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 5인방' 마지막 생존자 정호용 사망…끝내 5·18 사죄 없었다
[파이낸셜뉴스] 1979년 12·12 군사반란과 1980년 5·18 광주 민주화운동 유혈 진압의 핵심 인물이었던 정호용 전 국방부 장관(전 육군특전사령관)이 13일 94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신군부 핵심 5인방' 가운데 마지막 생존자였던 그는 끝내 5·18에 대한 사과나 진실 규명 없이 세상을 떠났다.
정 전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소재 한 종합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 빈소는 수원 아주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것으로 확인됐다.
1932년생인 정 전 장관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과 육군사관학교 11기 동기다. 전두환, 노태우, 이희성 전 육군참모총장 겸 계엄사령관, 황영시 전 육군참모차장과 함께 '신군부 중요 인물 5인'으로 꼽힌다.
1979년 50사단장 재임 중 12·12 군사반란에 가담한 그는 다음 날 곧바로 육군 특전사령관에 취임했다. 5·18 민주화운동 당시에는 광주 유혈 진압의 주축이었던 예하 3·7·11공수부대를 지휘했다. 항쟁 기간 최소 3~4차례 광주를 방문했으며, 특히 1980년 5월 27일 계엄군의 전남도청 재진입 작전(상무충정작전)을 지원한 책임이 후일 대법원 판결 등을 통해 인정됐다.
정 전 장관은 신군부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육군참모총장 대장으로 예편한 뒤 전두환 정권 말기인 1987년 내무부 장관, 국방부 장관을 차례로 지냈다. 1988년 제13대 총선(민주정의당), 1992년 제14대 총선(무소속)에서 대구 서구갑 국회의원으로 당선되기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1996년 12·12 군사반란 및 5·18 민주화운동 진압 가담 등의 혐의로 기소돼 1997년 징역 7년이 확정됐다.
정 전 장관은 생전 5·18 유혈 진압의 책임을 철저히 부인해 왔다. 그는 "광주 방문은 예하 부대의 행정·군수 지원을 위한 것이었고 지휘 통솔권이 없어 발포와도 전혀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 2021년에는 5·18민주화운동진상규명조사위원회(조사위)에 정치적 수세로 인해 자신이 책임자로 내몰렸다며 진정서를 내기도 했다.
하지만 조사위는 관련 자료와 진술을 분석해 정 전 장관이 지휘 계통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결론지었다. 정 전 장관이 광주를 오갈 때마다 작전 현안 회의를 주재했고 재진입 작전에 필요한 물품을 구해 배분한 사실 등이 확인됐다. 이에 조사위는 활동 종료를 한 달여 앞둔 지난 6월 정 전 장관을 내란목적살인 혐의 등으로 다시 고발한 바 있다.
정 전 장관의 사망으로 신군부 핵심 인물 5인은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김용만 5·18서울기념사업회 전 상임이사는 "큰 잘못을 저지른 이들 모두 역사 앞에서의 고백과 책임 없이 후안무치한 채 세상을 떠났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아울러 신군부 핵심 인사를 통해 5·18 당시 발포 지휘 체계 등 내부 의사결정 과정을 직접 확인할 길이 영영 사라지면서 진상 규명이 한층 더 어려워졌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email protected] 박지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