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불 붙기 전 뜯어낸 타이머 점화장치... 대법 "방화는 이미 시작됐다"

김동규 기자
파이낸셜뉴스

생일파티서 아들 사살한 60대... 아파트엔 점화장치 9개·시너 34ℓ
"설정까지 마쳤다면 착수"... 무기징역·전자장치 20년 확정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 전경. 뉴스1

[파이낸셜뉴스] 타이머를 맞춘 자동점화장치를 설치하고 작동 설정까지 마쳤다면 실제로 불이 붙기 전에 적발됐더라도 방화를 저지르기 시작한 것으로 봐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엄상필 대법관)는 지난달 10일 살인과 살인미수, 현주건조물방화미수, 총포화약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무기징역과 2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령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해 7월 20일 밤 인천 연수구 아들 집에서 열린 자신의 생일파티 도중 밖에 나가 차에 실어둔 사제총기를 챙겨 돌아왔다. 현관 초인종을 눌러 아들 부부가 나오자 아들에게 두 차례 격발해 숨지게 했다. 이어 거실에 있던 며느리와 손자녀, 계단으로 달아난 아들 집 동거인까지 살해하려 했으나 며느리의 신고로 미수에 그쳤다.

A씨는 1998년 성폭력 범죄로 구속기소된 뒤 이혼했지만 전처와 사실혼 관계를 유지하다 2015년께 이를 정리했다. 이후 서울 도봉구 아파트에서 혼자 살며 전처와 아들에게서 매달 약 320만원을 받았다. 그러나 2021년 8월부터 2023년 9월까지 생활비를 매달 640만원씩 중복으로 받아온 사실이 드러나 2023년 11월 지원이 끊겼다. A씨는 전처와 아들이 자신을 속이고 고립시켰다는 망상에 빠져 아들 일가를 살해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전날 A씨는 19세대가 사는 자신의 도봉구 아파트 집 안 아홉 곳에 니크롬선과 성냥으로 만든 점화장치를 설치했다. 주변에는 목화솜과 시너 34ℓ를 늘어놨다. 타이머 콘센트를 이용해 19시간 뒤 전류가 흘러 장치가 동시에 작동하도록 맞춰뒀다. 전처와 아들이 함께 산 흔적을 지우려 한 것이다. 장치는 작동 예정 시각 전인 지난해 7월 21일 오전 4시 17분께 경찰특공대가 해체했다.

쟁점은 불이 붙기 전에 뜯어낸 이 장치의 설치 행위를 방화 미수로 처벌할 수 있는지였다. 실행의 착수란 범죄를 실제로 저지르기 시작한 단계를 말한다. 착수가 인정돼야 미수범으로 처벌할 수 있고, 그 전 준비 단계에 그치면 형이 훨씬 가벼운 방화 예비죄만 문제 된다. 현주건조물방화미수는 무기 또는 3년 이상 징역, 방화 예비는 5년 이하 징역이다.

A씨는 2심에서 "점화장치만을 설치하였을 뿐 매개물에 불을 놓거나 매개물에 불이 붙어 연소작용이 계속될 수 있는 상태에 이르게 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1·2심 모두 실행의 착수를 인정했다.

대법원은 자동점화장치를 쓴 방화의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 재판부는 "범인이 건조물 등을 불태울 의사로 그 점화장치를 설치하고 작동을 위한 설정까지 마쳐 추가 행위의 개입 없이도 일정 시간의 경과 등으로 점화가 자동적으로 이루어져 목적물의 연소에까지 이어질 수 있는 객관적인 상태를 만들었다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방화죄의 실행에 착수하였다고 보아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착수 여부는 범인의 의사와 범행 방법, 현장 상황, 장치의 구조와 기능, 설정한 점화 조건 등을 종합해 가려야 한다고 덧붙였다.
아들 외에 나머지 피해자들은 살해할 의도가 없었다는 A씨 주장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재판부는 "살인의 고의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없다"고 밝혔다. 무기징역이 무겁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했다.

[email protected] 김동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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