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대기업

불황에 판 키운 거인… 1兆 리스크 뚫고 반도체 초격차 기틀[이건희 6주기, 미래를 만든 선각자]

김학재 기자, 임수빈 기자, 박지연 기자
파이낸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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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이퍼 6→8인치 선제투자로
日 추격 따돌리고 메모리 1위
평면 극복한 3차원 낸드 혁신
금융위기땐 메모리 투자 확대
취임때부터 SW·AI 융합 강조
현 시대 '경영 교과서'로 평가

불황에 판 키운 거인… 1兆 리스크 뚫고 반도체 초격차 기틀[이건희 6주기, 미래를 만든 선각자]

"삼성의 미래는 신사업, 신제품, 신기술에 달려 있다."(2012년 신년 메시지)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의 시선은 늘 '다음 시장'의 경쟁력을 먼저 확보하는 데로 향했다. 경쟁사가 투자를 주저할 때 생산방식을 바꾸고, 기존 기술이 한계에 다다르면 새로운 구조를 개발했다. 설비 규모를 키우면서 과감하게 기술·원가·양산능력의 격차를 벌리는 전략이었다.

반도체 산업 중심이 인공지능(AI)으로 옮겨가는 가운데 현재의 성과를 다음 기술에 대한 투자로 연결하는 경영판단의 중요성도 커지면서 남들보다 몇 발 앞서 움직인 이 선대회장의 선견지명은 현시대의 경영 참고서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특히 시대를 앞선 이건희 리더십은 삼성전자가 AI 시대에 세계 메모리 시장 패권을 차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에 이견이 없다.

■1兆 손실위험 감수한 선택

20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첨단 반도체 생산에는 현재 주로 12인치(300㎜) 웨이퍼가 사용된다. 8인치(200㎜)보다 원판 면적이 2.25배 커 원가경쟁력 확보에 유리하다. 이 같은 대구경 생산체제의 기반에는 이 회장이 추진한 선행투자가 자리 잡고 있다. 1990년대 초반 8인치 웨이퍼 생산라인 투자는 추격만 하던 삼성에 변화를 준 이 선대회장의 대표적인 승부수다. 당시 주류였던 6인치보다 원판을 키워 한 장에서 더 많은 칩을 생산하겠다는 선택이었다. 생산성 개선의 가능성만큼 위험도 컸다. 장비와 공정을 바꾸고 정상 제품의 비율인 수율까지 확보해야 했다. 이 회장은 지난 1997년 에세이에서 투자실패 시 1조원 이상의 손실이 예상돼 주변의 반대가 심했다고 회고했다.

그럼에도 이 회장은 경쟁사 성공을 뒤따라가는 방식으로는 선두에 오르기 어렵다고 판단, 빨라지는 기술 변화의 흐름을 놓칠 수 없다고 보고 D램 시장 불황기인 1990~1991년에 8인치 투자를 추진했다. 6인치에서 8인치로 늘린 생산으로 삼성은 일본 업체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하면서 같은 해 메모리 반도체 매출 세계 1위에 올라섰다.

혁신은 웨이퍼 크기를 키우는 데 머물지 않았다. 삼성은 이 회장이 경영 일선에 있던 2013년 세계 최초로 3차원 수직구조 낸드플래시 양산에 나섰다.

삼성전자에서 31년간 재직한 김용석 가천대 반도체대학 석좌교수는 "메모리는 장치산업으로 제조 역량이 굉장히 중요한 것을 알고 있던 이건희 회장이 오히려 불황일 때 생산라인을 늘리고 투자를 확대해 경쟁사를 압도한 것은 전략적으로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짚었다.

■앞을 내다본 이건희 리더십

이건희 회장의 리더십은 늘 다음 경쟁의 기준을 먼저 찾는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설명이다. 항상 다음을 염두에 둔 이 회장의 리더십은 현재의 우위를 지키는 동시에 다음 시장에 필요한 기술과 인재를 확보하는 AI 시대에도 교과서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실제 이 회장의 기술경영은 반도체에만 머물지 않았다. 1988년 취임 당시부터 컴퓨터 활용의 대변혁을 전망하고 반도체·컴퓨터·로봇 등 첨단기술이 향후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내다본 이 회장은 장비 확보와 함께 소프트웨어 활용 역량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미래 투자 기조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도 이어져 삼성전자는 2010년 메모리 투자계획을 5조5000억원에서 9조원대로 확대했다. 화성 16라인에는 완공까지 단계적으로 12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을 세웠고, 이 회장은 당시 투자와 채용을 늘려 글로벌 사업기회를 선점할 것을 촉구했다. 실제 그해 반도체 시설투자 집행액은 12조7000억원에 달했다.

AI 시대에는 메모리와 연산장치, 소프트웨어의 결합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어 반도체의 성능을 높이는 투자와 새로운 활용 시장을 읽는 판단이 맞물려야 하는 업계에선 이건희 리더십을 거듭 참고하고 있다.

황용식 세종대 경제학부 교수는 "이건희 회장은 경영을 통해 메모리 사업에 어떤 틈새시장이 있는지 파악해 전략적으로 접근했다"면서 "철저한 시장 분석과 산업구조 분석으로 레드오션에 괜히 들어가 치열하게 싸우고 상처만 남을 게 아니라, 충분히 투자가치가 있고 유망한 분야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email protected] 김학재 박지연 임수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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