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연끼리 작정하고 보증금 꿀꺽… 막아야 할 중개사는 거들어
500세대 전세사기 의혹 추적 (上)
건축·시공에 준공 후 임대·관리까지
여러 건물에서 같은 업체·인물 등장
단순히 자금난으로 볼 수 없는 정황
조직·계획적 가담 '기획 사기' 패턴
19채의 전세보증금 미반환 사태를 관통하는 특징은 건물을 짓고 임차인을 모집하는 과정에서 같은 업체와 인물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피해자들은 시행사 관계인과 임대인 간 자금거래, 중개 과정까지 종합하면 단순히 여러 임대인이 동시에 자금난을 겪은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의심하고 있다. 조직적이고 계획적인 전세사기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8일 파이낸셜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우선 준공 이후 임대관리 과정에서는 임대관리업체 B사가 공통분모로 등장한다. B사의 과거 관리건물 포트폴리오와 대조한 결과 19채 중 16채가 관리 대상에 포함됐다. 피해자들은 실제로는 18채를 B사가 관리한 것으로 보고 있다.
B사의 역할이 단순 시설관리에 그쳤는지도 쟁점이다. 신림동 한 피해 건물의 임차인은 B사 관리부장과 계약 연장 여부와 조건 등을 문자메시지로 논의했다. 해당 건물 임대인이 법원에 제출한 서면에도 관리업체가 임차인 상담과 계약조건 안내, 일정 조율, 계약서 작성 등을 담당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건축·시공 단계에서도 공통점이 나타났다. 관악구 빌라 3채에는 C건설사가 공사시공자로 기재됐고, C사 대표는 이 가운데 한 건물의 건축주이자 시공자로 이름을 올렸다. A사 대표 이씨와 부모·누나·장모·매제, 사업 관계인이 공사시공자(현장관리인)로 기재된 건물도 확인됐다. 아울러 본지가 19채의 건축물대장을 전수 대조한 결과 설계는 모두 동일한 D건축사사무소가 맡았다.
명의상 임대인들끼리의 자금 거래도 확인됐다. 신림동 한 건물의 임대인은 회생법원에 자신이 건축사업의 시행이나 비용 집행을 총괄하지 않았고 사업 주체 측 내부 정산 방식도 모른다는 취지의 의견서를 냈다. 사업자금 자료에 따르면 해당 임대인은 시행사 관계인들과 10억이 넘는 돈을 주고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자들은 이 같이 명의상 집주인들이 건물 시공·관리 명목으로 임차인의 보증금을 B사 등에 넘기고, 최종적으로 이씨 측이 이익을 보고 있다고 지적한다.
중개 과정도 의문이다. 피해자들의 고소장과 계약자료에는 일부 중개업소와 중개인들이 여러 건물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피해자들은 계약 당시 건물가액이나 선순위 임차보증금을 실제보다 안전한 수준으로 안내받았다고 한다. 신림동 한 임차인은 지난 5월 A사 대표 이씨와 중개인 등을 고소하면서 "이씨의 총괄 기획 아래 보증금 편취를 목적으로 역할을 분담했다"고 주장했다.
법조계에서는 계약 당시 관계자들이 보증금 반환이 어려워질 가능성을 인식했는지, 이를 공유했는지 등이 형사책임을 가를 핵심으로 본다. 이씨를 별도 혐의로 고소한 법무법인 관계자는 "건물 10채가 넘게 일가족으로 세팅돼 동시다발적으로 전세금 미반환 이슈가 터진 형태"라고 말했다. 이사백 법무법인 새별 변호사는 "임대인과 공인중개사 측이 애초부터 보증금 미반환의 고의(또는 미필적고의)를 입증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관련자들은 입장을 밝히지 않거나 의혹을 부인했다. 구속 상태인 이씨를 비롯해 배우자·모친·장모 등에게 연락했지만 건강상 이유 등을 들어 답하지 않았다. B사 전 대표 측은 "단순 건물관리만 했을 뿐 보증금 미반환 문제가 있는 줄은 몰랐다"며 "우리도 피해를 입어 회사가 망했다"고 해명했다.
[email protected] 최은솔 박성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