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검찰 개혁에 대한 '아싸' 기자의 단상 1화 [이환주의 시선]

이환주 기자
파이낸셜뉴스

출입기자 시스템과 대장동 사태

검찰 개혁에 대한 '아싸' 기자의 단상 1화 [이환주의 시선]

[파이낸셜뉴스] 기자 직군에는 출입처 시스템이 있다. 회사가 배치한 특정부서의 특정팀에서 배정 받은 출입처를 취재한다. 정치부 국회팀은 국회의원을 취재하고, 산업부 대기업팀은 삼성전자를 취재하는 식이다. 가끔 중대한 사건의 경우 부서에 상관없이 특별취재팀을 편성하기는 하지만 일시적일 뿐이다. 최근 들어서는 출입처 관행을 타파한 대안 언론도 등장하고 있지만 현장에서 접하는 '출입처의 벽'은 생각보다 높고 견고하다.

기자의 직전 출입처였던 대법원과 대검찰청의 경우 정식 등록 출입기자는 30명 중후반 정도에 불과하다. 정식 등록 출입기자가 아니더라도 기관의 보도자료를 받아 보거나 취재 활동을 할수는 있지만 기관장과의 오찬이나 공식 행사 등은 참여가 제한된다. 비출입사 기자가 정식 등록 출입기자가 되기 위해서는 해당 출입처에 대한 취재 활동 및 기사 작성 이력을 쌓은 뒤 기존 기자단 투표에서 일정 득표율 이상을 획득해야 한다. 특히 대법원, 검찰 등을 출입하는 법조기자의 경우 타 출입처와 비교해 기자와 취재원간 관계가 더 끈끈하다.

검찰개혁, 대장동 사태 등 다양한 사건을 바라보는 기자의 시각은 그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출입처를 거쳐 왔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AI 생성이미지.
검찰개혁, 대장동 사태 등 다양한 사건을 바라보는 기자의 시각은 그가 과거부터 현재까지 어떤 출입처를 거쳐 왔는지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AI 생성이미지.

윈윈 구조 출입기자 시스템

출입처 시스템은 취재를 하는 기자와 취재를 당하는 피취재 기관 모두에게 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등록 출입기자의 숫자가 양손으로 꼽을 만큼 적었던 시대, 정보의 독점적 접근과 유통, 통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권력이었다. 기자에게 출입처 시스템은 새로운 경쟁자의 출현을 막고 정보를 독과점하는 효과를, 피취재 기관에게는 기자단 관리와 통제를 조금 더 용이하게 하는 1차 방어막이 됐을 것이다. 하나의 예시이긴 하지만 과거 건설부(현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던 한 시니어 기자 선배에 따르면 '전날 늦게까지 담당 공무원들과 술을 먹고 다음날 점심을 함께 먹으며 그날의 엠바고 기사(보도 시점을 약속한 기사) 보도 시점을 기자단 합의하에 하루 늦추기도 했다'고 한다. 아주 작은 사례다.

언론과 미디어 숫자의 증가, 취재권 보장 확대 등의 영향으로 현재는 출입처 시스템이 과거에 비해 미해졌다. 하지만 여전히 청와대와 국회, 정부기관, 법조 및 경찰 등 기관은 출입처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출입기자 시스템이 나쁜것 만은 아니다. 기자 역시 한정된 시간 동안 특정한 산업군이나 영역에 취재력을 집중하면 짧은 시간 안에 기사 작성을 위한 최소한의 관련 지식을 습득할 수 있다. 기자의 가장 좋은 점 중 하나는 "국민을 대신해 질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출입처를 이제 막 옮겨서 그 분야에 대해 '완전한 백지 상태'이더라도 기자는 그 분야에 가장 해박한 사람에게 바로 질문할 수 있다. 정부부처 등 공공기관은 물론 특정 분야의 전문가에게 경험이 없는 기자가 매우 엉뚱한 질문을 하더라도 답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기자에게 최대한 상세하고 쉽게 설명해줄 유인이 존재한다. 그를 통해 그의 발언이 직접 인용되어 공식적으로 독자에게 전달될 수 있고, 기자가 기사를 멍청하게 작성해 버리면 취재원 입장에서도 추후에 이를 바로잡거나 해명하는데는 더 큰 노력이 들기 때문이다.

