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학·과학 과학

왜 애교 부리면 목소리가 귀여워질까… 과학적 단서 찾았다 [언박싱 연구실]

김만기 기자
파이낸셜뉴스

<60> 덕성여대 국어국문학전공 김지은 교수팀
취리히대 연구팀과 함께 애교 말투 음향 특징 분석
애교 말투서 F1 약 28Hz 높아져
어린아이의 짧은 성도와 비슷한 음향 특성

택배 상자를 열 때의 설렘, 기억하시나요? 대학 연구실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 삶을 바꿀 놀라운 발견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다만 '논문'이라는 두꺼운 포장지에 쌓여 있을 뿐이죠. '언박싱 연구실'에서는 복잡한 수식과 이론 대신, 여러분이 알고 싶은 알맹이만 쏙 골라 담겠습니다. 자, 그럼 상자를 열어볼까요? 오늘 언박싱할 주인공은 바로 이 연구입니다.

성인 여성이 마이크로 소리를 내자 음성 분석 화면 속 주파수 변화와 함께 어린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상자 밖으로 펼쳐지고 있다. 성인이 애교 말투를 쓸 때 어린아이의 짧은 소리 통로에서 나오는 고유한 울림을 흉내 내는 음향적 원리를 시각화한 이미지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성인 여성이 마이크로 소리를 내자 음성 분석 화면 속 주파수 변화와 함께 어린아이의 귀여운 모습이 상자 밖으로 펼쳐지고 있다. 성인이 애교 말투를 쓸 때 어린아이의 짧은 소리 통로에서 나오는 고유한 울림을 흉내 내는 음향적 원리를 시각화한 이미지다. (그래픽=제미나이 생성)

[파이낸셜뉴스] 성인이 애교 말투를 쓰면 목과 입 안에서 만들어지는 모음의 울림 주파수(F1)가 일반 말투보다 약 28Hz 높게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연구팀은 이런 변화가 성인이 어린아이의 짧은 소리 통로(성도)에서 나타나는 소리의 특징을 흉내 내는 방식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덕성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전공 김지은 교수와 스위스 취리히대학교 연구팀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공동 연구 논문을 음향학 분야 국제학술지 'JASA Express Letters'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는 애교 말투가 단순히 목소리를 높이거나 억양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모음을 발음할 때 만들어지는 소리에도 일정한 변화가 나타난다는 점에 주목했다.

■한국의 애교에서 다른 나라의 친밀한 말투까지

이번 연구는 한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애교 말투를 살펴본 것이지만, 다른 나라에서 나타나는 친밀한 말투와 비교해볼 수 있는 출발점이 될 수 있다.

중국어에는 가까운 사람에게 귀엽게 말하는 '싸자오(撒娇)'가 있고, 일본어에는 '부릿코(ぶりっ子)'라는 말투가 있다. 영어와 독일어에서도 가까운 사람에게 아기처럼 말하는 경우가 있다. 연구팀은 앞으로 이런 말투가 언어와 문화에 따라 어떤 소리의 특징을 보이는지 비교할 계획이다.

애교를 사용할 때 실제로 목소리가 지나가는 통로인 성도의 길이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도 추가로 살펴볼 예정이다. 또 애교 말투를 들은 사람이 상대방에게 친밀감을 느끼거나 보호하려는 반응을 보이는지도 연구할 계획이다.

■같은 사람이 같은 문장을 애교·일반 말투로 읽었다

연구팀은 서울말을 사용하는 25~31세 성인 12명을 대상으로 실험했다. 남성과 여성은 각각 6명이었다.

참가자들은 방음된 실험실에서 광고 형식으로 만든 29개 문장을 읽었다. 먼저 애교 말투로 읽은 뒤 같은 문장을 평범한 말투로 읽었다. 같은 사람이 같은 문장을 두 가지 방식으로 읽게 해 사람마다 다른 목소리나 문장 내용이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줄였다.

연구팀은 두 말투에서 모음의 소리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분석했다. 사람이 '아', '이', '우' 같은 모음을 발음하면 목과 입 안을 지나면서 특유의 울림이 만들어진다. 연구팀은 이런 소리의 특징을 숫자로 나타낸 여러 값 가운데 'F1'이라는 수치를 비교했다.

■애교 말투 쓰자 소리의 특징 약 28Hz 높아져

분석 결과 애교 말투에서는 일반 말투보다 F1이 약 28Hz 높게 나타났다. 전체 모음을 대상으로 분석했을 때 이런 변화가 통계적으로 확인됐으며, 일부 모음에서는 차이가 더 크게 나타났다.

F1은 사람이 모음을 발음할 때 목과 입 안의 구조에 따라 달라지는 소리의 수치다. 어린아이는 성인보다 목에서 입으로 이어지는 통로인 성도가 짧기 때문에 F1이 상대적으로 높게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연구팀은 성인이 애교를 쓸 때 F1이 높아지는 것도 이런 어린아이의 소리 특성을 흉내 내는 과정일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다만 이번 연구는 소리의 변화만 분석했기 때문에 실제로 성도가 어떻게 변했는지, 혀나 다른 발성기관이 어떻게 움직였는지는 확인하지 않았다. 이런 실제 발성 과정은 앞으로 추가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공동 연구자인 취리히대학교 폴커 델보 교수는 "동물의 경우 몸집이 더 커 보이게 하기 위해 성도를 길게 만드는 전략을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번 연구 결과는 인간이 그와 반대되는 전략을 사용할 가능성을 보여준다"며, "애교 말투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더 작고 어린아이처럼 들리게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mail protected] 김만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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