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65세 이상 고령 인구는 지난해 기준 1,012만 명이며 이중 운전면허를 소지한 고령자는 약 478만 명에 달합니다.
고령 인구의 증가는 곧 고령 운전자 수 증가로 이어졌고, 교통사고 통계에서도 그 영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2023년 고령 운전자에 의한 교통사고는 4만2,369건으로 역대 최다였고, 전체 사고의 21.6%를 차지했습니다.
또한 고령 운전자 사고는 1건당 인명피해가 크다는 점에서 더욱 우려가 큽니다. 최근 5년간 고령 운전자 교통사고의 치명률(사고 100건당 사망자 수)는 1.74명으로, 비고령 운전자(0.96명)에 비해 약 1.8배에 달했습니다.
서울 중구 시청역 인근 역주행 교통사고 현장에서 한 시민이 희생자를 추모하며 술을 놓고 있다. 2024.7.4. 사진=뉴스1
고령 운전자의 운전 능력 저하로 인해 발생한 교통사고 소식은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었습니다. 2024년 7월 서울 시청역에서 69세 운전자가 몰던 차량이 인도로 돌진해 9명이 숨진 사고가 대표적입니다. 12월 31일에는 서울 목동에서 70대 운전자가 시장 골목으로 돌진해 1명이 사망하고 12명이 다쳤습니다.
2025년 3월 울산에서 76세 택시 기사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밟아 승객 등 4명이 숨지는 사고와, 청주에서는 72세 운전자가 중앙선을 넘어 역주행하다가 맞은편 경차를 들이받아 3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도 있었습니다.
고령 운전자 사고의 주원인인 '페달 오조작'을 막는 데 특화된 기술입니다. 운전자가 브레이크 대신 가속 페달을 강하게 밟으면, 시스템이 이를 위험 상황으로 감지해 엔진 출력을 차단하거나 스스로 제동합니다. 박상지 대전보건대 교수는 "일상 주행에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는 일이 거의 없다는 점을 이용한 원리"라며 예방 효과를 강조했습니다.
전방의 차량이나 보행자를 감지해 운전자가 제때 멈추지 못할 경우, 차량이 스스로 브레이크를 작동시켜 충돌을 피하거나 피해를 줄여주는 장치입니다. 2023년 9월부터 출시된 신차에는 의무 장착되고 있지만, 문제는 고령 운전자의 낮은 신차 구매율입니다. 실제 고령 운전자 차량의 AEBS 장착률은 전체 평균의 절반 수준인 16.4%에 불과해 기술의 혜택을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가 넓습니다.
경기 수원시 권선구 수원시 교통정책과에서 공무원이 반납이 완료된 운전면허증을 정리하고 있다. 2024.7.3/뉴스1 ⓒ News1 김영운 기자 /사진=뉴스1
현재 고령 운전자의 자발적 면허 반납률은 2%대에 불과합니다. 일각에서는 면허를 반납하지 않는 고령 운전자들의 향한 비판 여론도 적지 않지만, 고령자 중 상당수가 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어 일괄적 반납 요구는 현실과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이에 따라 일정 조건 아래 운전을 허용하는 '조건부 운전면허제도'가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지난 5월 조건부 면허 대상을 고령자까지 확대하는 방안을 검토했으나 "노인은 운전대를 놓으라는 것이냐"는 거센 반발 여론에 부딪혀 논의가 중단된 바 있는데요. 전문가들은 이에 대해 고령 운전자들이 조건부 면허제도의 취지를 다소 오해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장효석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조건부 운전면허제는 고령자의 운전 기회를 최대한 보장하려는 제도"라며 "현행 도로교통법상 면허 결격 사유에 해당하는 질병 등으로 면허가 취소되는 이들 중 상당수가 고령자인 만큼, 이들에게도 일정 범위 내에서 운전을 허용하는 것이 제도의 핵심"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미국과 독일, 호주 등에서는 고령자를 위한 조건부 면허제도를 적극 운영하고 있습니다. 미국 아이오와 주에서는 차량 속도 제한, 자택 반경 5km 이내 운전 허용 등 구체적인 조건을 부여하고 있습니다. 독일에서는 야간 시야 확보가 어려운 경우 주간 운전만 허용하거나, 고속도로 운전이 불안한 운전자에겐 고속도로 이용을 금지하는 방식으로 개인의 신체적·인지적 능력과 통행 특성에 따라 세분화된 조건을 적용합니다.
호주 빅토리아 주의 경우 75세 이상 고령 운전자는 매년 의료 검진을, 85세 이상은 의료 검진과 도로주행 시험을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는데, 운전 부적합 판정을 받은 경우에도 병원 진료, 생필품 구매 등 생활 필수 목적에 한해 운전이 가능한 조건부 면허를 발급받을 수 있습니다.
고령 운전자가 면허를 반납한 이후에도 불편 없이 이동할 수 있도록, 수요응답형 이동수단(DRT)이 현실적인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DRT는 승객의 요청에 따라 운행 노선과 시간이 유동적으로 정해지는 교통수단으로, 정해진 노선을 따라 운행하는 기존 대중교통의 한계를 보완하는 서비스입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강원 원주시의 '부름버스', 경기도의 '똑버스', 현대차와 경찰청이 협력한 '셔클' 등이 있습니다.
원주시는 2023년 3월부터 '부름버스'를 본격 운영하며, 교통 소외 지역에 거주하는 고령자를 위한 예약 기반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경기도의 '똑버스'는 2022년 파주에서 시범 사업을 시작해 수원 등으로 확대됐으며, 현재 도내 17개 시·군에서 243대가 운영 중입니다. 또한, 현대자동차와 경찰청이 함께 개발한 '셔클'은 AI 기반 경로 최적화 기술을 활용해 세종시 등 45개 지역에서 시범 운행 중이며, 지자체 교통망의 유연한 보완책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는 고령자 등 교통 취약 지역 주민을 위한 온디맨드 교통 서비스 '초이소코'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습니다. 고령자의 외출을 돕기 위해 2018년 처음 도입된 이 서비스는 AI가 실시간으로 최적 경로를 계산해 병원, 마트 등 주요 시설을 연결합니다. 앱과 전화로 예약할 수 있어 접근성이 뛰어나며, 현재는 일본 전역 67개 지자체로 확대돼 운행되고 있습니다. 2023년 기준 이용자는 3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파악됐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