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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진단] "ESG 경영은 피할 수 없는 길, M&A에서도 필수"

이진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1.03.24 13:54

수정 2021.03.24 13:54

신지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사진=KTB투자증권 제공
신지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사진=KTB투자증권 제공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수석연구원/사진=이진석 기자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수석연구원/사진=이진석 기자

백인규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장/사진=김범석 기자
백인규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장/사진=김범석 기자
글로벌 기업은 물론 중소기업, 투자자, 소비자들의 시선이 모두 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최근 가장 큰 화두로 떠오른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다. 그 동안 비슷한 뜻을 지닌 키워드들이 잠시 유행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다. 유수의 기업과 투자기관이 한 목소리로 ESG경영의 실천을 강조하고, 끝 없는 자금이 여기에 몰려들고 있다. 이에 윤진수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수석연구원과 백인규 한국딜로이트그룹 ESG센터장, 신지윤 KT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 등 전문가를 만나 ESG의 태동과 현황, 나아갈 길에 대해 듣고 지상대담 형식으로 꾸며봤다.

■2019부터 메인 스트림, 국내는 2020년부터
전문가들은 ESG에 대한 개념은 2010년대 초반부터 인식됐지만 본격적으로 중요성이 인식된 것을 지난해부터라고 말하고 있다.


윤 수석연구원은 "지난 2008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지배구조네트워크(ICGN) 컨퍼런스에서 사회책임투자에 대한 논의가 있었고 이에 거래소차원에서 사회책임투자 관련 인덱스 지수를 만들기 시작했다"며 "이를 통해 2011년부터 평가에 나섰으나 지금과 비교하면 기업들의 ESG 관련 인식도 떨어졌고 제공되는 정보도 적었다"고 과거를 떠올렸다.

그는 이어 "ESG는 전 세계적으로 2019년부터 메인 스트림으로 자리잡았지만, 정작 우리나라에선 '연금이 열심히 하겠지'라는 분위기였다"며 "그러나 지난해부턴 각 기업의 CEO들이 신년사에서 ESG를 거론하는가하면 각 정부부처에서도 관련 정책을 서둘러 내고 있다. 코로나19 이슈가 분위기 전환점이 된 것으로 풀이된다"고 분석했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KCGS)은 아직 ESG라는 개념이 알려지지 않았던 2011년부터 사회적 책임과 환경경영이 포함된 ESG를 평가해왔다. 윤 수석연구원은 지배구조평가모형 개선 및 사회적 책임 영역의 평가기준 개발을 담당했다.

백 센터장은 "이전에는 ESG가 가치창출의 소스로 인지되기 보다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의 일환으로 인지됐던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기후 변화 위험에 대한 관심 고조, 지속가능한 제품과 서비스를 찾는 고객과 시민사회단체의 압력이 점차 증가하고 있고, 국내 및 글로벌 규제기관의 ESG 규제 강화, 투자 기관의 ESG 기준 도입이 ESG경영이 본격적으로 선택이 아닌 필수로 변화하게 된 배경이 됐다"고 분석했다.

실제 '연기금 등이 수탁자로서 투자 의사를 결정함에 있어 투자 대상 기업의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ESG 등 비재무적 요소를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의 UN책임투자원칙에 서명한 기관은 지난해 3월 약 3000여 곳에 달한다. 이들 서명기관의 총 운용자산(AUM)은 약 89조달러(한화 약 100경원)에 이른다.

신 센터장은 2018년부터 시작된 '글로벌 빅테크 기업'의 부상이 ESG를 중요한 투자지표로 보는 계기로 작용했다고 진단했다.

신 센터장은 "2014년말부터 유가가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화석연료기업의 주가가 압박받는 상황이 펼쳐졌다"며 "이후 2018년부터 글로벌 빅테크 이른바 '팡(FAANG, 페이스북·아마존·애플·넷플릭스·구글을 미국 5대 IT기업을 일컫는 용어)'이라고 불리는 기업들이 본격적으로 부상했다"고 소개했다.

기존에는 "ESG 지표에 맞는 기업경영이 궁극적으로 기업가치에 도움이 될 것"이란 표어가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지만, 굴뚝 기업의 침체와 팡의 선전에 자연스럽게 ESG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들을 담은 펀드의 수익률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ESG라는 쓰나미, 대비하지 않으면 위험"
백 센터장은 "ESG경영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지기 위해 선택적으로 하는 활동이 아닌, 앞으로의 시장 규제와 다른 기업들과의 경쟁에 대응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택해야 하는 경영 방식이 됐다"며 "향후에는 ESG도 규제의 영역으로 넘어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 유럽의 경우 본사의 ESG경영만 따지는 게 아니라 협력사들도 ESG 요건을 충족해야 할 정도로 관련 규제가 강화됐다.

백 센터장은 "ESG라는 '쓰나미'가 몰려오고 있다"며 "이에 대비하지 않는 기업들은 10~20년 뒤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신 센터장은 "본격적으로 ESG 열풍의 불씨를 지핀 건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블랙록의 행보였다"고 말했다.

그는 "주요 공적연금을 중심으로 석탄을 활용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를 멈출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면서도 "결정적인 모멘텀으로 작용한 사건은 2020년초 블랙록의 최고경영자 래리 핑크가 '석탄처럼 지속가능하지 않은 사업에 대해서는 발을 빼겠다'고 공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코로나19가 터지면서 각국이 경기부양책을 써야하는 상황에서 '어디다 돈을 쓸 것인가'라는 물음이 나왔고,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인프라에 돈을 써야한다'는 전 세계적인 공감대가 생겨 ESG펀드들이 조성되고 수익률도 높아졌다"며 "지난해엔 환경을 중시하는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출범으로 '클린에너지 테마'로 묶인 주식들의 주가가 크게 올랐다"고 덧붙였다.

