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부인 피격사건 스크린 첫 소환… 1974년 그날의 진실
허진호 감독 '암살자(들)'
'시대극 명가’가 내놓은 추석영화
올 로케로 생생한 긴장감 살려내
중앙정보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
진실 파헤치는 기자들의 분투 그려
許 "진실·배후 밝히는 영화 아냐
억압받던 70년대 시대상 담았다"
주연급 조연들의 합류도 볼거리
'서울의 봄’ 흥행계보 이을지 주목
영화 '오디세이', '스파이더맨: 브랜드 뉴 데이' 등 외화가 여름 극장가를 장악했다면, 추석 연휴에는 최민식 주연의 리메이크작 '인턴', 현대사를 다룬 유해진의 '암살자(들)', 시리즈의 대미를 장식할 변요한의 '타짜: 벨제붑의 노래' 등 각양각색의 한국 영화가 각축전을 벌인다. 그중 '암살자(들)'은 한국 영화 최초로 1974년 육영수 여사 피격사건을 스크린에 소환해 관심을 모은다. 주연 배우 유해진은 "처음에는 '이 사건을 다룬다고?' 싶을 만큼 조심스러웠고, 바로 그 점이 강렬하게 다가왔다"고 말했다.
■발표된 ‘사실’과 목격한 ‘진실’ 사이
'암살자(들)'은 영부인 피격사건을 전면에 내세운 팩션 미스터리 추적극이다. '남산의 부장들'과 '서울의 봄', 디즈니플러스 드라마 '메이드 인 코리아' 등을 통해 한국 근현대사를 흥미롭게 풀어내며 '시대극 명가'로 자리매김한 하이브미디어코프가 허진호 감독과 손잡고 선보이는 신작이다.
광복절 생중계 현장에서 영부인이 저격당하고, 용의자는 현장에서 체포된다. 사건은 빠르게 종결되지만, 현장 경호를 담당했던 형사 철구(유해진)와 신문사 사회부장 재환(박해일), 신입 기자 영일(이민호)은 검경과 중앙정보부의 수사 결과 발표에 의문을 품고 진실을 좇기 시작한다.
영화는 마치 역사의 한복판에 들어선 듯한 생생한 긴장감을 선사하는 동시에, 중앙정보부의 언론 통제에 맞서 진실을 파헤치는 기자들의 분투를 같은 해 발표된 '자유언론실천선언'과 연결해 1974년 당시의 분위기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영화는 사건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형사와 두 기자를 중심으로 사건의 파편을 맞춰가는 과정을 따라가며, 국가가 발표한 '사실'과 현장에서 목격한 '진실' 사이의 간극을 파고든다. 덕분에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그날의 사건과 관련 기록을 다시 찾아보게 한다. 기자들의 분투는 점차 퇴색해가는 직업적 소명의 가치를 환기하며 언론의 역할에 묵직한 질문도 던진다. 다만 영부인 저격사건을 둘러싼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를 다시 소환한 것에 대해 세대별 반응이 어떻게 갈릴지는 두고 볼 일이다.
■시대 공기 담은 '올 로케이션' 촬영과 화려한 카메오
'암살자(들)'은 모든 장면을 실제 공간에서 촬영하는 '올 로케이션' 방식을 택해 세트만으로는 구현하기 어려운 생생한 질감과 공간의 깊이를 살렸다.
경찰 아버지를 둔 철구의 아이들이 마루에 앉아 '국기에 대한 맹세'를 외우고 좁은 골목을 누비며 노는 모습, 철구의 아내가 집 한편에 세 들어 사는 신혼부부를 살뜰히 챙기는 장면은 이웃 간의 정이 살아 있던 시절의 생활상을 보여주며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취재 현장의 풍경도 흥미롭다. 공중전화 앞에 줄을 선 기자들이 수화기를 붙들고 현장 상황을 설명하고, 선후배들이 이를 받아 적는 장면부터 술에 취한 화백이 기자들의 이야기를 곁에서 듣다가 4컷 만평을 완성하는 모습까지 디지털 이전 신문사의 풍경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권력의 폭력이 일상까지 파고든 시대의 어두운 얼굴도 담았다. 편집국에 상주하는 중앙정보부 요원의 감시를 피해 정보를 주고받는 기자들의 모습은 일종의 첩보전을 방불케 한다.
여기에 배성우, 엄지원, 박지환, 박훈, 류혜영, 장률, 최유리, 류경수, 김대명, 심은경, 박해준, 박성훈, 오정세, 신현빈, 정우성 등 주조연급 배우들이 크고 작은 배역으로 잇달아 등장하는 것도 볼거리다. 짧은 순간에도 각자의 존재감을 새기며 1974년의 풍경을 촘촘하게 채운다.
허진호 감독은 지난 8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언론시사회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의 봄'이 떠오른다는 질문에 "비교해줘서 감사하다"면서도 두 작품의 지향점에는 차이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암살자(들)'은 어떤 결론을 내리거나 감춰진 진실과 배후를 밝혀내는 데 집중한 영화가 아니다"며 "사건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1974년을 살았던 인물들의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또 자유언론실천선언 등 동시대의 실제 사건을 끌어와 당시의 시대상과 공기를 담는 데 중점을 뒀다고 밝혔다.
유해진은 11일 라운드 인터뷰에서 "'왕과 사는 남자'가 역사에 남겨진 작은 사실에서 출발해 단종의 죽음을 다시 생각하게 한 작품이었다면, '암살자(들)' 역시 여전히 물음표로 남아 있는 사건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다. 그것이 영화가 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일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민호는 이 영화의 가치를 '알 권리'에서 찾았다. 그는 "한국 사회가 불편한 이야기나 불편해질 수 있는 지점을 지나치게 의식하고 피한다고 생각한다"며 "그 불편함을 꺼내 각자의 주관적인 이야기를 진솔하게 주고받는 게 오히려 더 건강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12세 이상 관람가. 23일 개봉.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