관행처럼 이어져 온 출입처 시스템은 기자와 피출입기관 양쪽에 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관행처럼 이어져 온 출입처 시스템은 기자와 피출입기관 양쪽에 득이 되는 측면이 있다.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대장동 사태를 바라보는 다양한 관점들

출입기자 시스템에 안에서 기자들은 연차와 경험이 쌓이고, 거쳐온 출입처가 늘어남에 따라 사건을 보는 시야각도 확장된다. 예를 들어 사회적 이슈가 되는 한 사건을 다룰 때, 과거의 출입처 경험에 따라 사건을 보는 관점이 달라 질 수 있다. 한때 세상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대장동 사태'를 예로 들어보자. 부동산 출입기자는 대장동 개발을 통한 시행사 및 투자자들의 막대한 개발 이익과 건설사의 분양 이익 등에 초점을 맞춰서 기사를 쓸 것이다. 금융부 출입기자는 대장동 사태 초기 자금줄이었던 부산저축은행의 부실 PF대출과 사업에 참여했던 주주들의 수익 배분 등 경제적인 부분에 관심이 클 것이다. 정부부처나 지자체를 출입한 기자라면 대장동 개발 과정에서 국토교통부의 규제(환경 및 문화재)나 인허가 관련 특혜나 부패, 해당 지자체의 커넥션이나 정책 결정의 핵심 인물 등에 취재력을 집중할 것이다. 법조 출입기자는 대장동 사업 추진 과정에서 법적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한 전관 변호사의 역할이나 당시의 법률적 쟁점, 그리고 대장동 사태가 대장동 게이트로 번지는 과정에서 검찰의 조작기소 여부와 사법부의 판단이 실체적 진실에 가까웠는지 아니면 정치적으로 오염된 판결이었는지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기자는 과거 대장동 사태의 본질을 우리나라 권력을 구성하는 입법, 사법, 행정 3부의 부패와 이를 감시해야 할 언론까지 얽힌 부동산 공화국의 부끄러운 단면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 실제로 대장동 사태는 화천대유자산관리의 막대한 부동산 개발 수익(자본 권력), 전현직 국회의원(입법), 성남도시개발공사(행정), 전관출신 판·검사(사법)에 더해 로비와 인맥의 중심에 있는 전직 언론인(언론)까지 연루된 대형 게이트로 번졌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보기 클릭>

대장동 사태를 둘러싼 각종 재판 진행 상황.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대장동 사태를 둘러싼 각종 재판 진행 상황. 제미나이 생성 이미지.

대장동 사태에서 한 가지 흥미로웠던 점은 검찰의 공소 이유와 여론의 비판 방향이 당시 성남 시장이었던 "이재명 성남시장이 어째서 부동산 개발이익을 민간으로부터 더 회수하지 않았는지"였다는 점이다. 민간에 특혜를 줬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동산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있던 한국의 전통적인 시각은 "부동산 개발을 통한 민간 이익 극대화는 '선', 공공의 개입은 '악'"이라는 이분법 흔했기 때문에 기존 부동산 카르텔의 관점과는 반대되는 현상이었다.

대장동 개발 사업도 이명박 전 대통령 재임 당시였던 2009년 수익성이 있는 곳은 '민간'이, 공공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수익성이 없는 사업을 하라는 가이드에 따라 초기 공공개발로 추진되다 민간 사업으로 전환됐다. 이후 2010년 7월 이재명 성남시장이 취임한 후 지방채 발행을 통한 100% 공영개발로 추진하려 했으나 한다라당이 다수였던 성남시의회가 발목을 잡았다. 이에 민관 공동개발 방식으로 성남 도시개발공사가 50%+1주 지분을 확보해 사업을 추진했다. 공공이 대주주일 경우 개발 사업에서 가장 어려운 토지 수용을 강제로 할 수 있어 사업에 탄력이 붙은 것이다. 정리하면 대장동 사업은 MB정부 시절 민간 개발 시도 → 이재명 성남시장 시절 100% 공공개발 추진 →공공과 민간 합작 개발로 귀결된 것이다. 다른 개발 사업과 달리 막대한 투자 이익이 가능했던 것은 사업이 길어지면서 부동산 침체기에 싼 값에 토지 등을 사들이고 부동산 경기가 활황일 때 분양이 이뤄졌기 때문이다.
당시 성남시는 대장동 사업을 통해 배당금(1800억원), 공원조성비(2600억원), 기반시설(1100억원) 등 약 5500억원을 환수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 대통령 역시 당시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공익환수사업"이라고 설명한 바 있다. 반면 검찰은 현금배당 1800억원만 공공환수이며 나머지는 공공환수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개발 사업에서 1000억원이 넘는 공공이익을 환수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계속)

■'이환주의 시선'은 특정 이슈를 기존의 단순 기사 형식을 넘어 기자수첩, 내러티브 등 다양한 형태로 풀어나가는 온라인 전용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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