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도, 나도 투표지는 딱 1장씩...공정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허술한 공정 때린 '예민한 공정']
(下) 기성세대에 경고장 날린 2030
"노력한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편법이나 특혜 있어서는 안 돼"
투표용지 부족 사태에 '비판' 목소리…특정 세대 아닌 우리 문제
[파이낸셜뉴스] "현실에 분노한, 야권 성향의 젊은 층이 투표장을 많이 찾았다."
"민주당에서 빠진 30대 여성의 표가 고스란히 국민의힘으로 갔다. 부동산값 급등으로 인한 계층 간 사다리 실종과 공정 이슈에 민감한 2030이 집권 여당에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앵그리 2030'이라는 표현과 함께 나온 이 분석은 놀랍게도 지난 6월 3일 치러진 지방선거 및 재·보궐선거와 관련된 내용이 아니었다. 각각 2016년 20대 총선, 2021년 4·7 재보궐선거 직후 나온 전문가들의 분석이었다.
말 그대로 10년 전에도, 5년 전에도 '앵그리2030'은 있었다.
그리고 6·3 지방선거와 함께 또다시 '화가 난' 2030에 주목했다. 지상파 3사의 출구조사 결과와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촉발된 초기 잠실 개표소 봉쇄 시위 현장이 근거가 됐다.
적극적으로 의사 표출을 하고 있는 2030세대를 그저 '화가 났다'는 표현으로 정의하는 게 맞을까.
전문가들은 2030 청년 세대를 단순히 '분노한 세대'로 규정하는 건 적절하지 않다는데 한 목소리를 냈다. 이들 행동의 본질은 분노가 아닌 민주주의 절차와 공정성에 대한 문제제기라는 분석도 내놨다. 불공정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기성세대를 향해 '경고'를 날렸다는 해석도 나왔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30세대의 정치적 성향을 단순히 진보·보수 프레임으로 설명하기 어렵고 '공정'에 대한 인식도 달라진 만큼 그들의 시선으로 '분노'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고 봤다.
신 교수는 "민주화 이후 태어나 김대중·노무현 정부를 거치며 성장한 이들은 과거 기성세대와 달리 진보 진영을 '기득권 세력'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다"며 "특히 문재인 정부의 조국 사태 등을 거치면서 청년들에게 '공정'은 진보가 아닌 보수의 가치로 인식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치열한 경쟁 환경 속에서 살아온 2030세대는 절차와 규칙에 훨씬 엄격한 기준을 적용한다"며 "이번 사태 역시 단순한 정치적 반응이 아니라 공정성에 대한 문제 제기로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도 '절차적 평등성'의 관점에서 청년들의 행동을 해석했다.
구 교수는 "학계에서 말하는 '평등주의'는 결과의 평등보다 실력과 절차의 공정을 말한다"며 "노력한 사람에게 정당한 보상이 돌아가야 하는 건 당연하고 그 과정에 편법이나 특혜가 있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2030세대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조국 사태' 때 2030세대가 목소리를 높였던 것도 훼손된 공정에 대한 분노였다.
그러면서 "1표차로 당락이 결정되는 선거에서 투표용지 부족은 선거의 결과를 바꿀 수 있는 사안, 바로 불공정이라 봤다"며 "더불어민주당이 개표 초반 투표수 부족 얘기가 나왔을 때 '개표 중단·재투표 주장은 일고의 가치가 없다'며 큰 문제가 없다는 식으로 반응한 걸 두고 청년들은 더 분노를 느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전 대표 자녀의 입시비리와 투표용지 부족사태 모두 청년 유권자들에겐 절차적 공정성의 문제로 인식됐고 이는 불평등으로 이어졌다는게 구 교수의 진단이다.
'2030 분노'의 방향이 특정 정파로 향하지 않았다는 점은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이다.
구 교수는 "2030세대는 기성세대보다 공정성과 절차적 정당성에 훨씬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번 사태에서 청년들이 던진 메시지를 특정 정파의 목소리나 단순한 분노로 해석하기보다 민주주의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실제 잠실 개표소 앞에 모였던 2030 청년들은 특정 세력이 주장하는 '부정선거'가 아닌 '부실선거'를 외쳤다. 지난 10일 18개 대학이 캠퍼스에서 동시다발로 진행한 시국선언에도 동일하게 들어간 단어도 '부실선거'였다.
이 같은 흐름은 해외에서도 나타났다.
뉴욕타임스는 지난 1월 '젊은 유권자들이 정당 꼬리표를 피하면서 무소속(무당파) 지지층이 사상 최고치에 도달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이 기사가 인용한 갤럽조사를 보면 미국 유권자의 45%는 스스로를 무당파라고 밝혔다. 특히 Z세대는 절반이 넘는 56%가 무소속이라고 답했다.
미국의 공영 방송 NPR도 해당 조사에 주목했다.
오마르 알리 노스캐롤라이나대 교수는 "(미국의 양대 정당인 민주당, 공화당 등) 두 주요 정당이 국민을 실망시키는 상황에서 젊은 유권자들은 '무당파'라는 논리적 대응을 하게 됐다"며 "이들을 정치 무관심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를 통해 청년들이 기성세대에 질문하고 있다고 봤다. 특정 정당이나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공정과 절차,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성세대는 청년들의 목소리를 단순한 불만이나 분노로 치부하기보다 그들이 던지는 질문에 답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대 남자', '20대 여자'의 저자인 정한울 한국사람연구원장은 "특정 세대를 하나의 이미지로 규정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고 짚은 뒤 "2030세대는 오랫동안 정치에 무관심하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정치 참여가 크게 늘었다. 기존 정치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자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존 정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있다고 해서 이를 단순히 '앵그리 2030'으로 규정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기성세대 역시 각자의 불만과 분노를 갖고 있는데 특정 세대만을 분노의 세대로 일반화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신율 교수도 "투표용지 부족 사태 이전으로 되돌리는 건 사실상 어렵다. 그럼에도 할 수 있는 건 '책임자'에게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벌할 건 벌하는 것"이라며 "각 대학에서 진행한 시국선언에도 재선거가 아닌 '진상규명'과 '선관위 쇄신'이라는 점을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들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는 제안도 했다.
정 원장은 "현재는 청년층이 어떤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필요한 단계"라며 "아울러 부정이든 부실이든 선거 과정에서 민주주의 훼손 논란이 제기된 만큼 사회 전체가 함께 해결책을 찾아야 할 때"라고 전했다.
y27k@fnnews.com 서윤경 김희선 기자










