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경 국가유공자 등록 취소… 보훈부, 4·3 역사전문가 참여해 재심사
지난 2월 기존 등록 결정 취소
현 심사위 4·3 역사전문위원 없어
제주 현지조사·이해관계자 의견 청취
내년 역사 전문연구관 등 2명 확충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국가보훈부가 제주4·3 당시 제주 주둔 제9연대장을 지낸 고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을 절차상 하자로 취소한 뒤 역사 전문가가 참여하는 보훈심사위원회에서 인정 여부를 다시 판단한다.
13일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보훈부는 박진경 대령의 국가유공자 등록 과정에 보훈심사위원회의 심의·의결이 빠진 사실을 확인했다. 관련 법령과 등록 절차를 다시 검토하고 법률자문을 거쳐 지난 2월 기존 등록 결정을 취소했으며 현재 보훈심사위원회에서 국가유공자 해당 여부를 새로 심의하고 있다.
기존 국가유공자 지위를 유지한 채 재검토하는 방식이 아니다. 앞선 등록 결정을 취소한 뒤 법정 심의 절차를 처음부터 다시 밟는 구조다.
보훈심사위원회는 국가유공자 등록요건과 상이 정도 등을 심의·의결하는 합의제 기관이다. 공무수행과 부상·사망 사이의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업무 특성상 법률과 의학, 보훈, 군사 분야 전문가를 중심으로 운영돼 왔다.
박진경 대령 심사는 성격이 다르다. 개인의 군 복무와 서훈뿐 아니라 1948년 제주4·3 당시 군의 진압 과정과 국가공권력의 역할이라는 역사적 맥락을 함께 살펴야 하기 때문이다.
보훈부도 이런 특수성을 반영해 향후 박 대령 심사에 역사 전문가를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키기로 했다. 현재 보훈심사위원회에는 제주4·3 관련 역사 분야 전문위원이 포함돼 있지 않다.
심사 실무를 맡는 행정인력을 대상으로 제주4·3 당시 상황에 대한 전문가 특강도 진행하고 있다. 제주 현지조사를 통해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듣고 관계기관에 자료를 요청하는 등 사실관계 확인 범위도 넓혔다.
조직 보강도 추진한다. 보훈부는 2027년도 정기 직제에 역사 전문연구관을 포함한 전문인력 2명을 확충할 계획이다. 국가유공자 심사에서 역사적 평가가 필요한 사안에 대응할 상시 전문성을 보강하려는 조치다.
이번 재심사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박 대령이 제주4·3 전개 과정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있다.
제주4·3평화재단에 따르면 당시 제9연대장 김익렬 중령은 1948년 4월28일 무장대 측 김달삼과 평화협상을 벌여 전투 중지와 무장해제 등을 논의했다. 이후 미군정의 무력진압 방침과 오라리 방화사건 등을 거치며 협상이 무산됐고 김 중령은 해임됐다.
박 대령은 같은 해 5월6일 김 중령의 후임으로 제9연대장에 부임했다. 제주4·3평화재단은 연대장 교체를 강경 진압이 본격화하는 과정의 주요 인사 조치로 설명하고 있다.
정부 차원의 4·3 역사 인식도 심사에서 빼놓기 어려운 맥락이다. 정부는 2003년 10월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를 확정했다. 같은 달 노무현 당시 대통령은 보고서를 토대로 국가공권력에 의한 대규모 민간인 희생과 과거 국가권력의 잘못을 공식 사과했다.
따라서 박 대령의 국가유공자 인정 여부는 무공훈장 수훈 사실만 확인하는 문제와는 성격이 다르다. 정부가 이미 확정한 4·3 진상조사 결과와 해당 인물의 구체적인 행적, 국가유공자법상 요건을 함께 검토해야 하는 사안이다.
보훈부가 역사 전문가를 심사에 참여시키고 제주 현지조사까지 진행하기로 한 배경도 여기에 있다. 다만 심사 일정과 역사 전문가의 구체적인 인원, 전공 분야는 아직 확정하지 않았다. 지난 2월 보훈부는 무공수훈자 등의 국가유공자 심의를 담당할 전담팀을 보훈심사위원회에 신설하겠다는 방침도 내놨다.
박 대령 재심사는 한 인물의 국가유공자 인정 여부와 함께 역사적 논쟁이 큰 인물을 국가가 어떤 절차와 전문성으로 심사할 것인지도 보여줄 사례가 될 전망이다.
보훈부 관계자는 "충분한 자료조사와 전문가 의견수렴, 사실관계 확인을 거쳐 관련 법령과 절차에 따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심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