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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로] 월가가 키우는 AI

파이낸셜뉴스
김경민 국제부 차장
김경민 국제부 차장

인공지능(AI)은 무엇을 먹고 자랄까. 데이터와 반도체, 전기까지는 익숙하다. 그런데 요즘 AI가 무섭게 먹어치우는 것이 하나 더 있다. 돈이다. 세계 최고의 부자 기업들도 현금이 모자라 채권을 찍고 리스를 늘린다. 모건스탠리는 올해 세계 AI 관련 채권 발행액이 약 5700억달러(약 790조원)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AI 투자는 끝이 없어 보인다. 더 똑똑한 모델을 만들려면 더 큰 판을 깔아야 하고, 경쟁자가 앞서가면 다시 지갑을 열어야 한다. 한번 시작한 투자를 멈출 수 없다. AI는 어느새 소프트웨어의 얼굴을 한 장치산업이 됐다.

인터넷에는 차고의 신화가 있었다. 몇 명의 젊은이가 컴퓨터를 놓고 시작한 회사가 세상을 바꿨다. 하지만 AI에서는 좋은 아이디어만으로 승부하기 어렵다. 그래픽처리장치(GPU)와 데이터센터, 전력이 필요하다. AI가 발전할수록 자본의 문턱도 높아진다.

돈과 AI의 관계도 뒤집혔다. 지금까지 돈은 AI를 쫓았다. 엔비디아 실적에 증시가 출렁였고, AI 투자계획에 돈이 몰렸다. 이제는 금리와 채권시장도 AI의 속도를 좌우한다. 이자가 비싸지면 투자도 느려진다. 기술에는 꿈이 있지만 빚에는 만기가 있다.

미국에는 엔비디아와 오픈AI, 구글뿐 아니라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기술에 거액을 넣고, 실패해도 다시 돈을 댈 자본시장이 있다. AI 시대에는 성공할 돈만큼 '실패할 돈'도 중요하다. 실리콘밸리만 보고 월가를 빼놓으면 미국 AI 경쟁력의 절반만 보는 셈이다.

한국 AI에도 어쩌면 부족한 것은 '기다리는 돈'이다. 우리의 관심은 GPU와 데이터센터 확보, 정부 지원 규모에 쏠려 있다. 그러나 언제 수익을 낼지 모르는 AI에는 돈의 크기만큼 인내심이 중요하다. 실패해도 다시 투자할 수 있는가. 실패를 견디는 자본도 기술이다.

빚이 늘었다고 AI가 거품이라는 뜻은 아니다. 닷컴버블 때 기업과 투자자는 사라졌지만 광케이블은 남았다. AI가 세상을 바꾼다는 것과 지금 들어간 돈이 모두 돌아온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기술은 성공하고 투자자는 실패할 수 있다.

우리는 AI 시대를 두뇌의 경쟁이라고 불러왔다. 이제는 그 두뇌가 돈을 벌 때까지 버틸 수 있느냐도 중요하다. 자본이 좋은 기술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살아남을 시간은 사줄 수 있다. AI는 실리콘밸리에서 태어나지만, 그 수명을 결정하는 곳은 월가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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