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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토' 지나 '놀금'?…주4.5일제, 괜찮을까요 [김준혁의 JOB생각]

김준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5.10.03 07:30

수정 2025.10.03 08:09

임금 조정 없이? 근로기준법 개정까지?
정부, 노사정 중심 실노동시간 단축 방안 모색
규모 작은 사업체일수록 걱정↑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챗GPT로 생성한 이미지
[파이낸셜뉴스] 2000년대 초·중반 당시 격주로 '놀토(쉬는 토요일)'라는 개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주5일제가 안착하는 과정에서 생긴 개념이라고 하는데요. 이로부터 20여년 지난 현재, 이젠 주4.5일제가 논의되고 있습니다. '놀토'를 넘어 '놀금(쉬는 금요일)'이 오는 걸까요.

약 일주일 간의 명절 연휴가 시작됩니다. 긴 연휴기에 맞춰 근로시간 단축을 주제로 얘기를 나눠보려 합니다. 그 중에서도 관심이 뜨거운 주4.5일제 도입과 관련한 쟁점, 배경, 장단점에 대해서 짚어보겠습니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4.5일제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주4.5일제 토론회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대선 당시도 주4.5일 임금유지·근로유연성 시각차
이재명 정부가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해 추진하는 주4.5일제. 대통령 선거 당시에도 여야 할 것 없이 모두가 공약한 과제이기도 합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당대표 시절 주4일제 도입 필요성까지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의 '장시간 저임금' 구조를 개선해 일-생활 균형을 맞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한편, 인공지능(AI)이 일부 노동을 대체하기 시작한 시점에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인식인데요. 이렇게 되면 노동생산성도 개선하고, 더 나아가 '일자리 나누기' 등 선순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구상은 현 정부의 노동정책 방향에도 고스란히 반영돼 있습니다. 연간 실노동시간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수준으로 낮추겠다는 목표입니다.

관건은 임금 삭감, 노동 유연성 여부입니다.

대선 국면 당시 국민의힘은 민주당의 임금조정 없는 주4.5일제 공약을 '비현실적인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했습니다. 그러면서 대안으로 주 법정근로시간(40시간)을 유지하면서도 금요일 오후 휴무를 가질 수 있는 유연근무제 형태의 주4.5일제를 대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예를 들어, 일이 비교적으로 몰리는 월~목요일까지 매일 1시간씩 더 근무하면 금요일엔 4시간만 근무하고 퇴근하는 방식입니다. 주 근로시간이 그대로 유지되기 때문에 임금 삭감 여부를 논의할 필요도 없습니다. 당시 지도부는 산업별·직무별·생애주기별로 다양한 근무형태를 반영한 유연근무제를 검토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대선에서 패배하면서 이 같은 구상은 무산됩니다.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실 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 첫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노사정이 참여하는 추진단은 OECD 평균 수준의 실노동시간 달성을 목표로 포괄임금 금지 및 연차휴가 활성화 등 법·제도 개선, 노동생산성 향상, 고용률 제고, 일 가정 양립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뉴스1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24일 오전 서울 중구 LW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실 노동시간 단축 로드맵 추진단’ 첫 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노사정이 참여하는 추진단은 OECD 평균 수준의 실노동시간 달성을 목표로 포괄임금 금지 및 연차휴가 활성화 등 법·제도 개선, 노동생산성 향상, 고용률 제고, 일 가정 양립 방안 등을 논의할 예정이다. 뉴스1
■시범사업→노사자율확산 유도, 다음은 근로기준법 개정?
현 정부는 지난달 24일 노사정 전문가로 구성된 '실노동시간 단축 추진단'을 꾸려 관련 쟁점들을 논의하기 시작했습니다.

고용노동부는 당장 내년 300억원에 가까운 예산을 들여 주4.5일제 시범사업을 추진합니다. 노사 합의로 주4.5일제를 새로 도입한 중소·중견기업(50인 이상 300인 미만)을 신청받아 해당 기업에 근로자 1인당 20만~60만원을 지원합니다. 주4.5일제 도입 후 채용이 증가한 인원에 대해선 추가로 인당 60만~8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구상입니다.

노동부는 이 같은 시범사업, 노사 자율 확산 촉진·지원, 추진단 논의를 거쳐 근로기준법 개정까지 검토할 것으로 보입니다. 노동부 국정과제엔 '실노동시간 단축법 제정·시행',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주4.5일제 추진' 등의 내용이 담겼습니다.

다만 임금유지·조정 여부, 법 개정 시기와 관련해선 아직 확정된 내용이 없습니다. 향후 노사정 논의를 통해 구체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금융권에서도 주4.5일제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은 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9.26 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스1
금융권에서도 주4.5일제 요구가 나오기 시작했다. 사진은 김형선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지난달 24일 오후 서울 중구 은행연합회관에서 열린 9.26 총파업 돌입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뉴스1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고용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소상공인연합회가 지난 1일 서울 여의도 소상공인연합회에서 고용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제공
■대기업도 우려하는데…中企·소상공인은 한숨 더 커
경영계는 임금 삭감 없는 유연근로제에 대한 걱정이 큽니다. 임금·근로형태 조정 없이 근로시간만 단축할 시 기업 경쟁력 약화, 고용 양극화가 심화될 것이란 우려인데요. 따라서 유연근로제 개편, 생산성 제고가 우선시돼야 한다는 주장입니다.

이 같은 우려는 자본여력이 되는 대기업보다 규모가 작은 사업장에서 더 클 것으로 보입니다. 현재도 일부 대기업은 자체적으로 격주로 금요일에 휴일을 보장하는 등 유연한 근로제도를 운영 중이지만, 여력이 현저히 떨어지는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 입장에서는 너무나 큰 부담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는 호소입니다.

지난 1일 소상공인연합회(소공연)는 고용 현안 관련 기자회견을 열고 "주휴수당 폐지 없는 주4.5일제 도입을 반대한다"며 100만 서명운동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했습니다. 근로기준법 5인 미만 사업장 등으로의 확대 적용에 대해서도 날선 비판을 제기했는데요.

소공연은 "70년 넘은 낡은 제도인 주휴수당을 폐지하는 등 과도한 인건비 부담 구조 해소가 최우선으로 선결돼야 한다"며 "근로시간 단축으로 인한 업무 공백과 생산성 저하는 소상공인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할 짐이 되며, 주휴수당까지 유지되면 5.5일치 기본급에 더해 휴일수당과 초과근무 수당로 1.5~2배의 임금을 더 지급해야 하는 이중 부담에 시달리는 대다수 영세 소상공인들은 가뜩이나 어려운데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최저임금에 더해 주휴수당, 야간수당 등을 추가로 지급하는 현 상황에서 법정근로시간을 줄이면 인건비 부담이 더욱 커질 것이란 불만입니다. 특히 소상공인 업종 특성상 주6일 근무, 편의점·PC방 등은 24시간 근무가 잦아 더욱 피해가 클 것이란 걱정입니다.

한 참석자는 "정부가 13조원을 들여 소상공인을 돕는다는데 돈 뿌려놓고 근로기준법 확대하고 4.5일제를 실시하면 한국 편의점은 모두 고사하게 될 것"이라며 "알바보다 못 벌어가는 점주가 태반일 것이고, 알바가 편의점주를 부리는 일이 생길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주4.5일제, 향후 짚어야 할 쟁점들이 많아 보입니다. 각 산업·직무·업종별에 맞는 맞춤형 정책에 대한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앞으로의 노사정 대화를 꾸준히 주목해야 할 대목입니다.

jhyuk@fnnews.com 김준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