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가출이겠지" 했다가…연 1500명 '성인 실종' 치안 사각지대

서지윤 기자
파이낸셜뉴스

제주 경찰 허위 종결 논란…관리 시스템 무용지물
CCTV 118대 파기 방치…뒷북 수색으로 미궁 키워
"대부분 돌아온다" 관성에 묶여 초동 골든타임 상실
전문가들 한 목소리 "관성 버리고 법·시스템 고쳐야"

장미란씨 등 실종자 허위 종결 사건으로 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는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부모 경장이 지난 24일 오전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제주지법에서 열리는 체포적부심에 출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장미란씨 등 실종자 허위 종결 사건으로 직무유기 등 혐의를 받는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부모 경장이 지난 24일 오전 제주동부경찰서 유치장에서 제주지법에서 열리는 체포적부심에 출석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뉴시스

[파이낸셜뉴스] 제주에서 발생한 성인 실종 사건을 담당 경찰관이 임의로 종결하고 전산망에서 무단 삭제한 사실이 확인되며 실종 관리 체계의 허술함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연락이 닿았다"고 보고된 실종자가 시신으로 발견되는 사태가 반복되자 성인 실종을 둘러싼 치안 현장의 사각지대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25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경찰의 실종 업무 매뉴얼은 실종자를 직접 대면해 안전을 확인하는 것을 원칙으로 두고 있다. 그러나 일시적 연락 두절이나 가출을 포함한 모든 성인 실종자를 일일이 대면 수사하기엔 현장 여력에 한계가 있어 실제로는 영상통화나 가족 확인 등 '대면에 준하는 연락'만으로 사건을 종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문제는 연락 여부를 증명할 객관적 증빙 자료 등록조차 의무가 아니다 보니, 담당 경찰관이 마음만 먹으면 연락하지 않고도 사건을 조작·종결할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 제주서부경찰서 소속 부모 경장은 지난 5월과 7월 장미란씨(37)와 60대 남성 A씨의 실종 신고를 각각 접수한 뒤 "실종자와 연락이 닿았다"고 허위 보고를 올려 사건을 은폐·종결 처리한 혐의(직무유기·공전자기록 위작 및 행사·위계공무집행방해 등)를 받고 있다. 장씨로 추정되는 시신은 실종 104일 만에, A씨의 시신은 55일 만에 발견됐다.

이번 사태는 경찰의 내부 통제망이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실종 수사 진행 상황을 점검하는 내부 가이드라인이 명목상 존재했지만, 현장 수사관의 보고 내용을 검증할 이중 확인 절차는 비어 있었다. 담당자가 거짓 보고를 올려도 통화 내역이나 수사 기록을 대조·검증할 감시 기구가 없다 보니, 일선 경찰관 한 명의 독단적인 사건 처리가 아무런 제지 없이 전산망 무단 삭제로까지 이어진 것이다. 경찰은 지난해 3월 실종수사팀에 배치된 부 경장이 담당한 298건의 사건 전체로 수사를 확대하고, 추가 허위 종결 피해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있다.

25일 실종 104일 만에 장미란씨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한림읍 현장 인근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뉴스1
25일 실종 104일 만에 장미란씨의 시신이 발견된 제주시 한림읍 현장 인근에 폴리스라인이 쳐져 있다. 뉴스1

이 같은 악습의 배경에는 성인 실종 사건을 경시하는 경찰의 '소극적 업무 관성'이 작동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연간 7만건이 넘는 성인 실종 신고 중 98% 이상은 단순 연락 두절이나 자발적 가출로 처리돼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이처럼 높은 발견율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직 내에 "어차피 대부분 돌아온다"는 매너리즘을 학습시켰다. 연간 1500명 안팎의 성인이 실종 상태에서 끝내 시신으로 발견되는 엄연한 현실에도 불구하고, 통계적 착시에 빠져 고위험군을 초기에 가려낼 정교한 위험성 평가 시스템조차 구축하지 않은 채 성인 실종을 행정 소모성 업무로 취급했다는 질책이 쏟아지는 이유다.

여기에 성인 실종자를 바라보는 '법률과 제도의 공백'도 현장의 손발을 묶는 주요 요인 중 하나로 꼽힌다. '실종아동 등의 보호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경찰이 즉시 위치 추적이나 강제 수색에 나설 수 있는 대상은 18세 미만 아동과 지적장애인, 치매 환자로 한정된다. 성인은 개인정보 보호와 사생활의 자유, 자발적 잠적 가능성 등을 이유로 법적 대응 우선순위에서 밀려 '단순 가출인'으로 분류된다. 성인 실종법 발의가 수차례 이뤄졌지만 번번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면서 일선 경찰관이 적극적으로 초동 강제 수사에 나설 법적 근거가 없다는 한계가 지속되고 있다.

경찰의 소극적 대응과 수사 공백은 사건 규명의 골든타임을 놓치고 핵심 단서마저 소실시키는 치명적 결과로 이어졌다. 한동훈 무소속 의원이 장씨 사건과 관련해 제주도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실종지 주변 폐쇄회로(CC)TV 118대의 영상은 6월 중순경 이미 자동 파기돼 초동 동선 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경찰의 대응이 겉도는 사이, 장씨로 추정되는 시신은 숙소에서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야자수농장에서 심하게 부패한 상태로 발견됐다. 경찰의 무능한 대응으로 인해 실종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건의 미궁을 더 키우고, 유족에게 더 큰 고통을 안겼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전문가들은 일선 수사관 개인의 자의적 판단을 통제할 감시망 도입과 관련 법제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부 명예교수는 "사람의 생사가 걸린 사안을 경찰관 한 명의 판단으로 종결할 수 있는 구조는 지나친 재량권 남용"이라며 "개인의 일탈을 걸러낼 수 있도록 교차 검증 절차를 도입하고, 성인 실종이라도 위급성이 확인되면 즉각 긴급 조치에 나설 수 있도록 관계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email protected] 서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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