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스마트워치 받은 지 26일… 경찰 보호대상 40대 여성 피살

정용복 기자
파이낸셜뉴스

지난해 10월 스토킹·올해 5월 폭력 신고
전 연인 60대 긴급체포… 범행 동기 조사
접근금지 조치 없었던 것으로 전해져
반복 신고 처리·위험성 평가 적정성 쟁점
전국 안전조치 중 살인·미수 피해 30건

제주서부경찰서 청사. 경찰은 12일 전 연인 관계였던 4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을 조사하고 있다. 피해자의 과거 신고 처리와 보호조치 경위도 주요 확인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진=뉴스1
제주서부경찰서 청사. 경찰은 12일 전 연인 관계였던 40대 여성을 흉기로 살해한 혐의를 받는 60대 남성을 조사하고 있다. 피해자의 과거 신고 처리와 보호조치 경위도 주요 확인 대상으로 떠올랐다. 사진=뉴스1

【파이낸셜뉴스 제주=정용복 기자】 스토킹과 교제폭력 피해를 반복해서 신고한 40대 여성이 경찰의 안전조치 대상으로 관리받던 중 흉기에 찔려 숨졌다. 긴급신고용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지 26일 만이다. 피의자에 대한 접근금지 조치는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과거 신고 처리와 위험성 평가, 피해자 보호조치의 적정성이 핵심 쟁점으로 떠올랐다.

12일 제주서부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1시38분께 제주시 연동의 한 호텔 인근 도로에서 60대 남성 A씨가 40대 여성 B씨를 흉기로 찔러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B씨는 도로에 쓰러진 채 행인에게 발견됐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은 범행 직후 달아난 A씨를 추적해 약 3시간30분 뒤인 오전 5시8분께 제주시 건입동의 한 도로에서 긴급체포했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B씨와 헤어진 연인 관계였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사건에서 주목되는 부분은 피해자가 범행 이전부터 경찰에 반복적으로 신변 위협을 호소했다는 점이다. 경찰 조사 결과 B씨는 지난해 10월 A씨와 관련한 스토킹 피해를 신고했다. 올해 5월에도 교제폭력 피해를 여러 차례 신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보복 폭력 가능성 등을 고려해 B씨를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으로 지정하고 112 신고시스템에 등록해 관리했다.

스마트워치는 지난 9월16일 지급됐다. 경찰에 따르면 앞서 기기 지급을 권유했으나 피해자가 수락하지 않았고, 이후 사건 모니터링 과정에서 다시 권유해 지급했다.

그러나 B씨는 스마트워치를 지급받은 지 26일 만에 살해됐다. 범죄피해자 보호용 스마트워치는 위급 상황에서 긴급 버튼을 누르면 경찰 112상황실에 신고와 위치정보가 전달되는 장치다. 당시 B씨가 착용한 기기는 작동 중이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긴급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또 다른 쟁점은 피의자에 대한 접근금지 조치다. 과거 교제폭력과 스토킹 관련 신고가 접수됐지만, 피의자 A씨에 대한 접근금지 명령은 내려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에 활용하는 긴급신고용 스마트워치. 위급 상황에서 버튼을 누르면 112상황실로 긴급신고와 위치정보가 전달된다. 이번 사건 피해자에게는 지난 9월16일 기기가 지급됐지만 범행 당시 긴급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경찰이 범죄피해자 안전조치에 활용하는 긴급신고용 스마트워치. 위급 상황에서 버튼을 누르면 112상황실로 긴급신고와 위치정보가 전달된다. 이번 사건 피해자에게는 지난 9월16일 기기가 지급됐지만 범행 당시 긴급신고는 접수되지 않았다. 사진=연합뉴스

현행 스토킹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스토킹행위가 지속·반복될 우려가 있고 범죄 예방을 위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한 경우 경찰이 피해자 등으로부터 100m 이내 접근을 금지하는 긴급응급조치를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원 역시 스토킹범죄의 수사나 피해자 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접근금지 등 잠정조치를 결정할 수 있다.

특히 이번 사건은 경찰이 피해자의 위험 상황을 인지하고 안전조치 대상으로 관리하고 있었음에도 살인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에서 보호체계의 실효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전국적으로도 경찰의 안전조치를 받던 피해자가 강력범죄를 당하는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서명옥 국민의힘 의원이 경찰청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부터 올해 7월까지 범죄피해자 안전조치 대상자가 살인 피해를 본 사건은 17건, 살인미수 피해를 본 사건은 13건으로 모두 30건이었다. 피해자는 전원 여성이었다.

지난해 전국에서 접수된 스토킹·교제폭력 재신고는 5만1950건이었다. 이 가운데 3회 이상 반복 신고는 4만412건으로 77.8%를 차지했다.

제주에서도 교제폭력 신고는 증가하고 있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올해 1~5월 교제폭력 관련 112 신고는 819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703건보다 16.5% 늘었다. 형사입건 인원도 59명에서 89명으로 50.8% 증가했다.

반복된 신고를 실제 피해 예방으로 연결하는 일이 경찰의 주요 과제로 떠오른 배경이다. 특히 스마트워치를 지급하는 조치와 가해자의 접근을 제한하는 조치는 성격과 목적이 다른 만큼 위험 수준에 따른 종합적인 판단이 중요하다.

경찰은 A씨를 상대로 범행 동기와 계획범행 여부, 구체적인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조사를 마치는 대로 구속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다.

[email protected] 정용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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