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르무즈 우회 송유관 뚫는 걸프국…"완전 대체는 불가능" [글로벌 리포트]
중동지역 긴장도 따라 국제유가 들썩
호르무즈 통과 원유량 3분의 1로 줄어
이동거리 늘어난 만큼 기름값에 반영
산유국들은 대체 인프라 확충 열올려
이란 '1척당 27억' 통행료 징수 엄포
세계 해상물류 절대관문 말라카 해협
동남아 주변국 '갈취 선례' 모방 우려
지난 2월28일(현지시간) 이란 전쟁이 시작된 이후 세계 원유 공급량의 5분의 1이 통과하는 호르무즈 해협의 긴장 상태에 따라 국제 유가는 큰 폭의 상승과 하락을 보였다. 전쟁 발발 이전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던 원유 규모는 하루 2000만배럴에서 600만~800만배럴 수준으로 줄어들었으며 걸프만의 산유국들은 대체 수출 방법을 찾고 있지만 길어지는 이동 거리에 수송비는 고스란히 비싸진 기름값으로 이어지고 있다. 핀란드 에너지 연구 및 청정 대기 센터에 따르면 호르무즈 해협 통행 차질로 지난 3~8월 세계 전체 에너지 수입 비용에 약 3300억달러(약 443조원)가 추가된 것으로 조사됐다.
이란 전쟁을 계기로 앞으로 호르무즈 해협 같은 핵심 병목 지점인 초크포인트(chokepoint)에 대한 의존이 줄어들고 대신 기름값은 비싸지는 등 글로벌 석유 시장이 재편되고 있다. 최근 홍해로 연결되는 바브엘만데브 해협의 긴장까지 고조되면서 세계 원유 공급 통로들이 동시에 막히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호르무즈 대체 원유 수송로 찾기
호르무즈 해협을 통한 원유 수출이 어려워지면서 중동 산유국들은 대체 수송로 찾기에 적극 나섰다. 세계 최대 원유 수출국 사우디아라비아는 동서로 연결된 송유관으로 원유를 홍해의 얀부 항구까지 보낸뒤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거쳐 아시아와 유럽으로 보내왔다. 그러나 예멘 후티 반군의 위협에 원유를 유조선에 실어 수에즈 운하 입구에서 약 55km 떨어진 이집트의 아인소크나에서 하역한 뒤 지중해로 연결되는 이집트 수메드 송유관으로 보낸뒤 다시 유조선에 싣는 번거로움까지 감수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홍해로 연결되는 송유관으로 하루에 원유 700만배럴을 보내고 있다. 또 이집트의 지중해 항구인 시디케리르를 통한 원유 수출도 33% 늘렸다. 그러나 시디케리르에서 선적된 원유가 지중해를 거쳐 아프리카 대륙 남단의 희망봉을 돌아 아시아로 수송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종전에 비해 약 1개월이 길다.
전문가들은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선박들이 앞으로 더 공격을 받게된다면 대체 송유관 건설에 속도가 더 붙을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교 걸프 및 아랍반도 문제 전문가인 고든 그레이 박사는 이전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해 지나던 하루 약 2000만배럴의 절반 규모를 우회 수송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다른 걸프 산유국들도 호르무즈를 피하기 위해 여러 수출 방법을 모색하고 있으며 다만 수송량이 작아지는 것에 직면하고 있다고 그레이는 설명했다.
이란이 호르무즈 해협 통행료를 징수하는 동안 중동 걸프 산유국들은 송유관을 통해 원유를 우회해 수출하고 세계 전기차 사용 증가로 석유 수요가 감소하면서 그 사이에 호르무즈 해협의 비중이 점차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시장정보분석업체 에너지 애스펙츠의 공동 창업자 리처드 브론즈는 호르무즈 해협을 대체할 송유관의 상당수는 아직 계획 단계라며 가동에 들어간다고 해도 해상을 통한 수송량에는 미치지 못할 것이라며 비현실적인 대안이라고 지적했다.
