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1800명 명부 받아 "조합장 해임하자"…전화 돌리다 '벌금 폭탄' [사건실화]
'사실확인용' 명부 쥐고 텔레마케터 포섭
공익 목적 주장했으나, 법원 판단은 유죄
"수단·방법 잘못됐고 목적 외 사용 부적절"
[파이낸셜뉴스] "조합을 상대로 문제점을 알리고 사실을 공유하려 했습니다."
재개발 조합의 비위 의혹을 제기하며 조합장을 해임하려 했던 조합원 A씨(61). 그러나 그가 "조합원들과 정보를 공유하겠다"며 공식 절차를 거쳐 교부받은 조합원 명부는 곧 텔레마케터들의 손에 올려졌고, 결국 법원의 처벌을 받는 범죄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A씨는 조합 명부를 외부인에게 건네 전화를 돌리게 한 자신의 행위가 "조합과 조합원을 위한 공익적 행동"이었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엄연한 범죄로 보고 벌금형을 선고했다.
서울의 한 재개발 사업장 조합원인 A씨는 2023년 12월 조합을 상대로 '사실 확인과 조합원 공유'를 사용 목적으로 명기해 조합원 명부 열람·복사를 신청했다. 약 한 달 뒤인 2024년 1월, 그는 조합원 약 1800명의 성명과 주소, 연락처가 담긴 명부를 교부받았다. 교부 당시 A씨는 "목적 외 용도로 활용하지 않고 무단 복사와 제3자 제공을 엄격히 금지한다"는 보안 각서에 직접 서명하고 손도장까지 찍었다.
그러나 A씨의 행보는 각서의 내용과 정반대였다. A씨는 2024년 10월 자신이 사비로 고용한 텔레마케터 3명에게 복사한 조합원 명부를 넘겼다. 이후 약 2주 동안 텔레마케터들과 함께 다수의 조합원에게 일제히 전화를 걸어 "현 조합에 문제가 많으니 조합장을 해임하자", "조합 사업비가 늘어나 분담금을 엄청나게 떠안게 된다"며 적극적인 해임 선동에 나섰다.
A씨 측은 "텔레마케터들이 근무 장소 밖으로 명부를 유출할 수 없도록 통제했으므로 제3자 제공으로 볼 수 없다"면서 "이 모든 행동은 조합과 조합원 전체의 이익을 위한 공익적 목적이었으므로 정당행위에 해당해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강하게 주장했다.
그러나 법원은 A씨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동기에 정당성이 일부 인정된다 하더라도 수단과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긴급성, 보충성 등 정당행위로 인정받기 위한 핵심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이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정당행위 성립을 위한 5가지 요건 중 단 하나라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위법성이 조각되지 않는다.
재판부는 "개인정보보호법은 부정한 목적이 없더라도 개인정보의 목적 외 사용 금지 의무를 위반하여 이용하거나 제3자에게 제공하면 그 자체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며 "목적이나 동기 자체에 정당하다고 볼 여지가 일부 있다고 하더라도, 행위의 수단이나 방법의 상당성, 법익 균형성, 보충성 등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피고인이 교부 신청 시 작성한 '사실 확인과 공유'의 범주를 넘어, 텔레마케터를 동원해 적극적으로 본인의 의견을 전달하고 조합원들을 설득하려 한 점, 신청 당시 기재했던 '소식지 발송' 등 정당한 방식을 쓰지 않고 무단으로 전화를 돌려 이의를 제기하는 조합원들이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할 때 죄책이 인정된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email protected] 서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