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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 분열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생존기[엄현희의 생각하는 극장]

신진아 기자
파이낸셜뉴스
엄현희 공연평론가
엄현희 공연평론가

수메르 신화의 지하 공간과 도시락 조리실 주방. 최근 여성 창작자의 연극 무대들이 발견한 공간들이다. 안전하고 편안하며 환한 공간 대신에, 왜 이들 창작자들은 시큼한 군내가 날 것 같고 피가 번져 나오는 아슬아슬한 세상을 끈질기게 들여다보고 있을까. 명동예술극장의 '역행기'와 두산아트센터의 '갱更' 이야기다.

'역행기'와 '갱更'은 '노동하는 여성의 서사'라는 점에서도 꿰어진다. AI의 자동화로 인한 무노동의 시기로 진입하는 최근을, '갱更'은 일자리 부족과 불경기에 허덕이며 도시락 조리실에 모여든, 다양한 세대로 드러낸다. 신화를 빗댄 '역행기'의 주인공 인안나(수메르 신화 속 여신 이름)를 비롯한 그의 언니, 어머니, 할머니는 저임금과 일용직 노동의 굴레와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럼에도 두 작품은 끝내 살아남게 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려 흥미롭다. 게다가 살아남는 방법 역시 예사롭지 않다. 기성의 방법을 거부한 채, 비유적으로 절망 및 고통과 한 몸이 되거나 스스로를 자양분으로 씹어 먹는다.

'역행기'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인안나로 시작해 부활의 여정을 따라가는 구성이다. '갱更'은 증오 한 가운데로 뛰어들어 세상과 만나는 이야기다. 갈등의 근원(가부장제)에 대해 경유하거나 비판적 거리를 두기보다, 가운데로 직진하는 듯하다.

'역행기'와 '갱更'은 여성의 이야기임에도 흔히 '여성성'으로 이해되어 온 것들을 차용하지 않거나 비틀고 있는 무대를 보여준다. 아기자기하거나 곡선적이며, 수평적인 것 대신에 대극장 무대는 아래로 하강하고 지하 세계 속 상상력의 크기는 거대하다. 언니와 어머니, 할머니는 신화화 된 인물로 중성적으로 표현돼 있다('역행기'). '갱更'은 할아버지와 화해하리란 기대를 뒤엎고, 잔인하고 발칙한 상상을 성큼 현실화 한다. 어머니의 돌봄의 욕망은 갈등을 키우는 동력이 될 뿐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여성 창작자들이 선보이는 이들 무대는 젠더 정체성보다 사회에 진입한, '청년 세대 정체성'이 한층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생존이 최우선의 가치인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생존은 현실을 재구성하며 몇 번이고 다시 태어나는 과정과 함께한다. '역행기'의 인안나는 사후 세계 체험을 통해, '갱更'의 피영은 가족과 주변의 기대보다 스스로의 욕망을 우선하는 것에 의해 이를 이뤄낸다. 사실 삶은 물질적으로 바라볼 때,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세포에 의해 새로 사는 것이라 표현될 수 있다. 세포 분열이 계속돼 생존이 끝없이 이어지기를, 재구성되는 현실이 서로들에게 꿈으로 공유되며 퍼지기를.

엄현희 공연평론가

국립극단 연극 '역행기'. 연합뉴스
국립극단 연극 '역행기'. 연합뉴스
두산아트센터 갱 공연 장면
두산아트센터 갱 공연 장면

[email protected] 신진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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