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SNS 속 월 천만 원, 강남 자가는 가짜다"… 비교 지옥 갇힌 K-직장인에게 던지는 빨간약

전상일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26.05.30 09:00

수정 2026.05.30 14:43

"당신의 평범함은 죄가 아니다"… 알고리즘이 조작한 '가짜 평균'의 함정
화려한 호캉스에 짓눌린 김 부장… "나는 실패한 가장인가"
"젊어 고생은 바보짓"… '영앤리치' 신화에 병들어가는 이 사원
15초짜리 허상을 끄고, 진짜 '나의 영수증'을 안아줄 시간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이미지입니다
기사의 이해를 돕기 위한 AI이미지입니다

[파이낸셜뉴스] "난 도대체 뭘 잘못 살았을까." 금요일 저녁, 피곤한 몸을 뉘고 스마트폰을 켠 4050 김 부장과 2030 이 사원은 각자의 방에서 같은 한숨을 내쉰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쇼츠 속 세상은 너무도 찬란하다. 20대 유튜버는 '퇴사 후 월 천만 원 자동 수익'을 자랑하고, 동년배 지인은 강남 한강 뷰 아파트에서 오마카세를 즐긴다. 꼬박꼬박 월급을 모아 대출금을 갚으며 묵묵히 살아온 내 인생만 철저히 실패한 것 같은 서늘한 박탈감. 우리는 어쩌다 이 지독한 '비교 지옥'에 갇히게 된 걸까.

"당신의 평범함은 죄가 아니다"… 알고리즘이 조작한 '가짜 평균'의 함정

현대 자본주의에서 가장 무서운 가스라이팅은 '성공 포르노'가 만들어낸 '가짜 평균'이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3년 하반기 지역별고용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임금근로자의 절반 이상(54%)이 월평균 300만 원 미만의 급여를 받는다.



하지만 스마트폰 속 세상에서 월 300만 원은 '루저'의 성적표로 전락한다. SNS 알고리즘은 상위 1%의 극단적인 성공 사례나 레버리지로 점철된 화려한 껍데기만을 끝없이 노출시킨다. 현실의 데이터는 철저히 무시된 채, 자극적인 성공 팔이들이 떠들어대는 '월 천만 원'과 '파이어족'이 어느새 대한민국 직장인의 멘탈을 갉아먹는 '새로운 평균'으로 둔갑해 버렸다.

◇ 화려한 호캉스에 짓눌린 김 부장… "나는 실패한 가장인가"

영업팀 김 부장(49)의 삶은 결코 게으르지 않았다. 법적으로는 어학원으로 등록되어 있지만 사실상 정규 유치원을 풀타임으로 대체하는 막내의 '영어 유치원' 비용과 주택 담보 대출 원리금을 감당하기 위해 그는 지난 20년을 회사에 바쳤다.

하지만 주말 아침, SNS 피드를 장식하는 지인들의 5성급 호캉스와 수입차 인증샷을 볼 때면 그의 단단했던 자부심은 순식간에 허물어진다. 가족을 위해 청춘을 갈아 넣고도, 남들처럼 화려한 이벤트를 해주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가장'이라는 무게를 더욱 짓누른다.

타인의 '하이라이트(Highlight) 릴'과 자신의 '비하인드(Behind) 씬'을 비교하는 덫에 빠진 것이다.

◇ "젊어 고생은 바보짓"… '영앤리치' 신화에 병들어가는 이 사원

마케팅팀 이 사원(29)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매달 적금을 부으며 착실하게 시드를 모아가고 있지만, 화면 속 동년배 '영앤리치'들의 한남동 브이로그를 보면 자신의 월급 명세서가 처참하게 느껴진다.

"이 속도로 언제 강남에 집을 사고 슈퍼카를 타나." 조급함은 이 사원을 극단적인 위험으로 내몬다. 부의 추월차선에 대한 환상은 끊임없이 이사원을 유혹한다. 늙어서 휠체어를 타고 부자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안전 마진을 확보하는 지루한 투자 대신, 당장의 비교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빚을 내어 고위험 알트코인과 밈 주식의 불나방으로 뛰어든다.

성공 포르노가 심어준 끝없는 탐욕이 평범한 청년들을 '한탕주의'라는 낭떠러지로 등 떠밀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런 반응에 대해 투자의 신 워렌 버핏은 끊임없이 경고한다.

버핏은 "많은 사람들이 이미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의 가장 큰 문제점은 빨리 부자가 되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라며 이런 한탕주의에 대한 일침을 가한다.

◇ 15초짜리 허상을 끄고, 진짜 '나의 영수증'을 안아줄 시간

전문가들은 SNS 속 화려한 삶의 상당수가 빚으로 지은 모래성이거나, 관심을 돈으로 환산하기 위한 철저한 연출극이라고 지적한다.
타인의 시선이라는 허상을 좇기 위해 내 지갑을 털어내는 것만큼 어리석은 자본주의 생존법은 없다.

가장 위대한 투자는 남들의 화려한 영수증을 부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시시해 보일지라도 피땀 흘려 번 나의 월급과 평범한 일상을 단단하게 지켜내는 것이다.


스마트폰 속 조작된 천국에서 빠져나와, 오늘 저녁 식탁에 놓인 따뜻한 찌개 한 뚝배기와 내 곁의 사람들에게 시선을 돌려보자. 그 평범하고도 위대한 일상이야말로, 자본주의의 광풍 속에서 당신을 지켜줄 유일한 진짜 자산이다.

jsi@fnnews.com 전상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