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명하복 문화와 '스폰서 생태계'…비위 반복되는 경찰의 그늘
버닝썬 대책 무색해진 강남서 유착 비위
폐쇄적 계급 문화로 내부 견제는 마비
공고한 스폰서 관계가 키운 부패 생태계
수사권 오남용에 피해자 권리 완전 박탈
독립적 감시 체계 없인 쇄신책도 '공염불'
[파이낸셜뉴스] 서울 강남경찰서의 전 수사팀장이 뇌물과 향응을 받고 사건을 무마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등 경찰관들의 비위가 반복되면서 경찰 특유의 폐쇄적 조직문화와 '스폰서 생태계'가 또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른바 '클럽 버닝썬 사건' 이후 경찰이 대대적인 쇄신책을 내놨지만, 악습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는 지적이 거세다.
23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서울남부지검 금융·증권범죄합동수사부(신동환 부장검사)는 유명 인플루언서 양정원씨의 남편으로부터 뇌물과 향응을 받고 양씨의 사기 사건 수사를 무마한 혐의를 받는 전 강남서 수사팀장 송모 경감을 뇌물수수·알선뇌물수수·직권남용·공무상비밀누설 등 혐의로 구속 기소했다. 청탁을 중개하고 접대에 동석한 경찰청 소속 이모 경정은 뇌물수수·알선뇌물수수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앞서 양씨가 광고 모델을 하던 필라테스 학원 가맹점주들은 지난 2024년 7월 양씨와 필라테스 학원 본사 관계자들을 사기와 가맹사업법 위반 혐의로 고소한 바 있다. 수사기관의 핵심 간부들이 사건을 은폐하고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정황이 다시금 드러난 것이다.
경찰의 비리를 끊어내기 위한 고강도 대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강남서는 지난 2019년 버닝썬 사건 이후 경찰청이 발표한 '유착 비리 근절 종합 대책'에 따라 '제1호 특별인사관리구역'으로 지정됐다. 특별인사관리구역으로 지정되면 최대 5년간 해당 경찰서 인력의 30~70%가 교체되고, 비위 전력자 발령 제한과 징계자 즉시 전출 등 강도 높은 인사 조치가 적용된다.
여기에 더해 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부당한 청탁과 수사 개입을 막고자 '직원 간 사건 문의 금지 제도'까지 도입됐다. 그러나 이 같은 겹겹의 방지책에도 불구하고 해당 제도를 통한 징계 처분이 시행 후 단 3건에 그치는 등 이번 사태를 막지 못했다. 경찰 조직의 자정 기능이 사실상 무력화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이 같은 악습이 되풀이되는 근본 원인으로는 경찰 특유의 엄격한 계급제와 상명하복식 조직문화가 지목된다. 아무리 대규모 인적 쇄신과 감시망을 구축하더라도, 조직 내부에서 상급자의 지시가 사실상 법에 준하는 권위를 갖는 이상 내부 견제 장치는 공염불에 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지침 위반 시 나타나는 불이익보다 선배나 상급자의 지시를 어겼을 때 돌아올 인사상 불이익이 더 크다 보니 대책이 실효성을 거두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송 경감은 후배 수사관들에게 직권을 행사하며 사건 종결을 독촉했고, 이 경정은 "송 경감이 고참 팀장이라 영향력이 크다"며 양씨의 남편 이모씨에게 영향력을 과시했다. 해당 사건에 연루된 담당 경찰관들 역시 검찰 조사에서 "팀장의 지시를 거스르기 힘든 경찰 조직 구조상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에 유흥업소와의 소통 채널이 사실상 '스폰서 관계'로 고착화된 점도 부패를 키우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거론된다. 일부 경찰관들이 유흥업소 업주 등과 가격 할인 등 편의를 주고받으며 사적 친분을 맺고, 이것이 사건 청탁이나 수사 정보 유출의 통로로 작용하는 부패 생태계가 끊이지 않는다는 분석이다. 이번 사건에서도 피고인들은 유흥업소에서 정상가의 절반 수준으로 수백만원 상당의 룸살롱 접대를 받으며 친분을 이어온 것으로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났다. 비단 이번 사례뿐만 아니라, 특정 업소를 자주 찾는 경찰 단골들에게 유흥업소 업주가 기꺼이 가격을 깎아주며 '관리'에 나서는 형태의 기형적 관행이 만연해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문제는 이 같은 수사 유착의 폐해가 무고한 국민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경찰은 국민의 신체·재산권과 직결된 수사권을 행사하는 만큼, 부패가 일으키는 파장이 일반 행정 비위와 차원이 다르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 송 경감은 후배 수사관에게 지시해 전산망에 피의자로 등록돼 있던 양씨를 참고인 신분으로 임의 전환하도록 했고, 결국 양씨는 수사 대상에서 완전히 제외됐다.
이로 인해 피해자는 경찰의 불송치 결정에 대해 법적으로 이의를 제기할 권리조차 박탈당했다. 현행 형사소송법상 경찰의 피의자 불송치 결정에는 이의를 제기할 수 있지만, 참고인은 수사 대상이 아니어서 불송치 결정 대상 자체가 되지 않아 구제 절차가 사실상 차단되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의 사적 유착이 범죄를 방조하는 결과로 이어지면서, 형사사법 체계 전반에 대한 국민적 신뢰마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전문가들은 실질적인 조직문화 개혁과 강력한 외부 견제 장치 마련이 필수적이라고 조언한다. 단순히 인사를 교체하는 수준의 '물갈이' 조치만으로는 상명하복식 위계와 얽히고설킨 내부 온정주의라는 폐단을 허물기 어려워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지휘부나 조직 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신속·공정하게 수사 외압과 유착을 조사할 수 있는 독립적인 외부 감시 기구 도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email protected] 서지윤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