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기록유산 1만4673건 어디에 둘까… 제주4·3 기록관 부지·규모 본격 검토
국비 2억원 기본계획 용역 착수
후보지와 적정 규모·공간구성 검토
디지털 장기보존·연구·교육까지 연계
300억원·2030년 준공 구상 구체화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오른 제주4·3 기록물 1만4673건을 장기 보존하고 연구·교육·전시까지 연결할 전문 기록관 건립이 부지와 규모를 결정하는 단계로 들어갔다. 세계기록유산 등재라는 국제적 평가를 실제 보존·활용 인프라로 연결하는 후속 작업이 본격화한 것이다.
11일 제주특별자치도에 따르면 도는 지난 9일 제주문학관 세미나실에서 '제주4·3아카이브 기록관 건립 타당성 조사 및 기본계획 수립 용역' 착수보고회를 열었다.
보고회에는 용역을 수행하는 재단법인 한국자치경제연구원과 4·3 관련 전문가, 유족, 관계 부서 관계자 등이 참석해 기록관의 기능과 건립 방향, 주요 과업을 논의했다.
이번 용역의 핵심은 기록관을 어디에 어느 정도 규모로 지을지 결정할 근거를 만드는 데 있다. 제주도는 기존 4·3 관련 시설과 국내외 기록관 사례를 조사하고 개발 용이성과 접근성, 환경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 후보지를 검토한다. 건축 규모와 공간 구성, 운영·관리 방식도 기본계획에 담는다.
제주4·3 기록관 필요성이 커진 계기는 지난해 4월 17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등재다. 제주4·3의 진상규명과 희생자 명예회복, 화해·상생의 과정을 담은 기록물 1만4673건이 2025년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국제목록에 등재됐다.
등재 기록은 문서만으로 구성돼 있지 않다. 문서 1만3976건을 비롯해 도서 19건, 엽서 25건, 소책자 20건, 비문 1건, 비디오 538건, 오디오 94건 등 형태가 다양하다. 종이기록의 온·습도 관리와 복원뿐 아니라 영상과 음성자료를 장기간 보존할 수 있는 디지털 아카이빙 체계가 함께 필요한 이유다.
기록관은 이미 등재된 자료를 보관하는 시설에만 머물지 않는다. 아직 개인이나 기관 등에 흩어져 있는 4·3 기록을 추가 조사·수집하고 훼손이나 소실을 막는 역할까지 맡게 된다.
연구자들이 기록을 활용할 수 있는 연구기능과 미래세대를 위한 교육, 일반 관람객이 4·3의 역사와 기록을 접하는 전시기능도 한 공간에 연결하는 방향이 검토된다.
제주4·3 기록의 국제적 의미도 기록관 건립의 성격을 넓히고 있다. 유네스코에 등재된 제주4·3 기록은 국가폭력의 피해만을 기록한 자료가 아니라 진실규명과 명예회복, 화해와 공동체 회복까지 이어진 과정을 보여주는 기록이라는 점에서 가치를 인정받았다.
기록관이 들어서면 제주4·3의 과거를 보관하는 저장시설보다 평화와 인권, 과거사 해결 과정을 국내외 연구자와 다음 세대가 지속적으로 확인하는 기록문화 거점 역할을 맡을 수 있다.
사업은 정부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의 제주지역 공약과제에도 반영됐다. 제주도는 기본계획 수립을 위해 국비 2억원을 확보했다.
제주도가 앞서 제시한 구상은 총사업비 약 300억원 규모의 기록관을 2030년까지 조성하는 방향이다. 다만 사업비와 준공 목표는 향후 기본계획과 중앙부처 협의, 행정절차에 따라 조정될 수 있다.
입지도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앞선 사업 검토 과정에서 제주4·3평화공원 일대가 거론됐지만 이번 기본계획 용역은 개발 여건과 접근성, 환경성을 다시 따져 후보지를 검토하도록 했다.
따라서 이번 용역 결과가 기록관 사업의 첫 번째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부지와 건축 규모가 정해져야 총사업비 산정과 중앙정부 협의, 설계와 건립 절차도 구체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록관 운영 주체와 기존 제주4·3평화기념관·제주4·3평화재단 등 관련 기관과의 기능 분담도 풀어야 할 과제다. 기록 수집·보존과 전시·교육 기능을 기존 시설과 어떻게 나눌지도 사업 효율성을 좌우한다.
제주도는 용역 과정에서 유족과 전문가, 도민 의견을 수렴해 기록관의 기능과 공간 구성을 구체화할 계획이다.
변영근 제주도 특별자치행정국장은 "제주4·3 기록물은 4·3의 진실과 역사, 화해와 상생의 과정을 담은 기록유산"이라며 "유족과 전문가, 도민 의견을 반영해 평화와 인권의 가치를 미래세대에 전할 기록문화 거점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