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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s 속 인물] 베네수엘라에 남은 냉전의 그림자, 니콜라스 마두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9.01.12 06:00

수정 2019.01.12 06:00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에서 2번째 임기를 축하하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고 있다.EPA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10일(현지시간) 수도 카라카스에서 2번째 임기를 축하하며 손가락으로 '브이'자를 만들고 있다.EPA연합뉴스


"이제 저 사람이 권력을 계속 가지게 됐으니 물가는 다시 오를 거다. 그는 최저임금을 올릴텐데 그럼 모든 물가가 같이 오를 것이고 우리는 결국 같은 상황에 처할 거다"

생계를 위해 콜롬비아와 페루를 떠돌다가 다시 고향에 돌아왔다는 한 카라카스 시민은 10일(현지시간) CNN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같은날 최근 베네수엘라 물가를 살인적인 수준으로 올렸던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은 2번째 취임식을 치렀다. 그는 취임사에서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위해 일하겠다"면서 "미국의 제국주의·패권주의적 질서에 따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마두로의 본명은 니콜라스 마두로 모로스로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시종일관 좌파의 화신으로 살았다.

1962년 11월 23일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태어나 만 57세인 그는 전형적인 노동자 집안 출신이다. 마두로의 아버지 니콜라스 마두로 가르시아는 유명한 노조 지도자였으며 자식인 마두로 본인도 공립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생회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공식적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못했고 카라카스 시내 버스기사로 취직했다. 마두로는 버스기사 노조 활동을 하면서 정치권과 얼굴을 트기 시작했으며 1983년 대선 당시 좌파 후보로 출마한 호세 빈센트 랑겔의 경호원으로 일했다. 랑겔은 우고 차베스의 열렬한 지지자로 훗날 2002년에 부통령까지 오른다. 마두로는 이후 24세가 되던 1986년에 갑자기 다른 좌파 운동가들과 함께 쿠바로 건너가 쿠바 공산 정부가 개설한 정치교육 과정에 들어갔다.

고국으로 돌아온 마두로는 '볼리바르 혁명 운동(MBR-200)'에 가입해 본격적으로 차베스와 엮이게 된다. MBR-200은 차베스가 1982년에 청년 장교 시절에 민족주의와 사회주의를 혼합한 볼라바르주의를 추종해 만든 군부 내 비밀조직이다. 차베스는 1992년에 이 단체를 이끌고 쿠데타를 벌였지만 실패한 뒤 투옥됐다. 마두로는 차베스 석방운동을 벌이면서 당시 변호사였던 영부인 실리아 플로레스를 만나 함께 투쟁했고 1994년에 차베스가 석방되자 그를 도와 제5공화국운동당(MVR) 창설에 기여했다. MVR은 2007년에 다른 좌파 정당들과 결합해 연합사회주의당(PSUV)로 재편된다.

1998년에 대선에 당선된 차베스는 '차비스모(차베스주의)'라는 대중영합주의에 가까운 좌파이념을 내세우며 제헌의회를 구성했다. 의회는 이듬해 대통령 임기 1년 연장(6년), 대통령 연임 허용, 상원 폐지, 정부의 석유 공기업 독점 의무화, 무상 대학교육 등 사회보장 정책 등이 포함된 새 헌법을 통과시켰다. 마두로는 그간의 공을 인정받아 제헌의회에 MVR 소속으로 들어갔으며 2000년에 정식 국회의원이 된 뒤 2005년에는 국회의장까지 지냈다. 그는 2006년 외무장관, 2012년에 부통령으로 임명됐다. 차베스 대통령은 2011년에 암투병 사실을 공개하고 마두로를 자신의 정치적 후계자로 정했다. 차베스는 쿠바에서 수술을 받고 2012년 대선에서 성공해 4연임에 성공했으나 이듬해 3월 암으로 사망했다.

마두로는 같은해 4월에 2019년 끝날 예정이었던 차베스의 임기를 이어받을 대선에 뛰어들었다. 차비스모를 착실히 이행하겠다고 밝힌 마두로는 중도 성향의 야권 후보 엔리케 카프릴레스와 맞붙어 51%의 득표율을 기록해 겨우 2%포인트로 승리했다. 카프릴레스는 부정선거가 있었다며 전면 재개표를 요구했으나 현지 선관위는 부분 재개표로 마두로의 승리를 확인했다.

마두로는 차비스모를 계속하려 했지만 차비스모는 사실상 석유를 팔아야 움직이는 구조였다. 베네수엘라는 국제 유가가 2014년부터 급락하기 시작하자 심각한 경제난에 빠지게 됐고 2015년에는 이웃한 콜롬비아와 국경분쟁으로 1400여명의 콜롬비아인을 추방하기도 했다. 2014년 한 해 동안 시위로 43명이 사망하고 486명이 다쳤다. PSUV는 2015년 총선에서 처참히 패했고 좌파는 16년 만에 정권을 잃었다. 승리한 우파 야권 연대인 국민연합회의(MUD)는 본격적으로 마두로 퇴진을 요구했다. 마두로는 이에 비상사태 선언으로 반대파를 억눌렀다. MUD는 2016년에 국민들의 서명을 모아 마두로의 대통령 신임투표를 실시하려 했으나 마두로의 연기 결정과 친정부 대법원의 방해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두로는 2017년 3월에 대법원을 이용해 의회를 해산하고 자신의 선임이었던 차베스를 본받아 같은해 8월 제헌의회를 출범시켰다. 2017년에 시위로 사망한 사람은 157명으로 늘었고 1만5000명이 다쳤다. 미 정부는 같은해부터 마두로 정부의 민주주의 탄압에 대해 경제제재를 실시했다. 그러나 마두로는 지난해 5월에 조기 대선을 실시해 68%의 지지를 받아 다시 당선됐고 2025년까지 집권할 수 있게 됐다. 당시 대선 투표율은 주요 야권 후보들이 불참해 46%에 불과했다.

마두로가 자신의 주장대로 '미국 제국주의자'들로 부터 나라를 지키는 사이 베네수엘라 경제는 박살났다. 가뜩이나 품질이 떨어져 정제에 비용이 많이 드는 베네수엘라 석유의 생산량은 2016년에 일평균 207만배럴이었지만 제재로 달러가 끊기면서 지난해에는 그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2018년 베네수엘라 물가상승률은 100만%를 넘었으며 경제 규모는 15% 쪼그라들었다. 유엔에 따르면 경제난으로 고국을 떠난 베네수엘라인들은 2015년 이후 230만명이었고 올해까지 전체 530만명에 이를 전망이다. 미국과 이웃 남미 국가들을 비롯해 최소 세계 40개국이 부정하는 마두로 정부가 지금 같은 상황에서 정말 대통령의 말처럼 “독립과 번영”을 이루게 될지는 알 수 없다.

pjw@fnnews.com 박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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