파벳(최대 2050억달러), 메타(1450억달러 이상), 마이크로소프트(1900억달러 안팎), 아마존(2000억달러 안팎 전망)보다 크게 낮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다. AI 경쟁의 승부가 투자 규모보다 현금창출력과 투자 효율성을 중심으로 재평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반면 이번 조정을 장기적인 매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적지 않다.
베어드의 로스 메이필드 투자전략가는 CNBC에 "정말로 광범위한 순환매가 일어나고 있다"며 "6∼8주째 이어지는 이러한 모멘텀 되돌림 현상은 펀더멘털(기초여건)의 변화보다는 시장의 기술적 요인과 훨씬 더 관련이 깊다"고 분석했다. 이어 "AI 수요 자체가 꺾였다는 증거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스테이트스트리트 글로벌어드바이저스의 주식리서치 책임자인 마리야 베이트마네는 "지금까지 실적을 발표한 기업들을 보면 AI 수요는 여전히 매우 강하다"며 "우리에게는 이번 조정이 오히려 저가 매수(Buy the Dip) 기회"라고 평가했다.
펀드스트랫의 톰 리는 마켓워치에 이번 반도체주 조정을 닷컴버블 당시 시스코가 장기 상승 과정에서 겪었던 자연스러운 조정에 빗대며, AI 성장 사이클이 꺾였다기보다 과도한 기대를 되돌리는 과정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최근 하락이 AI 수요 둔화보다는 기술적 조정의 성격이 강하다며 시장이 며칠 내 안정을 되찾을 것으로 전망했다.
[email protected] 이병철 특파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