윤 수석연구원은 "세계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들에게 ESG는 피할 수 없는 패러다임"이라면서 "ESG를 비용이 아닌 회사의 성과나 성장과 연계된 투자의 영역으로 봐야하는 이유"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가령 국내 대기업이 유럽 시장에서 수출 계약을 진행할 때 협상과정에서 '협력사들의 사회적 책임활동을 증명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며 "특히, 기후변화와 관련한 고객사의 요구사항을 충족하지 못해 계약이 어그러지는 사례도 비일비재하다. ESG에 대응할 수 없는 기업은 도태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ESG 워싱 막아야, 제대로된 평가 필요"
전문가들은 '무늬만 ESG경영'에 나서는 기업들을 솎아내기 위해서는 ESG공시인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대한 '제3자 인증(Assurance)'을 활성화할 필요성이 있다고 제언했다. 다만 제3자 인증을 받는 비율이 높아지는 해외와는 달리 국내는 2015년부터 꾸준히 줄어들고 있는 추세다.

윤 수석연구원은 "ESG 평가기관들이 주로 기업들이 발표한 지속가능경영 보고서를 많이 참조하는데, 문제는 이 정보가 믿을만한지 알 수 없다"며 "정부차원에서 해당 보고서에 대한 제3자 인증을 의무화한다면 기업들이 허위공시 등 법적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외부기관에 인증을 받을 것이고, 데이터도 정확하게 공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우후죽순 난립하고 있는 평가기관들은 시차가 있을 뿐, 경쟁력을 지니지 못한다면 자연스럽게 도태될 것이라는 게 윤 수석연구원의 주장이다.

그는 "객관적이고 공정한 측정을 내리는 평가기관은 생존하고, 그렇지 않은 기관은 시장에서 외면받게 된다. 해외에서도 많은 평가기관이 흡수합병 되거나 자율경쟁을 통해 정리되곤 한다"며 "다만 지역별, 업종별 기업의 특성이 다르기에 평가기관이 하나로 통일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백 센터장은 "인공지능(AI) 등 신기술의 발달로 더 많은 정보를 적시에 일관되게 평가하면서 분석범위를 넓히고 고도화된 데이터를 축적할수록 ESG워싱 여부에 대한 판독도 점점 용이해질 것"이라며 "기업입장에서는 'ESG 워싱'에 대한 유혹이 클 수 있지만, 한 가지 명심할 것은 ESG워싱으로 한번 의심받기 시작하면 시장에서의 신뢰를 회복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 그리고 해당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힐 수 있다는 점을 직시하고, 진정성 있게 ESG경영전략을 구사해야 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ESG 워싱이란 환경친화적인 것이 아닌 것에도 불구 친환경처럼 이미지를 세탁하는 위장환경주의를 말한다.

ESG경영을 착실히 수행하는 기업들이 실제 성과도 우수하다는 점이 여러 사례로 입증되고 있다.

그는 "국영 석유가스기업에서 10년간의 노력을 통해 세계최대 해상풍력에너지사로 거듭난 덴마크의 오스테드사는 기후변화라는 전통에너지산업의 위기를 기회로 활용한 대표적인 회사로 지난 다보스포럼에서 세계 1위의 지속가능경영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며 "미국의 테슬라는 기후변화와 ESG 시대에 부합하는 비즈니스를 영위하는 기업이 자체 경쟁력까지 보유했을 때, 얼마나 급격히 대세기업이 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소개했다.

■주종에서 핵심 안건, M&A에서도 필수
백 센터장은 "올해 주주총회에서도 ESG가 핵심적인 안건으로 다뤄질 것은 분명하다"며 "단기적으로 수익성에 영향을 미칠 수는 있지만, 기업경영의 패러다임이 ESG를 기반으로 획기적으로 변화하지 않으면 장기적인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마음가짐으로 ESG경영을 바라봐야 할 때가 됐음을 깊이 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인수합병(M&A) 시장에서도 ESG는 중요한 쟁점으로 떠올랐다는 전언이다. 백 센터장은 "최근에는 M&A 과정에서 피인수 기업의 재무정보 뿐만 아니라 ESG요소를 평가하거나 실수하는 게 필수적이다"며 "사모펀드(PE)들도 ESG실사를 도입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앞서 나가고 있는 기업들로부터 ESG경영 전략목표에 대한 의뢰가 들어오고 있다"며 "ESG와 관련된 모든 영역에서 종합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 우리 센터의 목표"라고 강조했다.

신 센터장은 ESG경영이 대세로 자리잡은 시점에서 애널리스트의 역할에 대해 "ESG라는 기업의 비재무적인 정보를 주가 관점에서 측정해 외부효과를 내재화시키는 작업이 필요하다"며 "세계의 유수한 기관들도 이를 반영한 새로운 회계기준을 만들 준비를 하고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현재 한국의 ESG 현황에 대해서는 'G'에 해당하는 지배구조(governance)에 평가 가중치를 두는 분위기라고 전했다.


신 센터장은 "한국은 지배구조와 관련한 민감한 이슈들이 있다 보니 지주회사가 ESG 평가점수가 높게 나타나고 있다"며 "앞으로는 환경과 사회 부분에 대한 평가도 높아질 전망이어서 기업들의 대응이 중요한 시점이다"고 강조했다.

fnljs@fnnews.com 이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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