최근 홍해 입구에 위치한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후티 반군이 장악하면서 글로벌 주요 석유 공급망의 핵심 수송로 두곳이 동시에 봉쇄와 위협을 받는 미증유의 물류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이란 외무부는 오는 14일 오만에서 걸프 국가들과 호르무즈 해협에 대해서 논의할 예정이다. 이란은 이번 회의가 주변 국가들과 상호 이해를 증진시키고 지역 안보 공유를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회의로 호르무즈 해협에 변화가 있을지 주목된다.
■부각되는 해협 통행료 징수 문제
이란은 미국과 이스라엘의 군사 공격에 따른 전쟁 배상과 환경 보호, 해상 서비스를 빌미로 호르무즈 해협 통행 선박당 많게는 200만달러(약 27억원)까지 징수하겠다고 위협해왔다. 국제 사회는 이란 정부와 혁명수비대의 통행료 징수가 갈취 행위며 세계 에너지 안보를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으며 걸프 국가들과 중국도 반대하고 있다. 유엔 산하 국제해사기구(IMO)의 아르세니오 도밍게스 사무총장은 지난 주 인터뷰에서 호르무즈 해협에 자발적 기금을 설립하는 방안은 실현 가능할 수 있지만 "통행료를 의무적으로 부과하는 것은 국제 수로의 자유로운 통행이라는 오랜 원칙에 위배된다"라고 말했다. 유엔해양법협약(UNCLOS)에 따라 자연 해협은 '통과통항권'이 보장돼 연안국이 통행료를 부과할 수 없으며 견인 등 제한된 서비스 비용만 청구할 수 있다. 반면 수에즈와 파나마 운하는 막대한 비용을 들여 건설해 유지하는 인공 수로로 관련 국제 협약에 따라 통행료 징수가 법적으로 허용된다. 예외로 통행료가 징수되는 곳은 러시아의 북극행 항로로 쇄빙선 호위 서비스 요금을 부과하고 있다.
투자자들은 이란의 통행료 징수가 요충지를 무기화해 현금화하려는 것으로 이것이 전례가 되어 세계 해상 물류의 핵심 동맥인 동남아시아의 말라카 해협 주변국들이 모방할까 우려하고 있다. 인도네시아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와 접하고 있는 길이 900km인 말라카 해협은 전 세계 해상 석유 수송량의 절반, 글로벌 교역량의 30%가 통과하는 요충지다. 이곳은 인도양과 태평양을 연결하는 최단 거리의 수로로 아시아 에너지 수입의 절대적인 관문이므로 통행에 제한이 생기면 글로벌 에너지 시장 전체가 큰 충격을 받을 수 있다.
이란 전쟁 이전에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는 원유가 하루 2100만배럴인데 반해 말라카 해협은 매일 2300만배럴이 통과하던 글로벌 에너지 공급의 동맥 중 하나다. 특히 폭이 2.8km에 불과한 병목 구간인 '필립스 수로'가 있어 이곳이 통행료 분쟁 등으로 막히면 선박들은 호주로 우회해야 해 물류비 폭등 및 10~15일의 운송 지연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4월 인도네시아가 통행료 도입을 제안했으나 말레이시아와 싱가포르가 반대를 나타냈다. 호주 시드니의 싱크탱크 로우위 연구소는 동남아시아 4개국이 공동 운영하는 말라카 해협 순찰(MSP) 체계가 확고해 호르무즈 해협처럼 독단적으로 폐쇄되거나 통행료가 부과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말라카 해협 연안국들은 지정학적 분열이 있는 걸프 국가들과 달리 오랜 기간 평화적 협력을 이어왔다.
하지만 통행료 징수가 거론된 것은 이곳도 유료화 될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봉쇄까지는 아니어도 통행료 징수 외에 통제, 보험료 상승 같은 단기적인 리스크가 남아있다. 말라카 해협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 대비해 한국과 일본은 원유 도입선을 다변화하고 있으며 전략 비축유 등으로 리스크에 대비해 왔다. 수입 원유의 약 80%를 말라카 해협을 통해 수송하고 있는 중국은 '일대일로' 사업을 통해 미얀마와 연결하는 송유관 구축에 사활을 걸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